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화가 아니라 자부심
"의식주만을 위해서 노동하고 산다면 평생이 고된 인생이지만, 고생까지도 자기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해내면, 가난해도 행복한 거라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만난 문장이다.
'가난해도 행복하다.'
이 말에는 가난과 행복이 본래는 조금 떨어져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가난하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고,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뜻도 함께 담고 있을 것이다.
이 문장에 오늘의 내가 오래 머문 이유는
프리랜서로서의 경제적 불안정 때문인지,
외로움을 딛고 행복을 갈망하고 있는 요즘 마음 상태 때문인지,
어쩌면 둘 다 일지도.
그래서인지 평이한 이 문장이
자꾸만 마음을 건드린다.
가난해도 행복하려면 부자라서 행복한 것보다 더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돈으로 행복은 살 수 없지만 일정한 수준의 돈은 사람에게 안정감과 쾌감을 주고,
그 안정감은 분명 행복의 토대가 된다.
다만 어떤 지점을 넘어서면 돈과 행복은 더 이상 정비례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가난해도 행복하려면, 비록 경제적으로 다소 모자람은 있어도
나를 믿어주고 온전히 수용해 주는 한 사람이 필요하고,
삶의 뿌리가 되는 자존감이 갖춰져 있어야 하며,
좌절과 변화에 담담할 탄력성과 효능감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서로에게 연민을 가지고 사회구성원과 연대할 다정함이 필요하다.
이러한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시간과 마음을 들여 차곡차곡 쌓아가야 비로소 내 삶에 자리한다.
그래서 '가난해도 행복하다'는 말은
없음에 대한 합리화가 아니라
더 소중한 것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