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째_그럼에도 나를 위해 살아가기

by Peach못한

종로에 갔다.


장군님 안녕하세요

이순신 장군님도 한 번 뵙고, 개인적인 중요한 볼일도 마쳤다.


원래 점심을 먹을 생각이 없었으나, 때마침 찾아온 두통 때문에라도 무언가 시원한 것이 필요했다.

광화문에 있는 냉모밀 맛집이 떠올랐다.

다음번에 방문한다면 그때는 돈가스를 먹어볼 예정이었는데 - 머릿속으로 두 메뉴의 장단점을 따져 보고 있던 중, 가게 앞에 도착하였다.


ㄷㄷㄷ

그리고 대기 54팀의 압박.


이 어마어마한 웨이팅은 식욕을 소멸시켜 버렸다.

몇 분 정도나 기다려야 하는 거지...

잠시 고민하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샤브샤브

그 결과 내가 찾은 메뉴는 뜨끈한 샤브.

원래 시원한 것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하하.


나는 이곳에 몇 번 와 본 적이 있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다른 집보다 고기가 훨씬 성실하고 공부 잘하게 생긴 모범생 이미지여서 좋다.


핏기 빠진 연핑크빛 돌돌 말린 냉동 고기를 주로 보다가 이곳에 오면, 왠지 갑자기 대접받는 듯한 황송한 기분이 든달까.

물론 내돈내산이지만 말이다.


여튼 오늘의 점심은

물에 빠진 고기를 절대 안 먹는 이의 소울 푸드인 샤브샤브이다.


나는 물에 빠진 고기를 싫어한다.

수육, 갈비탕, 곰탕에 들어간 고기, 냉면이나 라면에 들어간 고기 등등을 모두 건져 내고 먹는다.

하지만 샤브샤브는 왠지 참 맛있다.

어쩌면 국물에 폭 익은 채 졸아드는 채소 때문일 수도, 매콤 달달한 칠리소스 때문일 수도, 아니면 가장 마지막에 반겨주는 칼국수 때문일 수도 있겠다.


샤브샤브는 천천히 내 페이스 대로 먹을 수 있어 좋다.

그리고 정형화되어 있어 더 좋다.

첫 단계에서 숙주를 먼저 넣든 고기를 먼저 넣든 상관없이 마지막은 칼국수로 정리.

중간에 아무리 변수가 있더라도 항상 큰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는 식사.

약간의 자유도를 준 스토리 게임 같은 느낌이랄까.

여튼 재미있는 음식인 것 같다.


오늘도 역시 칼국수로 기분 좋은 마무리를 짓고 든든한 배를 통통 두들기며 가게를 나섰다.


아 화창해

후식으로는 커피.

그림 그릴 다이어리와 필통도 챙겼기에, 망설임 없이 찜해둔 곳으로 향했다.


펠트 커피

은근 추천을 많이 받았던 이곳은, 라떼가 특히 맛있다고 한다.


왠지 행성 같은 라떼

잠시 기다리니 커피는 바로 나왔다.

진하고 쌉쌀한 커피와 부드럽고 고소한 우유의 조화가 미쳤다.

한 모금 마신 후 필터를 거치지 않은 '우와' 소리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스스로를 당황케 했다.


오... 맛있다, 맛있다.

매장에 흐르는 음악의 템포에 맞춰 머릿속으로 격렬한 댄스가 펼쳐지기 시작했고, 그 사실을 티 내지 않으려 최대한 태연히 커피를 마셨다.


자리가 불편한 데다가 만석이어서 살짝 아쉬웠다.

그림은커녕, 오래 앉을 분위기도 아니었다.

심지어 척추가 으드득 돌아갈 것 같은 느낌.


음.

다음에 마신다면 아무래도 테이크아웃을 해야 할 것만 같다.


피크민

잠시 들러 본 교보문고에서는 이렇게 피크민을 판매하고 있었다.

조그마한 바위 피크민 인형 키링이 있었으면 샀을 텐데 아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내 가방에는 이미 빨간색 피크민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정류장, 차가운 버스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집에 가서 푹 쉬고 싶은 마음이 들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왠지 눌러보고 싶은 천장 하차 버튼도 유심히 살펴보았다.

저거 누르려다가 데구르르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


구슬 아이스크림

한 17~18년 전 놀이공원에서 처음 구슬 아이스크림을 접했었다.

빙과류처럼 시원한 것도 아닌데, 은근 생각이 난다.

내 기준으로 보자면 구슬 아이스크림은 굉장히 고급에 가까운 제품.

그래서 오래간만에 먹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수저로 떠먹는 와중에 옛날 아이스크림 '대롱대롱'이란 게 떠올랐다 - 그것도 수저로 떠먹는 건데.

오래간만에 먹고 싶다, 오렌지 맛.


집에서 운동을 간단히 하고 쉬려고 했으나, 저녁 즘에 다시 잠깐 외출 겸 걷다 와서 현재는 기진맥진한 상황이다.


다소 즉흥적이었던 오늘 하루.

사실 멘탈이 나가 있었기에, 오늘 하루는 내가 원하는 대로 즉흥적인 결정을 해 보고 싶었다.


그 결과 많이 걸었고 많이 먹었다.

여기에 숙면까지 취한다면 바랄 게 없겠다.


새벽 2시에 시작된 하루의 시작.

이러다 아침닭보다 먼저 잠에서 깨는 게 습관처럼 굳어져 버릴 것만 같다.

내일은 몇 시에 하루를 열게 될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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