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취약함, 그리고 진짜 관계

by 하늘빛

진실된 나로 다가가는 내면 여행 D+47


질문

나는 관계 속에서 나의 어떤 부분을 가장 숨기고 싶은가?
그 부분이 드러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두려운가?


어릴 때 본 What Women Want라는 영화가 있다.
멜 깁슨이 사고 이후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게 되는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보며 사람들은 로맨스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전혀 다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와… 내 생각이 남들한테 들리면,
난 진짜 큰일 나겠다.”


쪽팔림을 넘어서
상상하면 무서울 정도였다.


그땐 왜 그렇게 느꼈을까.

그때의 나는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들을
곧 나 자신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괴로웠던 시절에는
폭력적인 장면, 말도 안 되는 상상,
내가 원하지도 않는 생각들이
갑자기 떠오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의심했다.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이런 모습을 들키면 안 되는 거 아닐까.


그래서 나는 숨기려 애썼다.

내가 얼마나 불안정했는지,
얼마나 지질한지,
얼마나 겁이 많은지를.

그리고 마음속으로
항상 이걸 두려워했다.


“이런 나를 알면
사람들이 떠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질문을 쓰며
그 두려움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하나를 알게 되었다.


나는 생각과 나를 동일시하고 있었고,
그 구린 부분을 나 스스로 먼저 거부하고 있었다는 걸.

생각은 내가 아니다.
생각은 내가 본 장면들, 들은 말들,
그 순간의 감정 상태가 섞여 만들어진
지나가는 현상에 가깝다.


의식이 약해질 때
난폭한 영화 하나만 스쳐도
머릿속에서 아무 의미 없는 장면들이
툭 하고 튀어나온다.


그건 내 본질이 아니다.
그냥 인간의 마음이 가진 특성이다.

이걸 조금씩 이해하면서
내가 도달한 결론은 아주 조심스럽다.


구린 지점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그걸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관계가
어쩌면 가장 진짜 관계가 아닐까.

나 스스러와는 물론이고 타인과의 관계도.


물론 모든 걸 아무에게나 드러낼 필요는 없다.

관계에는 예의와 존중,
거리와 깊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나의 취약함을

나 자신부터 조금씩 허용할수록,
그걸 함께 바라봐 줄 사람들도
조용히 내 삶에 남는다.


나는 아직도 연습 중이고,
여전히 숨기고 싶어질 때가 많고,
여전히 흔들린다.


그럼에도 내 가장 구린 부분을
사랑의 영역 안으로
조금씩 들여놓고 감싸 안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것이
요즘 내가 배우고 있는
관계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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