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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호 Jun 15. 2024

교장은 공공의 적인가 ②

- 경계의 탐구 : 교장의 일

일반적으로 학교에서 교장에 대한 교사들의 불만은 교장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 아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아마 이런 소리를 교장들이 직접 들으면, 교사들이 수업하고 일할 수 있도록 교무조직을 꾸리고 예산을 분배하고 기획과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며 발끈할 것이다. 그러면 교사들은 열심히 수업하고 교장들도 열심히 일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라는 말인가?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장이 해야 할 일, 즉 교장의 직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서로 필요하다. 학생을 직접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은 교사가 하는 일이니 교장은 여기에 개입하지 말고 지원만 하라는 교사의 인식이나, 학생지도를 교사에게 전적으로 맡겨놓고 이것은 당신들의 일이니 나는 문서 결재만 하겠다는 교장들의 인식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교직원의 임무) ①항 “교장은 교무를 총괄하고, 민원처리를 책임지며, 소속 교직원을 지도ㆍ감독하고, 학생을 교육한다.”는 의 조문에서 가장 핵심적인 말은 ‘학생을 교육한다’는 말이다. 교무를 총괄하고 민원처리를 책임지는 것도 모두 학생을 교육하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경남 밀주초등학교 박순걸 교감이 쓴 화제의 책 <학교 외부자들>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국회의원 개개인을 입법기관이라고 한다. 그러면 국회의장이 국회의원 한 명 한 명을 관리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학교 안에서 교사를 개별적인 교육기관이라고 본다면 교장이나 교감이 교사를 관리한다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단어인 ‘관리자’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말도 있다. 학교홍보기사(안)를 예로 들면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장면이 학교에도 있다. 물론 경제적 이득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공을 들인 사람과 치사를 듣는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210쪽)”      


이것이 의식 있는 교사들의 현재 교장이 수행하는 직무와 역할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인 것 같다. 교사가 국회의원처럼 헌법기관도 아니고 관리자라는 말도 법적인 개념이 아니라 관습적인 통칭일 뿐이지만, 여기서 우리가 따져 보고 의심하고 궁구해야 하는 것은 교장이 해야 할 일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교장은 관리자인가? 한때 유행했던 말처럼 경영자 또는 CEO인가? 교장은 ‘교무를 총괄하’는 행정이 교장의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여기서 교무의 핵심은 무엇인가? 교육과정이다. 따라서 교장의 일은 교육과정을 행정하는 것이다. 교육과정은 무엇인가? 학교의 교육목표를 정하고 교육내용을 결정하고 수업과 평가를 운영하는 전체적인 교육의 흐름이다. 교감, 교장이 되면서 수업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이 교육과정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면서 행정만 하겠다는 생각이 교사들의 불신을 받아온 것은 아닌가? 교장의 일(직무)은 교무를 총괄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학생을 교육한다’는 목표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교장은 행정가 이전에 교육자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교장에 대한 교사들의 불만은 바로 이 교육자의 기본적인 스탠스를 회복하라는 말이 아닌가? 교실은 아니지만 교장실에서라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사고하고 행동하고 판단하라는 뜻이 아닌가? 서류에 클릭 결재만 하지 말고 교육의 구체적인 한 장면을 세심하고 따뜻하게 살피고 일어나는 모든 행정의 과정을 교육청이 아니라 학생과 교사의 입장에서 기획단계에서부터 진행되고 집행되는 모든 장면을 꼼꼼하게 살펴보라는 주문이 아닌가? 현상을 지키고 관리하는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기풍으로 일을 도모하고 조직의 분위기를 혁신하라는 뜻이 아닌가? 아이들을 지키는 교사들을 외부의 바람으로부터 보호해 달라는 신호는 아닌가?   

  

물론 모든 교사들이 혁신을 주문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교장들이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일을 추진하고 조직을 혁신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교장들에 대한 교사들의 거부감도 학교 안에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사 집단과 교장 집단이 서로 밀어내고 손가락질하는 심리적 배제와 배척의 풍토로서는 우리 교육의 진전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본분을 망각한 교장 갑질을 문제 삼으니 저 아래 점잖은 동네에서는 교사들의 이의제기와 비판과 저항을 을질로 규정하는 ‘을질조례안’을 만들어 대응한다고 하니 세상은 인드라망이 아니라 법망으로 촘촘히 엮일 판이다. 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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