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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호 Mar 30. 2024

15. 권상진, ‘완행’, <노을 쪽에서 온 사람

합천에서 해인사 가는 길은

완행을 타야 한다

     

사람 하나 만나려면 몇 겁의 시간을 달려

인연 있는 어느 정류장에 닿아야 하는데 

    

십 리를 백 원에 데려다주는 차비는 선불

쓸쓸함은 후불로 내고 타는 거였더라     


앞차가 묻고 간 동네 안부를 번번이 다시 물으려

버스가 정류장마다 속도를 줄이면     


품었던 욕망들 하차를 하는지

길옆 잔풀들이 소란스럽다     


경판을 읽고 나온 바람을 따라

대적광전 비로자나불 앞에 서니     


완행 타고 오는 길 잘 살폈으면

절 구경은 필요 없다며 돌아가라 한다     


세상에 다시 가거든

안의 길 밖의 길 두루 살피라며     


반안반개

반쯤 눈 감는 법을 조용히 일러 준다

       

아는 사람의 시를 읽을 때는 사람을 통해서 시를 이해해 가지만, 모르는 사람의 시를 읽을 때는 시를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 말하는 목소리는 어떠하고 얼굴 표정은 또 어떠하며, 웃을 때는 어떻게 웃을지 상상해 보게 된다. 세상에 아는 시인보다는 모르는 시인이 훨씬 더 많은 법이어서 우리는 보통 시를 통해서 그 시인의 시 세계를 짐작할 수밖에 없다.     


시인은 특별한 경험을 해서 특별한 문장을 쓰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모든 사람들이 살면서 부닥치는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분노와 체념 등을 좀 더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할 뿐이다. 특별한 시인이 특별한 경험을 해서 특별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겪는 보통 사건에 대하여 특별하게 생각하고 특별하게 표현함으로써 특별한 시인의 지위를 갖게 된다.     

 

권상진 시인은 모르긴 몰라도 가만가만한 사람 같다. 그의 시집을 읽어도 소리치는 법이 없다. 깃발이나 프로파간다의 부산함이 없다. 삶의 이면에 있는 작고 소소한 것들을 흘리지 않고 그것들의 근본을 들여다봄으로써 모든 존재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시는 단순히 완행 버스를 타고 해인사에 가는 길을 담고 있다. ‘사람 하나 만나려’고 가는 ‘쓸쓸’한 길이다. 버스가 정류장마다 설 때마다 사람들이 품었던 욕망들이 하차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욕망 또한 내려놓았을 것이다. 욕망을 비우고 절 안에 들고 보니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길이 드디어 보인다. ‘경판을 읽고 나온 바람을 따라/ 대적광전 비로자나불 앞에 서니// 완행 타고 오는 길 잘 살폈으면/절 구경은 필요 없다며 돌아가라’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대오각성이다. 주장자拄杖子를 든 큰스님의 ‘할’이 아니고도 깨우침은 어디에는 있는 법이다. ‘세상에 다시 가거든/ 안의 길 밖의 길 두루 살피라며// 반안반개/ 반쯤 눈 감는 법을 조용히’ 배운다. ‘반안반개’, 시인이 만들었을 법한 이 조어가 시인이 깨달은 세계다. 깨달음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이다. ‘고속’과 ‘광속’의 분주함의 세계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깨달음은 속도를 늦춘 ‘완행’에서 그리고 ‘욕망을 하차시킨 마음’에서 얻는 것이다.     


권상진의 시 ‘완행’은 삶의 고비마다 밤 완행열차를 탔던 기억을 소환한다. 함께 적어본다  

   

삶이 발목에 걸려 흔들린다면 

여수행 완행열차를 타라

용산에서 밤 열 시 넘어 떠나는 

기차에서 서울을 내다보면

밤이 너무 깊어 들어 올릴 수 없지만

느리게 느리게 기어가는 기차에서는

숨에 맞춰 시간을 늘릴 수 있으니

지친 몸을 맡기고 한숨 자도 좋으리라    

 

눈을 떠도 여기가 여전히 여긴 듯하나

서대전역에 서면 깊고 느린 말이 들리고

봄날의 향기 언제나 그윽한 남원쯤 가서 

운 좋으면 놀러 가는 전라도 농부를 만나

홍어삼합에 막걸리 한 사발로 요기를 하고

다시 눈 붙여도 여수 가면 아직 미명未明

남도의 검은 새벽바람이 정신 나게 하리라    

 

혼란한 마음으로 오동도 동백숲을 걷다 보면

떠나 왔으나 속에서 지우지 못한 사람 

뜻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 정리가 되고

금오산 향일암 천수관세음보살 앞에 서면

절망이 몸부림쳐 노래 부르는 한바다 

반짝이며 춤추는 물비늘들의 반사가

볼 수 없는 그대의 뒷모습을 비추어 주리니   

  

발목에 걸려 삶이 감물 들 때면 

여수행 전라선 완행열차를 타라

초고속 시간을 건너 느린 기차에서 내리면

진초록에 숨은 동백꽃의 단심丹心과 

거칠 것 없이 씩씩한 돌산도 바다 물길이

가려진 삶의 길을 살포시 보여 주리라

  - 전종호, ‘여수행 완행열차’, 시집 <어머니는 이제 국수를 먹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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