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말이 되길.
반달 같던 눈과 초승달 같던 입이 점점 곡선을 잃어가고 있다. 아래로 떨군 두 눈에 가득 눈물이 고인다. 이내 방울이 되고 줄기가 되어 두 뺨으로 흐른다. 여느 초등3학년 남자아이보다 작은 체구를 가진 아이의 가느다란 팔이 오늘따라 더 도드라진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형제간 잦은 다툼이 고민이 되어 의뢰된 아이다. 9번의 상담을 진행한 날, 아이는 처음 눈물을 보였다.
“ 속상하면 왜 속상한지 말해도 괜찮아. 마음은 얼마든지, 언제든지 못생겨진단다. 예쁜 마음만 말한다면 못난 마음은 네 몸에 남아서 가시를 만들어”
나의 말이 응어리 진 아이의 마음에 가 닿았나 보다.
저 작은 가슴에 그동안 말 못 한 마음이 얼마나 많을까. 마주하는 내 눈도 뜨거워졌다. 솔직한 마음을 보여준 아이에게 고마움과 위로를 건네며 아이는 치료실을 나서고 이어 마주한 아이의 엄마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 왜 그럴 때 있잖아요. 말이 목까지 올라왔는데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하고 딱 걸려서 목안에 따갑게 걸릴 때.”
“선생님, 저는 하고 싶은 말은 다 하는 편이라. 때로는 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
“네. 좋습니다. 우리는 어른이니 상황에 따라 말을 조절할 수 있지요. 하지만 아이는 어렵습니다. 최대한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우리가 다듬어 주고 가르쳐주면 됩니다. 그래야 마음에 적개심이 생기지 않아요. (중략) 적개심이 생기면 마음의 병이 되어 감정은 행동이 됩니다. “
회기를 마치고 상담 내용을 기록하며 ‘우리는 어른이니 상황에 따라 말을 조절할 수 있지요’라고 한 나의 말에 흠칫 멈췄다.
나는 어른인데. 상황에 맞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하고 있을까?
제법 긴 시간 하고 싶은 말 보다 상대가 듣고 싶어 할 것 같은 말을 하며 살아왔다. 갈등에 취약한 나의 최선이었다. 그의 호의에 내 선호는 무의미했다. 기대했을 반응을 기꺼이 하고 상황과 맥락, 상대의 감정을 고려해 말을 잘 만들어 내어놓았다. 나의 결정이 우리의 관계를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언제까지나 반응과 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오만에 빠졌다.
그래 오만이다.
나도 한낱 평범한 인간인데 특별히 비범한 척 평생 그리 살 수 있을 것이란 오만이었다.
그럼에 가끔 진심을 말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말문이 막힌다.
어릴 적 동네 목욕탕에서 까불다 넘어져 오래된 소파의 나무 팔걸이에 가슴팍을 찍었다. 느끼기에 5분, 실제는 5초 정도 숨이 멈추고 말문이 막혔다. ‘엄마’하고 긴박하게 외치고 싶었는데 그 어떤 울림도 입을 통과하지 못했다. 짧았지만 강렬한 순간의 막힘은 어른이 된 후 진심을 말하고 싶은 때마다 재경험한다.
누군가는 이런 나에게 은근 고집이 세다 하고 또 누군가는 등신이라고 한다. 한의원에서는 화병이라 하고 정신과는 아직이다.
평생 가장 가깝게 지내할 대상이 나 자신인데 고장 난 채로 잘 지낼 수 없겠다 싶어 마련한 방편이 읽고, 걷고, 쓰고, 그리기는 것이다. 실체 없는 생각이 불안을 몰고 올 때 좋은 글을 읽어 붙들린 생각을 흘려보낸다. 새로운 생각을 잘 저장하기 위해 걷는다. 걷다 보면 좋은 글에서 파생되는 새로운 말들이 내 안에서 솟는다. 흩어지기 전에 글로 써 내려가고 그림을 그려 솟아오른 진심의 말에 감정을 불어넣는다.
이러기를 3년. 조금씩 말랑해지는 마음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