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상처, 사랑으로 돌아오는 세대
족의 역사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습관, 직업 경로, 관계 패턴 등이 있다면, 그중에 당신이 자신의 삶에서 되풀이하고 있거나 끊어낸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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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도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는 눈에 보이는 유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유산이 훨씬 더 오래 남는다. 돈보다 오래 남는 것, 관계보다 무겁게 남는 것은 감정, 신념, 삶의 방식이다.
얼마 전, 오빠와 집안의 대물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생각하는 답변을 나눠줬다. 그는 우리 집안의 대물림을 세 단어로 정리했다.
선함 , 가난, 고집
듣자마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선함은 미덕이라 이어져도 좋겠지만, 가난은 끊고 싶고, 고집은 방향에 따라 칼도 되고 방패도 된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도 또렷하게 떠오른 세 가지가 있다.
인정 중독, 조급함, 비난
우리 집안에는 칭찬을 갈구하는 에너지가 있다. 할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선한 분들이었지만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내가 했다”를 인정받고 싶어 했고 정작 자식에게는 칭찬에 인색했다.
그 패턴은 나에게도 남았다. 겉으로는 담담한 척하면서도 마음의 중심이 흔들릴 때면 칭찬 한마디에 우쭐, 비난 한마디에 축 처지는 나. 내가 가장 사랑받고 싶었던 존재에게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는 걸 이제야 안다.
“나 스스로 좀 인정해 줘.”
이건 지금 내가 의식적으로 끊어내는 대물림이다. 사랑과 인정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시작되는 연습.
그게 지금의 내가 걷고 있는 여정이다.
내가 발견한 두 번째 대물림은 성격이 급하고, 모든 것을 서둘러 끝내려는 조급함이다.
한국인 전체가 가진 집단 무의식일 수도 있지만, 우리 가족에게서는 더 강하게 흐르는 지점이기도 하다.
말할 때도, 먹을 때도, 일할 때도, 계획할 때도
무엇이든 빨리 끝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겉으로는 부지런함과 유능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유 없음과 자기 억압을 만들어냈다.
조금이라도 쉬려고 하면 내 안에서 이렇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여유 부릴 시간은 없다.”
이 믿음은 나에게 즐길 틈 없이 속도를 요구했다.
빨리 이루고, 빨리 성장하고, 빨리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게 했다.
그 결과는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애쓰는 삶의 연속이었고, 삶에 쫓기며 사는 방식이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먼저 불안해지고,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항상 다음, 그다음, 또 그다음을 향해 달려가게 했다.
그리고 조급함이 심해질 때면
마음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몸은 그 뒤를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어
물건을 어디에 두고 왔는지 기억하지 못하거나 급하게 움직이다가 어디에 부딪히고 몸 곳곳에 멍과 상처가 마를 날이 없다. 친한 친구가 이런 나를 볼 때마다 늘 같은 말을 한다.
“Be mindful.”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더 빨리가는 능력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와 연결되는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현재에 머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빨리 사는 삶이 아니라 깊이 현재에 머무는사는 삶을 선택하는 연습을.
가족의 그림자 중 가장 강력했던 건 이것이었다. 일이 잘못되면 책임자를 찾는 방식이다.
“누가 그랬어?”
“왜 이렇게 했어?”
“네가 잘못했지?”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죄책감을 돌릴 사람을 찾기 바빴다.
그걸 보며 자랐고 성인이 되어 깊은 관계를 맺을 때 나도 모르게 이 습관이 올라오는 걸 관찰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것은 지금도 계속해서 의식의 불을 켜두는 나의 ‘앗 뜨거’의 영역이다. 인생에 어떤 일이든 탓을 해서는 주인 되게 살 수 없다.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하나뿐이다.
아직도 진행 중인 대물림들을 나열해 봤다.
대체 그럼 대물림은 왜 존재하는가? 인간에게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
대물림은 우리를 벌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멈추기 위해, 끝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을 끝내는 순간 바뀌는 것은 나 한 사람의 삶이 아니라 가족의 미래 전체다.
나는 가족 문제의 연장선상이 아니라 가족 역사의 전환점이다.
“상처는 너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닐지 몰라도, 그 고리를 끊는 것은 너에서 끝날 수 있다.”
(The dysfunction didn’t start with you, but it can end with you.)
— Dana Arcuri
나는 고통을 받아들인 사람이 아니라
나는 고통을 종결하기 위해 여기 있다.
그것이 깨어난 세대의 역할이다.
지금, 내가 걷는 이 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