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좀 해주꼬??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by 마자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앞치마를 야무지게 둘렀다. 소매가 흐르지 않는 상의를 입고 쿠션감이 좋은 슬리퍼를 신었다. 여섯 번째 정주행 중인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태블릿에 올리고, 창문은 열고 방문을 닫았다. 출발선에 선 달리기 선수의 마음으로 호흡을 세 번하고 두 팔을 뻗어 긴장을 풀어냈다. 마음을 먹은 날이었다. 네가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 말해주고 싶은 날이었다. 내 마음에 꼴을 갖춰 따뜻하게 전하고 싶었다.

살아내며 생존을 위해 키워온 계획하는 습관은 말캉한 마음을 보이는 날에도 어김없다. 재료의 물성을 고려해 요리의 순서를 수십 번 머릿속으로 떠올려보았다. 최종 점검을 위해 닫힌 냉장고 앞에서 작은 소리로 읊었다. ‘핏물을 한 시간 빼야 하니 등갈비를 먼저 꺼내고, 시락국 육수를 위해 멸치똥을 따자. 아참 폐에 좋은 맥문동도 오래 우려야 하니 뭉근한 불에 올려두고, 감자수프는 우리의 최애니깐 감자를 삶는 건 육수를 내는 동안. 보코치니 치즈 샐러드는 마지막에’

시험지가 배부되기 전 외운 내용들을 잊지 않으려는 수험생 같다. 뭐 이렇게까지 비장할 일인가. 재료를 다듬고 썰고 볶으며 평소 길러온 팔 근육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무와 당근을 채 써는 것은 저절로 수행이요, 넘치지 않게 불 조절하는 일은 자체가 주의력 훈련이다. 순서를 잘 정해 냄비와 볼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식기건조대에 그릇들이 잘 정렬되면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한 조각 먹은 듯 기뻤다. 완성된 요리를 알맞은 그릇에 올리고 나면 요리경연 프로그램 참가자가 된 듯 긴장으로 마무리 토핑을 했다. 아직 끝이 아니다. 계획한 요리에 맞춰 준비해 둔 술과 그에 걸맞은 술잔을 골랐다.


조리는 최소한, 설거지를 재빠르게 하는 나를 이토록 공들여 주방에 머물게 만드는 이가 있었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남자 주인공 황용식은 삶에 치여 풀이 죽은 여자 주인공 동백에게 만두를 먹인다. 곡기를 넣어 배를 채우듯 용식이가 사 온 만두는 동백이의 쓸쓸한 마음을 채워준다. 그런 동백이는 만두를 만들어 용식이에게 먹인다. 한입 크게 만두를 먹는 용식이를 보며 동백이는 마음이 또 차오른다. 나에게도 황용식이 있었다.


“뭐 좀 해주꼬?” 그를 만나는 동안 매 주말마다 그가 나에게 건넨 말이다. 일주일 동안 일에 치여 진이 빠진 나에게 그의 음식은 위로이자 응원이었다. 요리 힘드니 나가 먹자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요리하는 그의 등이 좋아 건조한 손을 비비며 한참을 쫑알쫑알 주변을 서성였다. 내 마음에서 “뭐 좀 해주꼬?”는 “사랑해”라는 말로 번역되어 허기진 내 속과 쓸쓸한 내 마음을 채워주었다. 이리 커도 사람은 보고 배운다. 그가 요리로 다정한 마음을 전한 방식을 배워 나도 부족한 요리로 그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비록 싱겁고 질긴 결과였지만 연신 감동하며 먹어주는 그를 보면 세상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백이도 이런 마음이었겠지? 우리 엄마도 내가 밥 먹을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어미 새가 아기새 입에 물어온 모이를 넣어줄 때도 같은 마음일 것 같다. 사랑하는 이의 입에 뭔가 넣어주고 싶은 건 만국의 공통이요 살아있는 모든 것에 본능인 듯하다.


그런 그와 헤어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뭉근한 불에 올려져 따뜻했던 수프가 식탁 위에서 차갑게 식어 가듯 우리의 시간도 그렇게 변해갔다. 차가워진 수프도 마음도 버리지 못한 나는 늘 바란다. 그가 고르는 삶은 밤은 하나도 썩은 것이 없길, 까는 귤마다 달콤하길, 집어 든 갈빗살은 속까지 잘 익었길, 다 함께 먹은 굴 요리에 모두가 배탈이 나도 그만은 괜찮길. 늘 배가 든든해 세상이 살만하다고 느끼며 나아가길 지금도 진심으로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상실을 겪은 자의 사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