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과 다가옴

관계의 좌표

by 마자

좋아 가는 공간이 있다.

70, 80년대 벽돌집들이 줄지어 들어서있는 우리 동네는 한적하다.

초등학교 하나를 끼고 오밀조밀 오래된 상점들이 있다.

편의점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도 몇 년 되지 않는 일이라 처음 편의점을 보고 새벽에 맥주를 살 생각으로 들뜨곤 했다.

그런 동네에 낯선 상점 하나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동네어귀 놀이터 앞에 자주 모이시는 어르신들은 도대체 이곳의 정체가 무엇일까 짧은 호기심을 가질 뿐 저 문을 열고자 하는 이는 없었다.

외관은 젊은 이들이 많이 찾는 힙한 동네에나 있을 법 해 아직은 젊다고 생각하는 나도 산책하는 척 어슬렁 거리며 동태를 살폈다. 왜 용기가 없었는지 뭐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쉽게 문을 열지 못했다.

며칠 후 9살 어린 남동생을 만나 함께 가보자며 팔을 끌어 발을 옮겼다.

좀 어린 동생이 함께라면 저 공간에 내가 괜찮을 것 같았나 보다.


책과 소품들로 구성된 동네 서점인 이곳이 좋아진 이유는 마음을 쓰지 않은 공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진열장, 벽면, 모퉁이, 귀퉁이, 입구 모든 곳에 마음이 놓여있었다. 사장님이 직접 읽고 책 표지에 남겨둔 메모는 책을 만나고 데려오는 데 아주 도움이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은 서점의 장점은 사장님이다.

드르륵 나무문을 옆으로 밀고 가만히 발을 들이면 사장님은 밝은 표정과 다정한 목소리로 맞아준다. 나도 나지막이 인사를 드린다. 왠지 이 공간에서는 목소리가 자꾸 나지막해진다. 책과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구경하는 동안 사장님과 나는 각자 제 할 일을 한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다. 고른 책을 건네면 다시 밝음과 다정함이 담긴 개성 있는 포장과 함께 책을 건네받는다. 서점의 정체성이 확실히 담긴 포장에 재미를 느끼며 다시 드르륵 나무문을 열고 나서면 마음이 가득 찬다.


내가 온전히 이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가만히 기다려주는 마음과 반가움이 담긴 다가옴을 기가 막히게 전해주는 사장님의 진심이 고스란히 내게 담긴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다가옴과 기다림을 안다는 것이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참 어렵다. 다가가면 다칠 것 같고 멀어지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은 지금까지 내가 맺어 온 많은 관계에서 나를 괴롭혀왔다. 부단히 연습하고 있지만 가끔 모호한 그 어디쯤에 누가 좌표를 딱 찍어주면 좋겠단 생각을 자주해왔다.


우리 동네 작은 서점, 그곳의 다정한 사장님은 나를 연습시켜 준다. 각자 머무르다 서로 닿으면 미소 지어주는 그런 관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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