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삶으로 보여주신 3가지 가치

사람은 말이 아닌 삶으로 가르친다

by 하늘빛

진실된 나로 다가가는 내면 여행 D+6

질문

어린 시절에 가장 친밀했던 사람은 누구였고, 그 관계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어릴 적 가장 친밀했던 사람은 아버지였다.

되돌아보면,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린 나에게 삶의 방향을 미리 심어주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했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부터 넓은 세상을 경험하길 바라셨다. 젊은 시절 카투사 복무를 하신 이후 “세상은 넓다. 좁은 한국서만 살지 말고 세계를 누비고 다녀라.”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앞으로 영어가 중요하고 영어를 잘하게 되면 기회가 많아질 거라는 생각을 하셨던 모양이다.


오빠와 나를 위해 자연스러운 노출을 위해 영어 책과 영어 비디오를 집안 곳곳에 배치해 두고, 놀아보게 하고 같이 놀아주신 적이 많다. 특히 주말에 다른 지역에서 일하고 계신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는

아이스크림 가게 역할 놀이를 영어로 하고 팝송을 같이 부르고 나에게는 전혀 지루하지 않고 즐거운 여행길이었다.


이렇게 그저 나에게는 즐거운 놀이였을 뿐인데, 그것은 세상과 연결되는 첫 번째 언어를 공부해야 해의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으로 경험하는 방식이었다.


덕분에 어릴 적부터 나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었다.

언젠가 나는 세상으로 나아갈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실제로 나는 20개국, 60개 도시를 여행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 사이 뉴욕으로 터전을 옮겼고, 지금은 치앙마이에 살고 있다.

그 시작점에는 분명 아버지가 있었다.


또한 중학생이었을 때 아버지와 함께한 새벽 5시 등산을 했었는데, 이 경험은 그가 나에게 심은 두 번째 씨앗이다.


일어나는 게 힘들긴 했지만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앞산 고산골 숲길을 오르며 숨이 차오르는 동안

아버지와 함께 하며 대화하는 시간이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깨닫지 못했었다.

아버지가 말 대신 직접 몸으로 나를 가르친 것이 있었다.


아버지께서 가장 많이 강조하신 잊을 수 없는 명언에 그 가르침이 녹아 있다.

“Sound body, sound mind. “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듣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나는 자연스럽게 산을 좋아하고,

하이킹, 요가, 무에타이 등 몸의 움직임을 삶의 축으로 삼는다. 운동하고 건강한 것이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존재의 근육이라는 걸 어릴 적부터 몸으로 배운 셈이다.


끝으로 세 번째 씨앗이다.

아직도 내게 잊지 못할 선명한 장면이 있다.


고2 가을 시험을 앞둔 일요일.

월요일부터 시험이 시작이라 벼락치기로라도 공부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울상인 나를 본 아버지는 갑자기 말했다.


“오늘 당일 치기로 여행 갈래?”


시험이 걱정된다고 망설이자

아버지는 팩트를 날리셨다.


“지금 한다 해서 큰 차이 없다. 공부는 평소에 하는 거다. “


그 말에 수긍을 하고 우리는 가볍게 짐을 싸서 바로 떠났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가장 빨리 떠나는 표를 끊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구미 금오산으로, 단풍 든 산속으로, 계곡으로 와 있었다.


계곡 바위에 앉아서 싸 온 간식을 먹고 물을 서로에게 뿌리며 깔깔 웃던 그 순간 아버지가 내게 전해주려던 메시지가 온몸에 새겨졌다.


“어떤 때라도 인생은 즐거울 수 있다.

그 즐거움을 잊지 마라.”


그날은 삶에서 시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배운 날이다. 삶은 기쁨과 연결되어 있을 때, 현재를 온전히 즐길 수 있을 때, 살아있는 것 같음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돌아보면, 아버지와의 관계는

이 세 가지를 내 삶에 깊이 새겼다.


1. 세상은 넓다 — 두려워하지 말고 나아가라.

2. 건강이 최우선이다 —몸을 건강하게 하라.

3. 삶은 즐거워야 한다 — 기쁨을 잊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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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 아버지가 내게 준 가르침이 중요한 가치로 작용할 만큼 아버지는 내 인생에 영향을 많이 끼쳐주신 분이다.


넓게 보고 세계를 여행하고,

몸을 돌보며 자연과 연결되고,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잃지 않는


아버지는 내 진로를 정해준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행복해질지를 미리 알고 기반을 깔아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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