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 추억을 담다
좋아야 하는데 화가 난다. 이 밤에 혼자인 나에게 이리 좋은 문장을 주면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이 환희와 감동을 누구와 나누란 말인가. 거실을 무대 삼아 따라 해 본다. 잠시 동안 나는 그가 되고 그녀가 된다. 드라마는 이런 식으로 나의 밤을 가로지른다.
그저 평범한 하루의 어디쯤이다. 드라마를 보는 일은 아주 일상적이다. 그럼에도 좋은 드라마는 내 삶의 지평을 넓혀준다. 인간이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아픔, 그리움, 미안함, 두려움 등이 잘 만들어진 이야기가 되어 내 마음에 울려 퍼진다. 좋은 책을 여러 번 읽듯 나는 좋아하는 드라마는 여러 번 본다. 책장을 정리하는 것처럼 드라마 속 문장을 마음에 차곡차곡 정리해 넣는다. 그 덕에 쓸쓸하지만 채워지고, 억울하지만 위로되는 마음을 온전히 만난다.
구한말을 배경으로 애국과 매국의 역사 속에서 상실과 사랑을 다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12번째 정주행을 마쳤다. 개인의 안녕보다 의병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고애신’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쓸쓸하다. 그녀를 사랑하는 이방인은 어차피 질 싸움인데 왜 하는지 묻는다. 비난이 아니다. 사랑하는 그녀를 지켜내고 싶은 간절함이 담긴 애잔한 질문이다. 고애신은 내내 준비해 온 대답인 양 가만히 답한다. “적어도 하루는 늦출 수 있지. 그 하루에 하루를 보태는 것이지.”
우울하면 과거에 갇히고 불안하면 자꾸 미래로 가버린다. 후회되는 것들을 끊임없이 반추하고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걱정하느라 하루를 힘겹게 보내곤 한다. 나도 그렇다. 고애신은 나라의 독립을 반드시 이뤄내고 말겠다는 거창한 대답으로 자기 기만에 빠지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살아낸 하루들이 모여 삶이 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쌓인 하루들의 힘은 약하지 않음을 단호히 전한다. 불안이 높은 나는 4년 후 전세 계약 만기와 70대로 예정해둔 은퇴, 무작위로 지정될 질병으로 자주 두렵다. 걱정이 많아 뇌가 타버릴 것 같다. 이런 나에게 고애신이 물어온다. 오늘은 네 삶에 어떤 하루를 보탰니?
무표정의 인생들이 각자 방식의 해방으로 사랑, 행복, 의미를 찾아가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4번째 정주행을 마쳤다. 말이 없고 염세적인 주인공 ‘염미정’ 앞에 갑자기 나타나 매일 술을 마시는 ‘구씨’는 서로의 그림자를 ‘추앙하는’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알게 되고 회복해 나간다. 결코 성장 드라마는 아니다. 외부가 정해준 방식과 기준이 아닌 자기만의 선택으로 삶을 이끌어 진짜 자기를 만나는 이야기다. 성장 드라마네? 그러나 진부하지 않다. 더운 여름 퇴근길, 덥다고 불평하는 동료에게 염미정은 말한다. “지금 기분 잘 기억해두었다가 겨울에 추울 때 써먹자”
잘 기억해 두었다가 꺼내 써먹을 좋은 기억이 나에겐 무엇이 있을까? 6월의 어느 날 나는 14살, 동생은 5살이던 해 서쪽에서 내린 붉은빛이 마당을 감쌀 무렵이었다. 화분에 핀 꽃 냄새를 맡는 동생의 표정이 사랑스러워 필름 카메라로 동생의 기쁨을 담았다. 부모님은 퇴근 전이었고 우리의 구세주 언니도 아직이었다. 마당에 핀 풀, 꽃들을 구경하며 놀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에 이끌려 수돗가로 갔다. 창고에서 긴 호수를 꺼내 끼우고 물을 틀었다. 빛 아래 쏴 번져나가는 물줄기는 동생의 얼굴부터 간지럽히고 이내 우리의 마음도 간지럽혔다. 마음이 메마른 날, 그날의 공기와 빛, 냄새 그리고 우리의 웃음소리를 기억해 낸다. 잘 써먹고 다시 주머니에 넣어둔다.
드라마의 명문장은 인물들의 서사를 통해 의미가 풍부해진다. 풍부해진 의미가 내 삶에 들어와 나를 풍요롭게 만든다. 나의 어제를 그려보고 나의 미래를 꿈꾼다. 나도 내 삶의 고애신이고 염미정이다. 주인공이다. 최근 흥행한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오애순의 엄마 전광례는 딸의 손을 잡고 걸으며 주문을 걸 듯 당부한다. “푸지게 살아”. 드라마 덕에 나의 오늘도 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