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째_요동치던 하루

감정의 나선환

by Peach못한

아침에 공기가 꿉꿉하길래 습도를 확인해 보았다.


이 정도면 수족관인데.

집에서 일찍 나가야 하는데 에어컨을 틀기도 뭐 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제습기를 가동했다.


며칠 째 두통이 사라지질 않았는데, 아침에는 컨디션마저 좋지 않았다 - 습도 때문인가, 하지만 나는 물고기가 아닌데.

아무튼 버스를 타고 가자니 심하게 멀미를 할 것만 같아서 큰맘 먹고 택시를 호출하였다.


거진 15분 만에 잡힌 택시에서는 퀴퀴한 악취가 풍겼다. 위태로웠던 속이 완전히 뒤집어져 버렸다.

심지어 병원 근처에서 기사님이 "내가 병원 안까지 운전해서 들어가야 하느냐"라고 여쭤 보셔서 매우 당황했다.

보통 목적지가 병원으로 찍힌 경우는 으레 기사님들께서 정문 앞에서 내려 주시기에, 오늘도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었다.


두통에 컨디션 난조, 택시에서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열이 올랐다가, 진료 중에는 갑자기 오한이 찾아왔다.

담당 의사 선생님의 드레싱 과정 중에 가운을 허겁지겁 걸쳐 입어 버렸다 - 죄송한데 너무 추워서 안 되겠다고 말씀드리면서.


오늘은 2025년 8월 중 최악으로 기록될 만한 날이었고, 내가 이 자리에서 호르륵 타 버린 후 우주의 작은 먼지로 기록되고 싶다고 느낀 날이었다.


집으로 갈 땐 버스를 타기.


비가 오지만, 고요한 집은 왠지 나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만 같았다.

생각의 정리를 대강 마무리 지은 후에 기분 전환을 위하여 카페를 찾았다.


도로 한가운데 빗물들이 바닥에 옹기종기 과녁을 만들고 있었다.

보슬비보다는 조금 굵은 빗방울들.

걷다 말고 잠시 멈춰 선 후 바닥을 응시했다.


만약 빗방울들이 생명체라면,

그들의 삶은 굉장히 허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을 곳 없는 상태로 끝없이 아래로 추락하다가, 지면과 충돌하는 시점에서 인생이 고통스럽게 끝나는 것 아닌가.


왠지 그 심정은 자이로드롭보다 더 공포스러울 것만 같다.

내가 빗방울로 태어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 디저트 하나.

여긴 매장 한가득 달콤한 디저트 향이 풍기는 곳이다.

도저히 커피만 마시게 허락하지 않는 폭력적 달달함이 있 곳이랄까.

무자비한 곳이다.

여기 매일 온다면, 나는 더더욱 포동포동해질 것 같다.


나는 이 공간 창가 자리에 앉아 바깥을 응시하기도 하고, 다이어리에 사각사각 점과 선으로 '그림'이라 불릴 만한 무언가를 조합해 내기도 했다.


그동안 생각의 폭주를 다른 심각한 생각으로 돌려막곤 했었다.

허나 이틀 연속으로, 그림 그리는 중에 일시적으로 생각이 소멸되는 경험을 했다.


낯설다, 무언가에 집중한 나.


두 시간이 술술 흘러갔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모든 자리가 만석이어서, 직원 분께 여쭤본 뒤 4인석을 앉았는데 넓어서 좋긴 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왠지 짬뽕이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짬뽕 한 그릇과 미니 탕수육을 포장해 왔다.

짬뽕을 들고 나왔는데 비가 개어 버린 아이러니한 상황 연출.


샤워를 하고 스킨을 바르며 화장대를 보니,

선크림이 좀... 많긴 한가?

두 개는 몸에 바르는 것, 세 개는 얼굴에 바르는 것.

사실 서랍에 선크림 다른 한 종류가 또 있다.

로션보다 선크림을 더 많이 바르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오늘은 날이 꿉꿉하고 기분도 꼬깃하고

사인 함수 그래프마냥 감정이 요동치던 하루였지만 , 내일은 저 모든 선크림을 다 써도 타버릴 만큼 맑고 뜨거운 감정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문득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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