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애신이고 싶지만 송서래

못난 사랑도 사랑이다. 아니라 하지 마라

by 마자


마침내.


영화 ‘헤어질 결심’의 서래와 해준, 두 사람의 이끌림의 시작은 ‘마침내’를 입 밖으로 내어놓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영화 도입부에서 추락사한 서래의 남편 사고를 조사 중인 형사 해준은 서래와의 첫 대면을 한다.


남편이 ‘마침내 죽을까 봐’ 걱정했다는 서래를 바라보는 해준은 사건 해결에 대한 결의 속에 사심을 담아 녹진한 눈빛을 서래에게 고정해 나지막이 따라 읊조린다. ‘마침내’.


이후 그들의 마음은 서로를 쫓는다. 미결된 사건을 방 가득 붙여두는 불면증을 가진 형사 해준에게 서래는 해군 호흡법을 알려주며 마음을 전한다. 사극을 보며 한국말을 배워서 그런지 고풍스럽다며 탐문을 핑계로 해준은 서래를 담고 또 담는다.


서로에게 사랑을 말할 수 없었던 그들이기에 이윽고 멀어진다. 사랑을 중단하지 못한 서래는 애써 해준 앞에 나타난다. 또다시 살해 현장에서 마주한 해준은 서래에게 당신 때문에 붕괴되었다며 이기적인 사심을 퍼붓는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

...............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의 복합체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서래는 선택한다.

자신을 붕괴시켜 파괴하기로.

마침내, 밀려오는 썰물에서 끝끝내 사라진다.




‘이건 나의 히스토리이자 나의 러브스토리요 그래서 가는 거요 당신의 승리를 빌며’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마지막 회에서 유진이 죽음을 자처해 애신을 구하며 전한 마지막 말이다. 조선노비출신 미해군 대위 유진초이는 일제의 핍박을 받는 조선에 불편한 배치를 받은 뒤 삶의 이유가 될 귀족여인 고애신을 만난다.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은 내내 서로의 길을 응원하지만 그 길에 서로가 나란히 일 수 없음을 절절하게 받아들인다.


조국을 위해 불꽃처럼 살고 싶다는 애신을 위해 유진은 애신의 절규 속에서 불꽃이 된다. 고애신은 귀족여인으로서의 삶, 독립투사로서의 삶, 사랑하고 사랑받는 여인의 삶의 길을 그저 나아간다. 치우침이 미미하다.




서래의 사랑도 애신의 사랑도 결국 세드엔딩이지만 둘의 사랑은 확연히 다르다. 망원경으로 서래를 최대한 가까이 바라본 해준은 그럼에도 서래를 자기 식으로 해석해 버리고 오해한다. 그러나 그저 멀리서 애신을 바라보며 우연한 만남에도 미소 짓는 유진은 애신의 삶을 응원하고 그녀의 선택을 믿는다.


유진은 안정감을 해준은 불신을 준다. 그럼에 애신은 용기 있게 해 나갈 수 있었고 서래는 은밀하게 해명해야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 여인의 선택의 다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안전한 미국으로 함께 떠나자는 유진의 제안을 거절하며 자신의 가치와 목표를 지켜내기 위해 조선에 남겠다는 애신과 달리 삶의 방향이 해준으로만 향해 안개의 도시 이포에 몰래 찾아드는 서래는 희뿌연 안개처럼 자신이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불분명하다.


조선시대인 만큼 정혼자가 있었던 애신은 단호하지만 예의를 갖춰 거절을 전하고 경계를 분명히 한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 애쓰기보다 서로가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선택을 한다. 슬프게도 서래는 사기꾼인 새 남편을 지독하게 이용해 해준 앞에 다시 나타난다. 조악하고 무책임한 새 남편 앞에서 서래는 불쌍한 여인이지만 욕망에 이용된 새 남편 또한 분명한 희생양이다. 도구적인 인간관계는 참으로 을씨년스럽다.


비록 유진은 불꽃 속으로 사라졌지만 자신을 위한 그의 선택에 보답하기 위해 애신은 운명에 맞서 나아간다. 서래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해준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 말로 마지막 메시지는 전한 후 해준이 싫어하는 살해현장의 피냄새를 지우듯 자신의 존재를 말끔히 지운다. 서래에게는 이 방법이 최선의 사랑이지만 한 끝내 해준에게 출구 없는 혼란을 남긴다. 수동공격인 것이다. 이 지점이 내가 보는 그녀들의 가장 큰 차이다. 나아가는 자와 사라지는 자.




나의 사랑은 자주 송서래다. 강렬함에 이끌려 현실감을 잃고 경계를 지키지 못하고 맴돌고 의존했다. 나를 위한 선택보다 그를 위한 희생이 더 나를 살아있게 했고, 우선순위에서 나의 욕구는 5위 밖이다. 작은 파괴들로 나의 애달픔을 알아주길 바라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고애신이고 싶다. 여전히 사랑 앞에서 서래의 그림자를 덮어쓰고 있지만 알아차림의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다. 그러므로 내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용기 있게 나아가는 고애신이란 망토를 두르려 한다. 종국에는 서래도 애신도 아닌 마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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