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째_건강하게 시작하여 인간적으로 끝난 날

본능에 충실

by Peach못한

어젯밤에 야매 과카몰리를 만들어 두었다.

며칠 전 아보카도 5알을 샀는데, 적당히 후숙이 되었는지 테스트할 겸 만들어 본 것이다.


다른 채소가 없어 매우 허전

아보카도는 부드럽고 맛있다.

뭐랄까, 살짝 풋내가 나는 버터 느낌?

입 안에서 부드러이 사악 퍼지는 눅진한 그 맛이 참 좋다.

보통 아보카도를 먹을 때는 반을 갈라서 스푼으로 떠먹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왠지 색다르게 과카몰리를 만들어 먹고 싶었다.


적당히 손으로 으스러뜨린 아보카도에 할라피뇨를 썰어 넣고

라임즙을 두른 후 소금을 넣고 올리브유로 마무리 지은 이 녀석은, 꽤 맛있었다.

토마토도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나쵸와 함께 먹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아침을 먹으며 살짝 건강해지는 마음이 들어 뿌듯했으나,


직원분께 미안해지는 저가형 빙수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 버린 망고 빙수.


오늘은

19년간 쓰던 번호를 바꿔 버린 날이다.


벼르고 벼르다가 저지른 일이기는 하지만, 불안감이 증폭하는 바람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버렸다.

결국 집에 오는 길에 빙수를 한 컵 산 뒤

샤워를 마치고 폭풍 흡입 하였다.


아이고 만두야


점심은 평소 절대 먹지 않는 만두 - 심지어 물만두.

콩류를 극혐 하기에, 두부가 들어간 만두조차도 역해서 먹지 않는데

그냥 왠지 오늘은 도전하고 싶었다.


손이 살짝 떨려서 미끄러져 버린 만두는 짭조름한 간장에 퐁당 빠졌다.

다른 만두에 간장을 덜어내는 것은 왠지 다른 만두들이 싫어할 짓인 것 같고,

"다음 차례는 너야." 라며 낙인을 찍어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간장에 반신욕을 하고 나온 만두를 단독으로 먹으니 굉장히 짰다.

그리고 덕분에 입맛이 살짝 떨어졌고, 나머지 만두들은 아직까지 생존해 있다.


만두를 먹고 난 뒤 멍하니 있다 보니 낫토가 먹고 싶어졌다.

참 뜬금없다.


나는 홍어를 전혀 못 먹지만 왠지 홍어라면은 먹어 보고 싶은 사람이다.

콩을 못 먹는 사람이, 발효된 콩인 낫토를 과연 얼마나 잘 먹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생뚱맞게도 - 내 머릿속에는 사각통에 담긴 낫토를 비비고 있는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마 오늘의 나는, 일부러 삐뚤어지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던 모양이다.


뜨거워서 처음 펴 본 양산


다시 외출.


오늘은 땀이 송글 맺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눈치 없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날이었다.

아무리 나의 외관이 평평하다 해도

얼굴에서 미끄럼틀 타는 건 좀 너무한 것 아니니 땀들아.

햇빛을 피하기 위하여 양산 기능이 있는 우산을 펼쳤는데 무거워서 오히려 지쳐버렸다.


결국 이 녀석은 고이 접어서 가방에 넣어 버렸다.

너는 그냥 우산으로만 써 줄게, 오리야.


기프티콘 사용


수술 후 받은 기프티콘을 이용하여 전복죽을 샀다.

매장에서 소분까지 해 주셨으니 든든한 두 끼 식사거리이다.


근데 이제 버거를 곁들인


하지만 교환권으로 죽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오늘 죽을 먹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다.

저녁은 햄버거.

오늘은 다소 즉흥적인 외식을 많이 한 날이 되어 버렸다.


스트레스가 도화선이 되어 버린 것인지, 자극적인 음식을 상당히 먹게 되었다.

한동안 모든 욕구에 초월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인간이 되려나 보다.

안 먹고 안 자도 생활이 가능한 시기에는 참 편했는데.

인간으로서의 불편함을 다시 느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다.


하도 이를 악 물고 있었더니 턱관절 통증도 느껴지고,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다시 감정 관리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내가 다시 탈욕구를 꿈꾸는 것인지, 아니면 생각의 폭주로 각성에 빠지고 싶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지금은

방탕했던 하루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향초를 켜고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다.

어쨌거나 굿나잇이라 부를 수 있는 평온한 밤은 나에게도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 05화5일째_어른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