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사유 18

월악 단풍

by 전종호

허허, 내 금강산 구경은 못 했으나

여기가 설악 오대 단풍 못지않네

계곡에서 능선까지 천국이구만

머리에 허옇게 단풍이 든

한 노인의 풍류를 못 들은 척하고

월악이 홀로 참 곱다

여한은 없다 평생 정진하고 살았노라

돌을 깎아 비원悲願을 새기던 사람들의

마음에도 단풍이 들었을까

신의 얼굴을 새기고 눈에 점을 찍던

석공의 기도 또한 단풍처럼 간절했을까

이들을 위하여

월악은 보름이면 영봉靈峯에 빛나는 달을 내걸고

가을이면 산 등에 붉은 단풍을 피워 냈을 터

마애부처님이 찡긋하고 합장하자

오늘도 월악은 단풍으로 발그레 웃는다

높이 오르기 위해서는 숨을 골라야 한다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속을 비워야 한다

비가 오면 단풍은 어쩌지 조바심에

바란다고 다 가질 수 있느냐

신령한 구름 너머로 산이 슬쩍 몸을 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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