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사랑 속에서 배운 나의 자아 형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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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7남 2녀 중 셋째 아들이었던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대가족 속에서 자랐다. 늘 식구가 많았고, 명절뿐 아니라 평소에도 친척끼리 여행을 자주 다녔다. 특히 우리 가족에게는 가족계추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돌아가면서 한 가족이 호스트가 되어 여행지와 이벤트를 직접 기획하고 모두가 함께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여행은 일탈이 아니라 일상이었다. 부모님 역시 여행을 좋아하셨기에 다른 가정보다 훨씬 더 자주 여행을 다녔다. 그 영향은 지금의 나에게 깊이 남아 있다.
나는 여행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꿈꾼다.
언젠가 내 가족을 꾸리면, 남편과 아이와 함께 전 세계를 집처럼 바라보는 삶을 만들고 싶다.
세계를 무대로 생활하는 삶, 사랑하는 가족과 탐험할 생각만 해도 설렌다.
하지만 대가족의 장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살아계셨을 때 할머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속 시끄러워 죽겠다.”
그 말 그대로, 가족 간의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엄마와 할머니, 엄마와 고모들, 엄마의 동서지간…
날카로운 말들은 넘쳐났고, 감정은 쉽게 과열되었다.
엄마는 싫은 말을 못 하는 순종적인 성격을 가지셨기 때문에 누군가가 갈등에 맞서야 할 때면 결국 내가 나서서 대변인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수줍음도 많고 눈치도 많이 보는 아이였지만, 공평하거나 부당한 상황 앞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용감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이미 나는 부당함에 거침없이 저항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양육의 구조도 내 자아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부모님과 함께 살지 못하고 조부모님 손에서 자라며 스스로 해야 한다는 감각을 일찍 체득했다.
어른들 사이의 긴장감, 감정적으로 여유 없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눈치를 읽어야 했고,
그래서 철이 빠르게 든 아이, 일찍 어른이 된 아이가 되었다.
부모님과 다시 함께 살게 된 뒤에도 배움은 계속됐다.
서로에게 쏟아지는 존중 없는 말투, 차가운 태도, 사랑 앞에서의 서툼과 미숙함.
매일 그것을 보며 자란 나는 어느 순간 이렇게 생각했다.
“저럴 거면 왜 같이 살지?”
그래서 나에게 연인의 기준에 예쁜 말투, 존중, 다정함 이 세 가지가 없는 관계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이 없을 바에는 차라리 혼자가 낫다.
이건 철벽이 아니라, 어릴 때 경험한 반대의 교훈이 만들어준 나의 안전지대다.
가족은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나는 수많은 자아의 조각을 얻을 수 있었다.
여행과 설렘,
갈등과 긴장,
따뜻함과 상처,
자유와 책임.
그 모든 것이 뒤섞인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부족함도 상처도, 따뜻함도 사랑도
그 모든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