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만들어내는 재료, 믿음

나는 무엇을 믿을 것이며, 어떤 현실을 창조하고 싶나?

by 하늘빛

진실된 나로 다가가는 내면 여행 D+4


질문
20대에 인생이나 자신에 대해 믿었던 것 중
이제는 더 이상 믿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요?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꽤 많은 리스트가 나왔다.

그만큼 내가 많이 변화했다는 증거들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가 성장한다는 건 새로운 걸 배우는 것보다,

더 이상 믿지 않아도 되는 낡은 믿음을 내려놓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그렇게 내려놓은 믿음 중에서 나 자신에 대해 믿었던 세 가지, 그리고 인생에 대해 믿었던 한 가지.

하지만 더 이상 믿지 않는 것들에 대해 나눠보고자 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

1. 나는 찐따다 → 나는 내가 좋고 사랑스럽다.

20대의 나는 나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었다.
“인기 많지도 않고, 공부 잘하지도 않고, 놀 줄도 모르고…
딱히 특별한 것 없는 존재. 한마디로 난 찐따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렇게까지 믿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싫어할 것이다.”

그러면 정말 내가 믿는 그대로의 현실이 펼쳐진다.

내가 나를 싫어하니까 사람들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였고
그 안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외로움을 겪었다.


하지만 나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하고 제일 먼저 내면을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다.
감정을 허용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어떤 형태의 나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나를 좋아하자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이건 기적이 아니라 거울의 법칙이었다.
세상은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을 그대로 반영해 준 것이다.


2. 사랑받기 위해 필요한 존재여야 한다 →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존재다.

20대의 나는 이렇게 믿으며 살았다.
“사랑받으려면 유용해야 한다.”
“도움이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서 관계에서 과하게 애를 썼다.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고,
호의를 얻기 위해 헌신하고, 맞추고, 희생했다.


그런 에너지는 그런 에너지를 끌어들이는 법

이를 본능적으로 감지한 주변 사람들은
정서적·시간적·금전적으로 의존하거나
이용하려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의 나는 그것을 친절이라 착각했지만
타인이 이것이 필요할 거라 생각한 나의 기만과

그것을 상대에게 내가 해줄 수 있지. 그러면 나는 사랑받을 거야

하지만 조건부 사랑은 사랑이 아닐뿐더러 두려움이기에

주고 돌려받기를 바라거나 계산하는 내가 있었다.

나는 사실 사랑을 얻기 위한 거래를 했던 거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다.
부탁을 들으면 즉시 대답하지 않는다.
잠시 멈추고, 시간을 두고,
내 안의 진짜 대답을 들은 뒤
필요하면 명확하게 NO라고 말한다.


이 이슈로 배운 것이 있다.
애매한 헌신보다 분명한 거절이 관계에서 더 깊은 신뢰를 만든다.

또한 사랑은 증명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서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됐다.


3. 발표하면 떠는 사람 → 떨려도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사람

학창 시절 발표불안과 대인공포가 있었던 나는 오랫동안 이렇게 믿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가 고장 난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보면 그건 타고난 결함이 아니라 훈련 없이 상처만 받았던 영역이었다.


성인이 되고 난 후 나는 부단히 나에게 도전했다.

발표 기회가 있으면 두려워도 하겠다고 먼저 외치고부터 봤다.

더 이상 발표할 때 불안하고 두려워서 그릇치고 수치심을 느끼는 게 무엇보다 싫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를 비로소 그때의 감정들에게 감사하다. 그렇게까지 징글 하게 느끼지 않았다면

이렇게 까지 행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대충 살았을게 분명하다. 피하면서.


NLP 스피치 모임, 공연 기획 회사에서 MC, 스리랑카 워크숍 MC,

뉴욕에서 즉흥연기 수업( Improv101)과 (스토리텔링 수업) Storytelling Class,
오픈 마이크, 그것도 영어로.


도전이 쌓이고 쌓이며 덜덜 떨리던 사람은
떨림을 이용해 진심을 담아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사람으로 진화했다.


어릴 적 부끄러웠던 그 기능은
불량품이 아니라 재능이 되기 위해 하드 트레이닝이 필요했던 영역이었다고 의미가 바뀌었다.


인생에 대한 믿음

희생자 → 주인으로

그리고 가장 늦게, 가장 어렵게 바뀐 믿음.

내가 삶을 살아가는 모드를 전체로 보는 눈이 생기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바로, “나는 피해자다.”라는 생각이다.


집안, 부모, 환경, 사회, 사람…
힘든 일이 생기면
내 안을 들여다보기보다
원인을 외부에서 찾았다.

그러면 잠시 속은 편하다.
하지만 치명적으로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


그 순간 삶의 주도권과 자유를 잃게 된다.

무언가를 탓하는 순간 결론은 늘 같았다.
“나는 어찌할 수 없다.”

그러면 삶은 바뀔 수 없다.


문제는 반복되고
감정은 반복되고
상처는 반복된다.


“문제가 터졌을 때 원인이 밖에 있다고 믿는 사람은 평생 그 문제 안에 살고,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보는 사람은 그 문제를 끝낸다.”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다.

일이 생겼을 때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했지?”

“내 안에서는 어떤 패턴이 작동했지?”

“이번에 어떤 선택을 하고 싶지?”


그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삶은 반복이 아니라 진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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