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봤자 늘 제자리
아침에 잠에서 깼다.
어제는 조금 야행성이었다.
평소 23시쯤 자서 03시 이전에 일어나는 편인데 어제는 살짝 올빼미 모드.
어차피 둘 다 피곤하기는 한데, 새벽 늦게 잠들어 아침에 일어나면 왠지 하루를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여튼 잠에서 깨어났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냐가 뭔가를 잘못했는지 아냐들에게 얼차려를 받고 있다.
한 명은 아예 등까지 돌린 것을 보니, 뭔가 단단히 잘못을 한 듯.
왠지 본드가 공범인 듯하다.
원만히 잘 해결되길 바라며 얼차려 아냐를 원상 복귀 시켰다.
사실은 밤에 침대 조명을 끄면서 아냐 한 명이 건드려져 흘러내렸는데, 내가 귀찮아서 대강 올려놓은 모양새가 저지경이 었던 것이다.
미안하다 아냐.
원래는 나름 해맑은 아이인데, 왠지 삶에 찌든 것처럼 나와 버렸네.
아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 스파이패밀리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다.
새벽에 에어컨을 끄고 잤더니 땀을 잔뜩 흘렸기에 선풍기 가동.
아침 샤워를 마친 후에는 에어컨을 틀어 주었다.
24시간 에어컨을 켤 수는 없고 중간중간 선풍기를 틀어둘 때가 있는데, 한번 기계 맛(??)을 보고 나니 선풍기는 왠지 아쉬운 감이 있다.
부모님 댁에서는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안 틀고 지냈다.
고로 지금의 삶은 굉장히 행복한 것이다.
빵끗.
전날 먹고 남은 소고기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떡볶이에 투하.
매콤하고 누리고 달콤한 그리고 질긴 떡볶이가 탄생하였다.
고기 떡볶이라니, 세상에 너무 호화롭잖아.
저만큼의 떡볶이가 또 남았길래 낮에는 피자치즈를 투척하여 먹었다.
어제, 왠지 오늘의 내가 나가고 싶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그 예감이 적중해 버렸다.
허나 주말의 거리는 솔직히 난이도가 세다.
평일과는 다른 인구 밀도.
같은 기온이어도 주말이 왠지 더 뜨겁게 느껴진다.
그래도 일단 나가서 설렁설렁 걷기 시작했다.
심지어 다녀와서 씻을 생각으로, 나가기 전 샤워는 과감히 생략한 채로 거지꼴 츄리닝에 크록스 하나 주섬주섬 끌고 외출하는 모습을 동네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도 했다.
(타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마스크를 꼈는데, 그닥 의미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주말에 빙수 메뉴를 주문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 같아 수박주스.
-인 줄 알았는데 꿀수박화채 스무디는 좀 다른 성격의 음료였던 모양이다.
어쩐지 늦게 나오더라.
알록달록한 컬러에 뭔가 쫀득이는 것이 엄청 씹히는 시원한 음료였다.
게다가 집에 와서 샤워도 개운하게 하고 나니
다시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을 만큼 오싹해져서 좋았다.
요즘의 나는
생각이 너무 지나칠 정도로 많아서
가끔 대뇌를 패대기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생각은 나를 살리는 훌륭한 도구이지만
또한 나를 끝내려는 도구이기도 해서 위협적이다.
사실, 이틀 전 상담 시간에
머릿속을 괴롭히던 생각들이 어느 정도 정리된 느낌을 받았다.
구원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 그래도 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생각의 곳간이 비어 버린 이 상황이 두려워서, 나는 또다시 오래 생각할 거리를 찾기 시작하였다.
마치 수학자들이 풀 수 없는 난제를 찾아내며 즐거워하듯.
나는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있어야 안정적인 기분이 든다.
생각의 폭주로 인하여 각성 상태에 빠져야만 머리가 맑아지는 아줌마는, 오늘도 생각의 바다에 헤엄치다가 고꾸라질 것만 같다.
하루만 생각이라는 걸 안 하고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
어떤 기분...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