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취하고 술에 취하면 우리는 충분하다.
중독은 아닙니다. 의존도 아닙니다. 그냥 좋아하는 겁니다. 단호히 말하고 싶지만 그 경계 어디쯤 나를 두게 하는 건 ‘술’이다. 최근 시사프로그램에서 ‘고기능 알코올 중독’을 소개하며 여성 중독자들과 혼술방송, 자신의 직업은 능하게 해내지만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취재해 보였다. ‘젊고 멀쩡해 보이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영상 속에 이들의 일상에서 나를 엿보는 일은 가루약의 끝맛처럼 씁쓸했다.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에 내 답은 ‘좋아합니다.’이다. 동문서답이다. 양을 물었지만 선호로 답한다. 술은 나에게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술에 담긴 나의 서사를 애정을 담아 더듬더듬 전해본다.
소주
사무에드 한 마리와 골든리트리버 두 마리를 키우던 학교 근처 고깃집에서는 살얼음 소주를 마실 수 있었다. 이가 시릴 정도의 차가운 얼음이 뜬 소주는 쓴맛을 조금 감해주어 인생이 소주보다 덜 쓰던 시기의 우리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주량 몇 병의 기준이 되던 소주는 좋은데이의 등장 이후 답변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반복측정을 요했다. 진로 기준이냐 좋은데이 기준이냐. 21도 진로도 16.5도 좋은데이도 다들 취하면 다음날 병만바도 질색을 할 거면서 저마다 브랜드별 소주맛과 도수를 품평했다.
가난한 주머니들에게 가성비 좋은 취기를 선물해 주는 고마운 소주지만 ‘네가 그래봤자 소주지’라고 말하는 듯 라벨디자인은 무성의하다. ‘업계 관계자 여러분 소주에게도 이쁨을 주시지요 웅얼거리는 내 술주정이 전해졌는지’ 최근 진로 100주년 기념 라벨스티커는 요상하게 매력적이다. 이로서 소주도 더 이상 광고모델에게 미모 몰아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소주의 최애 안주는 닭똥집이다.
맥주
곱고 다정한 목소리로 ‘사장님 저희 켈리하나랑 좋은데이하나요.’ 독백 이후 음식이 세팅되기 전 도착한 두병의 술과 4개의 잔. 원샷의 비율로 가볍게 소맥을 만든다. 마주한 이에게 잔을 건네고 내 몫의 잔을 들어 보이면 같은 모습으로 잔들 들어 보이고 들이킨다. 우린 데칼코마니다. 잔을 내려놓으면 짧은 묵언수행은 종료된다. 이제부터가 대화의 시작이요 식사의 시작이다.
맥주는 카멜레온 같은 술이다. 주말 술자리에서 마셔보겠다는 의지를 끌어올리는 첫 잔의 맥주는 마중물이다. ‘위야 술이 들어간다. 준비해.’하며 오리엔테이션을 한다. 소파에서의 맥주는 OTT를 향한 몰입도를 높여주고 책상 앞의 맥주는 나의 하루를 들어준다.
대학시절 맥주 빨리 마시기 대회에서 여자부 1등을 한 수상경력이 있는 나는 공대남자 친구를 얻었다. 이날의 맥주는 틴더다.
그 시절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에 단골이었던 산적 같은 덩치에 순한 눈을 가진 그분은 평일 6시면 가게에 들어와 맥주 1700cc와 5천 원짜리 마른안주를 시켜 피쳐를 통째 들고 3모금에 마시고 30분 안에 나섰다. 1700 아저씨. 내가 지은별명이다. 1700 아저씨에게 맥주는 오늘 하루도 이만하면 됐다 하는 전원 off버튼 이길 바랬다. 돌아간 집에서는 적당한 취기에 편히 잠을 청할 수 있기를.
맥주의 최애 안주는 생라면이다.
위스키
불이 꺼진 주방에서 은은히 비치는 갈색 빛의 글라스. 숨죽인 듯 목구멍을 넘어가는 끈적한 액체의 울림. 탈칵. 아이보리 바란스커튼이 걷히면서 실크잠옷을 두른 풍성한 컬을 가진 여성의 등장. 식탁에 앉아 고뇌하는 세련된 남성의 어깨에 손을 살포시 올리며 전해오는 다정한 물음. ‘괜찮아요? 안주도 없이. 저도 한잔 줘요. 무슨 일이에요.’
‘나도 어른이 되면 꼭 실크 잠옷 입고 주방에 앉아 은은한 조명아래 위스키 한 잔 할 거야. 안주는 꼭 먹지말자.’라고 다짐하게 만들었던 드라마 속 장면이다. 나에게 위스키는 성공의 맛이다. 첫 직장에서 맛본 로열샬루트는 내가 독주에 강하다는 것과 돈의 맛을 알게 해 주었다. 단점이라곤 소주맥주보다 돈을 많이 줘야 한다는 것 말고는 없는 위스키는 내 선호에 맞추기보다 수입의 비율에 맞춰 선택하기 일쑤다. 그래서 내가 찾은 정답은 조니워커블랙라벨. 수입이 좋은 달은 조니워커 더블블랙이다. 이보다 내 감각을 사로잡는 위스키는 훨 많지만 욕구와 현실의 타협으로 내 입맛도 하향평준화시켜 준다. 이토록 놀라운 감각의 세계여!
위스키의 최애 안주는 다크초콜릿이다.
막걸리
여행의 재미 중 하나는 그 지역 특산물과 기념품을 구경하고 집에 들이는 것이다. 그중 지역의 막걸리는 데려와야 할 품목 중 ‘반드시’에 속한다. 반드시를 행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 엄마다. ‘딸~~ 엄마 안동인데.’ ‘딸~~ 엄마 밀양인데~~’ ‘딸~~ 엄마 속촌데~~’ 이렇게 시작하는 전화의 용건은 십중팔구 막걸리를 사 온다는 소식이다. 엄마 안전하게 내려오란 말은 빠르게 막걸리 커브길에 넘어가지 않게 단디 공가서 데려오라는 말은 천천히 또박또박 당부하며 부산도착 시간을 재차 확인한다. 사온 막걸리를 건네며 눈을 반짝이는 나를 향해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엄마는 술 많이 마시면 몸 상한다는 엄마표 염려를 양심상 전한 후 함께 마실 잔을 고르는 흥이 묻은 등을 보여준다. 낮에 벌어지는 막걸리 파티는 내가 최사장님과 전여사님의 둘째 딸인 것을 잊게 만들 수 있지만 여행의 순간에도 딸을 떠올리는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마실 수 있게 해 준다. 여전히 막걸리를 많이 흔들면 탁하니, 왜 내 잔은 칠부냐 하며 티격태격하지만 우리 가족에게 추억의 한 장을 남겨주는 고마운 술이다.
막걸리의 최애 안주는 엄마표 호박나물이다.
와인
마음이 왠지 모르게 센티해지는 날에는 터벅터벅 걸어 마트 와인코너 앞에 멈춰 선다. 어떤 와인이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을까 당도, 바디감, 원산지 그리고 판매가와 할인가를 본다. 와인은 가장 모르는 술이다. 와인을 잘 알고 좋아하는 친구는 첫 병만 좋은 와인을 마시고 이후 2만 원을 넘지 않는 와인을 마시라 했다. 취하면 그 맛이 그 맛이란 그의 설득력 있는 제안이다. 와인에 대해 공부해 볼 요량으로 여러 영상을 봤지만 들을 때뿐 돌아서면 까막눈이다. 그래서 나는 첫 병부터 2만 원을 넘지 않는 와인을 마신다. 23살의 대학생 커플이었던 그와 내가 기념일에 ‘저렴한 와인바’를 검색해 찾아 마신 달달한 빌라엠, 30살 겨울 신라호텔에서 무지가 들킬까 웨이터에서 선택을 맡겨 마신 이름 모를 20만 원의 와인, 41살의 연인이었던 그의 최애 작업 와인인 몬테스알파, 42살의 이별의 슬픔을 달래 준 샴페인 모엣샹동까지 내 사랑의 서사에는 와인이 함께했다. 이제 빌라엠은 달아서 마시지 않고 호텔에서는 생맥주까지가 최선이다. 몬테스알파는 나의 망각기능을 상실시키며 모엣샹동의 호사는 자주 부릴 수 없다. 와인을 신의 눈물이라 했던가. 나에게 와인은 사랑의 기억도 이별의 아픔도 재구성할 수 있게 해주는 향정신성 물약이다. 시간의 흐름 앞에 장사 없다. 모든 것은 흐르고 변하니 괜찮다.
와인의 최애 안주는 후추 가득 웰던 안심 스테이크다.
술은 양가적이다. 마실 땐 즐겁고 마신 후 괴롭다. 처음엔 힘듦을 잊게 해 주는 듯하다 안구탕진이 오기 시작하면 힘듦에 몸서리치게 한다. 축하 순간의 샴페인도 술이요 실패 순간의 소주도 술이다. 2천만 원 위스키도 2천 원 맥주도 보틀샵에 함께 진열되어 있다. 내 삶도 그렇다. 어느 날은 모든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샘솟다가 또 어느 날은 두려움과 무게감이 엄습한다. 거울에 비친 내가 사랑스러웠다가 쇼핑몰 깨끗한 유리에 비친 내가 초라하다.
기분의 진폭은 나이가 들어도 줄어들지 않고 불안과 강박이 행복의 대척점에 언제나 위치해 있다. 그래서 술을 마신다. 내 인생과 닮은 술의 특성에 동질감을 느낀다. 괜찮다, 잘하고 있다. 충분하다. 인생이 뭐 그렇다고 전하는 마음을 담은 발효된 액체인 술은 고통인 인생에 처방된 필요한 중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