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를 증명하기

증명의 오류에서 의미를 찾다

by 마자

필요를 증명해야 했다. 존재의 이유가 필요했다. 존재하기 때문에 이미 충분하다는 다정한 위로는 내 삶에 녹아들지 않았다. 존재하려면 반드시, 꼭, 무조건이라는 꾸밈말이 붙는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고 늘 곱씹어 왔다. 나의 지난 시간을 후회에 버무려 반성했고, 맞이할 시간들은 스스로를 의심하며 불안해했다. 마땅히 현재의 나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더 강박적으로 일상을 계획하고 관계를 계산하며 내가 세상에 쓰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썼다.


그래서일까. 4년 전부터 내 안에서 자주 솟아나는 마음이 있었다. 사라지고 싶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마주한 친구에게 ‘나 자주 사라지고 싶어.’라며 읊조리듯 내어놓았다. 술상에 탁 내려진 내 진심이 우리 둘의 안줏거리가 되길 바랐다. 막돼먹은 내 바람이 친구와의 대화에서 희석되고 휘발되길 바랐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날은 친구의 하루도 퍽 버삭했던 날이었을까. 가까이 가면 금세 다른 꽃으로 날아가 버리는 봄날의 나비처럼 서로의 마음이 곁을 내어주지 못했다.


취기를 안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아끼는 하늘색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는 나에게 택시 기사는 살피듯 물어왔다. ‘젊은 사람이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이토록 서럽게 우나.’ 기사의 물음은 취한 나에게 위로였나 보다. 울어도 된다는 정당성을 부여받은 듯 숨죽이던 내 울음은 엄마를 놓친 아이 마냥 차 안을 가득 채웠다. 내 서러움으로 한껏 적셔진 하늘색 손수건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손수건의 무게보다 조금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일상을 맞았다.


어릴 적 한 동네 사람들은 나를 ‘마자’라고 불렀다. 둘째가 아들이길 바랐던 할머니의 실망이 담긴 이름이다. 고향 사람이 딸의 이름을 마자로 짓고 밑으로 남동생을 봤다는 시골 신화가 부산 서쪽, 한참 공단으로 개발 중이던 이곳에서도 기적을 일으킬 것이란 할머니의 믿음은 굳건했다. 출생신고 담당이 엄마였던 것이 다행이다. 나임을 증명하는 각종 서류에는 마자의 흔적이 없다. 하지만 돌사진은 남자아이 한복을 입고 찍은 터라 설명 없이 누군가와 어릴 적 앨범을 볼 수 없다. 미술관의 도슨트처럼 사진 속 이미지가 상징하는 바를, 이미지에 담긴 서사를 설명해야 한다.


마자의 필요는 장손의 탄생임을 온 동네에 피력하던 할머니에 맞서 증명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내가 가진 순기능, 역기능을 총동원해 마자의 필요를 구축해 왔다. 늦게 시작한 말은 날로 늘어 말싸움의 일인자가 되었고, 타고난 율동감으로 유치원에서 늘 선생님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국민학교 때는 바른생활과 우수한 학업태도로 인정과 질투를 많이 받았고, 중학교 때는 감투를 써 내 필요를 유지했다. 고등학교의 방황은 있었지만 전공선택이 직업으로 이어진 감사함도 가졌다.

증명의 시간들이 김자반처럼 켜켜이 꾸덕하게 쌓여갔다. 살만했다. 잘 살아내고 있다고 믿었다. 알고 있었지만 눈을 감았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지 못했던 나는, 상대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스스로 만든 피상적인 관계에서 상처받고 고립되어 갔다. 할머니만 아들의 신화를 살아낸 게 아니다. 나도 인정의 신화에 묻혀 허우적 대기를 몇 년 했더니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어 사라지고 싶었던 것이다.


다행히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8칸에서 6칸, 5칸으로 줄어들기 시작한 건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응축된 서러움이 터지듯 쓰인 글들은 거칠어, 아직은 누군가에게 다정히 다가가 울림을 전하지 못한다. 허나 나에게 만은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는 것 같다. 지금의 너도 괜찮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글쓰기는 기억의 재구성을 도왔다. 마자는 내 삶에서 존재 부정의 의미가 아니라 회복의 상징이 되었다. 직장에 있는 엄마를 대신해 자주 감기에 걸리는 나에게 늘 따뜻한 국밥을 끓여주시던 할머니, 내가 무엇을 해도 매번 괜찮다는 아빠, 내 성장에 최고 지지자인 엄마, 결정적 순간에 내 편을 들어주는 언니 그리고 언제나 나를 응원하는 동생. 여전히 곁에 있어주는 소중한 이들. 마자는 필요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주인공이다. 마자는 이제 내 삶의 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