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눈짓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속에서
움트리라.
움터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를
눈 녹이듯 흐물흐물
녹여버리겠지.
- 신동엽시전집, 창비, 2013
봄이다. 아직 찬 바람이 불고 강원도 어디쯤에는 폭설이 내려 설국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봄은 봄이다. 봄은 따뜻한 기운으로 온다. 꽃과 함께 온다. 남도에서부터 노랗고 붉은 색깔로 온다. 그리고 기다리던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꽃으로 노래로 피어난다.
그런데 신동엽은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고’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가 디딘/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고 한다. 단순하게 남해나 북녘의 지리적 공간이나 해동의 방향이 아니라 제주에서 두만까지 전체 한반도 바로 우리가 밟고 있는 땅 위의 논밭에서 온다고 한다. 생동하는 봄의 기운을 땅의 역사성과 논밭이 상징하는 질긴 생명의 원초성과 관련시키고 있다.
논밭에서 움튼 봄이 ‘우리들 가슴속에서’ 다시 움터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를/ 눈 녹이듯 흐물흐물/녹여버’리라 예언하고 있다. 봄은 겨울의 추위를 몰아내고 따뜻한 기운으로 와서 생명의 부활을 가져오지만, 시인은 단순히 자연의 순환을 노래하는데 그치지 않고, '제주에서 두만'까지를 언급함으로써 민족의 분단 극복과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강산을 덮은 그 미움의 쇠붙이'까지 모두 녹이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의 존재방식이 생명을 이용하는 것이고, 현대인의 삶이 지구 생명의 착취에서 근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생명은 결국 껍데기에서 움투고 그 힘으로 모두가 살고 서로 살리는 것이다. 봄은 생명이고 부활이다.
두 달 전에 제주에서 매화가 피었다 지고. 진달래가 만개한 것을 보고 왔는데, 또한 전국의 모든 상춘객들이 매화며 목련이며 민들레 등 꽃 사진들을 SNS에 퍼 나르기에 바쁘고, 마음이 달뜬 시인 묵객들은 붓을 들어 봄노래를 읊기 바쁜데, 여기 접경지역 임진강가에는 이제야 겨우 목련의 꽃몽우리가 벙그러지고 있으니 누가 우리나라를 작은 나라라고 말하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