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장은 어떻게 관리자가 되었나
교장은 ‘관리자’다. 맞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교장은 관리자다. 우선 교장들이 관리자라는 이 말을 좋아하고, 스스로 교사들 앞에서 자신을 관리자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법전에도 나오지 않는 관리자라는 말을 자칭 타칭 부르던 세월이 길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학교문화 풍토가 권위적이어서 이에 익숙한 교사들도 보통의 경우에 그 말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독 이 말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대개 누구에게 관리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주체적이고 개혁적인 교사들일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이 신문을 읽는 교사들은 관리니 관리자니 하는 말을 싫어할 개연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관리라는 말은 거대한 관료조직 안의 한 단위를 맡아 조직을 유지하고 운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관리는 관료조직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애초부터 그 조직은 거대한 관료조직 안에서 상하의 명령체제가 중요한 것이지 단위 조직의 자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주민들의 자생적 교육기관으로 출발한 서양과는 달리 학교라는 것이 태생부터 국가체제의 하부 조직으로 설립된 우리나라 경우는 자율성보다는 국가 목표를 관철하고 상급기관의 지휘나 지시를 잘 수용하는 것이 핵심이며, 이러한 관리 기능을 학교의 장도 중요하게 여겼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관리라는 말은 속성상 개혁적이라기보다는 보수적이며, 자율적이라기보다는 수동성을 내포한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학교 상황까지 문제 삼지 않더라도 해방 이후의 학교에서 교장의 역할을 상기해 보자.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 시절에 교장이 정부와 상급기관의 지시를 수행하여 체제 유지를 할 수 있도록 학교를 관리하는 일 말고 더 할 일이 있었을까? 교사들을 동원하여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국민투표 참여나 삼선개헌, 또는 유신을 홍보하고, 반상회에 나가 주민을 계도하도록 독려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교사들의 노동조합 결성을 막거나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교육청에 보고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 교장들은 어떻게 해서 교장이 되었을까? 해방 전에는 모두 일본인들이 교장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교원들이 교장이 되었으며, 일제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쉽게 일찍이 교장이 되었다. 일본 유학을 갔다 온 내 친구 아버지는 30대부터 퇴직할 때까지 중간중간에 교육청 고위직 간부도 했지만 거의 교장만 하다가 퇴직하였다. 그 시대의 교장들이 모두 다 그렇다고 싸잡아서 폄하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일제와 권위주의 정부 시절 그 시대의 기풍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충성과 복종심으로 내면화된 사람들이 교장이 되고 이들을 추앙하고 따르던 사람들이 다시 교장이 되고 하면서 80여 년 동안 형성된 것이 우리 교육행정 문화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는 교육을 성찰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보다는 경제성장이나 정치안정과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체제를 수호하는 관리자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물론 그 험한 야만의 시대에도 우리 교사들의 사표가 되는 교장 선생님들이 아니 계셨다고는 할 수 없다. 그분들은 그들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살았을 것이다. 진공 속에서 사는 사람은 없다. 사회 속에서 배우지 않는 사람 또한 없다. 옛날에 아버지 없어 배운 바 없는 사람을 일컬어 후레자식이라고 했다. 가르친 게 없는 아버지를 욕해야 하는가, 모델이 없어 배운 바 없는 자식을 욕해야 하는가? 문제는 모델이 되는 아버지가 없이도 자식들은 배운다. 모델이 없어 찌질한 자식도 나오고 모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더러 훌륭한 자식도 나오는 법이다. 다만 훌륭한 모델을 둔 자식들의 배움의 속도와 파장은 큰 법이다. 선조들은 모델링이라는 교육이론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교사들의 노동조합이 생긴 이후로, 그리고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크게 진전된 이후로 학교의 풍토도 많이 달라졌고 교장들의 태도와 업무 능력도 괄목할만한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그러나 우리 교장제도는 여전히 교육에 의하여 양성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경험에 의해서 알음알음 배우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장, 교감 지명 후보 기준이 교장 업무 수행 능력을 판단하는 타당한 척도가 되지 못한다는 평가도 여전하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교장공모제도도 훌륭한 교장을 배출했다는 획기적인 결과를 끌어내었다는 과학적 결과는 아직 없다. 5·31 교육개혁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가 강화되면서 CEO니 뭐니 하면서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영 마인드가 도입된 이후에도 관리의 풍토는 강화되었으면 되었지 개선되지 않았다.
경기도에서 혁신교육이 추진되면서 공동체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교장의 관리적 마인드가 다소 개선되는 바람이 대략 10여 년 있었으나, 역사는 다시 퇴행하고 있다. 개혁적인 교장을 원하는 교사들도 있지만, 교장의 섣부른 개혁에 피곤과 짜증을 내는 교사들도 여전히 많다. 학교의 답답한 풍토 조성에 교장만이 아니라 교사들의 책임도 함께 있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