경험을 통해서 보면 인생은 선형적(線型的)이지도, 목적론적이지도 않다. 앞을 보고 직진해서 간다고 가는데 뒤돌아서 보면 옆으로 가기도 하고, 같은 길을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심지어 뒤돌아 가기도 한다. 큰 의미 없이 하거나, 다른 목적을 위해서 한 일이 나중에 의도하지 다른 일에 영향을 미치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현직에 있을 때 ‘교직원 공모여행’으로 외국의 공동체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중요한 교육정책이었던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을 시 단위에서 지역적 구성을 하기 위한 벤치마킹 차원이었다. 교육지원청 국장, 과장, 마을교육공동체와 관련이 있는 교감, 교사, 장학사, 주무관 등이 구성원이었고, 방문 예정지는 영국(스코틀랜드), 덴마크, 스웨덴이었다. 이 견학 여행의 일환으로 들른 곳이 스코틀랜드 핀드혼 공동체였는데, 순전히 교육적 목적이었던 이 프로그램이 당시로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퇴직 이후의 공동체 마을의 구성과 함께 사는 삶의 태도를 다시 배우고 생각해 보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핀드혼 공동체는 세계 생태공동체 네트워크의 창립 멤버이자 유엔의 지속 가능한 지구촌 만들기 운동의 파트너로서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마을이다. 스코틀랜드 최북단 모레이(Moray) 해변 농촌 지역의 계획 공동체로 정주형 생태공동체, 교육공동체, 영성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고 생명과 영성을 강조한 특화된 교육프로그램, 인간과 자연 간의 협조를 통한 식물과의 대화, 노동과정을 통해 영성 체득 등에 특색이 있다.
불모의 모래땅에 창립자 아일린과 피터 부부가 처음 세운 이후, 40년 동안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정원에 둘러싸인 태양열 주택에서 250명의 주민이 생태적 현장에서 살고 있다. 행복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영적인 존재와의 교류’에 있다고 믿는 이곳 사람들은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거부하며 영적인 잠재력을 증폭시키는 춤과 노래, 미술과 옛날이야기를 첨단 대체에너지 기술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핀드혼 공동체는
- 250여 명이 모여 사는 생태 마을 ‘파크’와 약 50여 명의 소규모 구성원이 중심이 되어 단기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맞이하는 ‘클루니 칼리지’로 나뉜다.
- 핀드혼에는 권력을 가진 사람도 리더도 없으며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게 역할을 나누어 맡는다. 누구도 공동체를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 공동체 생활 중에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한 의사결정은 핀드혼 카운슬(council) → 매니지먼트 팀 → 포럼의 3단계 과정을 거치며 해결한다.
- 누구나 원하는 사람은 카운슬러나 매니지먼트 팀의 위원이 될 수 있고 포럼은 정해진 날에 자발적으로 모인 멤버들에 의해 진행되며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 의사결정 시스템이 적용된다.
- 핀드혼에서는 모든 여정이 곧 영성 훈련이자 수행이며 내면을 찾는 과정이다.
- 방문자(단기체류자)들도 오전에는 여러 작업반으로 나뉘어 일하고, 오후에는 다양한 영성 훈련을 하고, 저녁에는 강연을 듣는다.
- 일을 분담할 때는 진행자가 몇 개의 작업반을 제시하고 참가자들에게 자기가 원하는 작업반을 택하게 한다. 정원과 희망자가 맞지 않을 경우, 진행자의 반복적 실시로 정원과 신청자 수가 일치하게 한다. 일을 분담하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어떤 형태의 압력이나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고, 개개인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 핀드혼의 대표적인 영성 프로그램은 일주일 과정인 ‘경험 프로그램“이다.
- 방문자 센터 역할을 하는 건물에는 넓은 공동 식당과 2층 공동체 튜닝(조율)을 할 수 있는 공연장 한 곳과 작은 연습장이 여러 개 있으며 결혼식도 이곳에서 한다. 공연장에서는 연극이나 노래, 명상 등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을 하며 20여 년간 자신들의 에코 빌리지 경험을 살린 생태 마을 훈련 프로그램이 유명하다.
핀드혼 공동체의 삶의 원리는
- 무엇보다 ’교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 공동체 식당에서 식사를 준비한 이들과 공동체 가족들, 방문자들이 빙 둘러서서(서클) 손을 맞잡도록 한다. 튜닝(조정)이다. 각자는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고, 서로의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이들이 맞잡은 손은 상대방뿐 아니라 천지자연과 감응하는 통로일 수도 있다.
- 이곳에서 명상은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모든 이가 다 함께 하는 유일한 것이 튜닝이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와 끝낼 때는 반드시 튜닝을 한다.
핀드혼은 자연으로의 회귀를 외치며 자연의 혼과 지성, 신성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현재 우리 지구의 각종 환경오염으로 많은 자연이 훼손되는 상황에서 땅 위에서, 땅에 의해서, 땅을 사랑하며 사는 핀드혼 공동체는 실제로 자신들의 삶을 통해 지혜와 자유를 최상의 형태로 꽃 피우는 철학을 표현하고 있다. 권력적 리더가 없이 공동체 구성원이 포럼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고 공동생활, 공동 노작을 하며 여유 있게 이웃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태양광과 태양열 등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열 시스템 등 생활의 불편함이 없는 현재의 핀드혼 모습은 다년간 시행착오를 거친 것이다.
남남끼리 큰 갈등 없이 평화롭게 사는 핀드혼 공동체의 활력은 각종 끈끈한 연고에 의해 운영되는 우리 사회에 어떤 교훈을 주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우연히 가본 외국의 공동체 생활의 정신과 원리가 구체적으로 내 삶의 중요한 모습으로 다가올 줄 어찌 알았겠는가? 인생은 선형이 아니다. 굽이굽이 불가사의다.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봄은 오고
연두 새싹 자라나 초록의 수풀 너머
짙푸른 잎 철들어 갈빛이 될 때쯤 절로
머리에 눈발이 흩날리는 줄 알았다
스위치를 켜면 전등은 저절로 빛나고
꼭지를 틀면 물은 콸 콸 콸 쏟아져
날마다 마시는 물의 통로는 몰라도
물은 언제나 가까이 쉽고 맑고 달았다
보아도 보이지 않던 호스를 찾다가
물은 멀리 수도에 한쪽 끝이 매이고
회로(回路)처럼 천장 텍스에 숨어 흘러왔음을
낡은 정수기를 손보며 알게 된 한낮
실뿌리 땅속에서 엉키고 뭉치고 뻗어서
물오른 버들가지 코끝을 간질이고
보이지 않는 곳 보잘것없는 것들 숨 쉬어
봄은 아지랑이 뒤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졸시, ‘불가사의’, 시집 <어머니는 이제 국수를 먹지 않는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