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했다 소소했어
아침에
생뚱맞게도
이렇게 생긴 작고 납작한 회색의 벌레 한 마리가
포복하는 것을 목격해 버렸다.
이 작은 생명체를 제거하는 데
크리넥스 두 장을 소비했다.
습도는 늘 60% 이하, 때로는 40%를 유지하는 나의 뽀송한 공간에 벌레라니.
어쩌면 새벽에 환기하느라 열어둔 창문을 통해 기어들어온 것일 수 있겠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배수구 청소를 한번 더 하고
다이소몰에서 바퀴벌레 약을 주문했다.
이 공간에서 나 이외의 다른 생명체는
무조건 박멸이다.
초복도 뒤늦게 알아차렸는데
중복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냉동 가라아게와 버팔로윙을 구웠다.
마살라 가루를 살짝 뿌렸더니
맛이 조금 더 다채로워졌다.
하지만 역시 냉동 치킨은 누린내가 진동한다.
내가 뭘 잘못 데우는 건지.
에어프라이어로 냄새 안 나게
잘 굽는 방법이 있는 걸까.
오후에 잠시 외출을 해서 볼일을 본 후
합정역에 내려 근처를 천천히 걸었다.
날이 아주 더운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금세 흥건해진 땀이 옷을 적셔 버렸다.
시원한 아메리카노.
갈증이 치솟았던 만큼
시원한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시간은 지나치게 짧았고,
2,000원은 5분 만에 위장을 적셔 버렸고,
생명수 같았던 음료잔은 세상 귀찮은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렸다.
슬슬 인간다워지려 하나 보다.
이걸 느낀 이유는
아까 진한 맛의 멸균 우유를 마시고 웃음이 나왔기 때문이다.
음식의 맛이 느껴진다.
그리고 '입이 심심함'을 슬슬 못 견디게 되었다.
잠을 안 자도 되던 삶에서
낮잠이 필요한 삶으로,
굳이 뭘 안 먹어도 되던 하루에서
간식을 찾아 냉장고를 여닫는 하루로
조금씩 변해 가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아주 보통스러운 하루였다.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는데
어제 뭘 먹었는지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다.
강박적으로 적지도 않고 외우지도 않는구나 -
낯설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 역시도 보통의 하루일 것이다.
'일주일 전에 내가 뭘 했더라' 라며
고개를 갸웃할 수 있는 날이 조만간 올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