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조금 느지막이 - 새벽 4시에 깨어났다.
피곤해서인지, 귀찮아서인지 조금 오래 눈을 감고 있었다.
꿈에 누군가가 나왔다.
누군가가 누구냐면, 현재는 인연을 끊은 사람.
내 지인들은 대체로 나의 정보를 많이 알고 싶어 했다.
'걱정되니까', '관심 있으니까'.
그 말을 믿고 싶었다.
내가 알려준 정보들은 대개 왜곡되어 돌아다녔다.
출처가 명확히 눈에 보이는데, 그들은 딱 잡아떼고 오히려 나를 비난하였다.
네 행실이 원래 그 모양인 거라고, 네가 얼마나 못 미더운 사람이면 다들 그 말을 믿겠냐고.
결혼 후, 나는 기록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어떤 일이 계기가 되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결혼 생활이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기에, 사실 몇 년치 데이터는 머릿속에서 통째로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가장 암흑기였던 시절, 나는 카톡을 캡처하고 통화 내용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두곤 했다.
어느 날은 내가 앉았던 자리, 집었던 물건, 나누었던 대화, 먹었던 음식까지 모두 다 증거 삼아 남겨 두었다.
이렇게 기록을 거듭해도 항상 그 사람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너는 대체 어디까지가 거짓이고 어디부터가 진실이야?"
"나는 너를 믿을 수가 없어."
"보기만 해도 지겨워, 그냥 네가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어."
이유를 모르는 채 사랑받고 싶은 이에게 의심받는 나날들은 참 가혹했고, 나는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어서 미움을 받는다고 그렇게 굳게 믿었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조금 더 자세한 기억이었다 -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최근까지도 기록에 집착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일기를 안 쓴 지 한 달이 넘어 버렸다.
분명 어딘가에 기록은 하고 있다, 캘린더라던가 아니면 여기 브런치라던가.
그런데 매일 정해져 있던 '일기 쓰기'라는 행위 자체를 손에서 놓았다는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나의 기억이 날아가는 것이 가장 두렵다.
이제는 예전처럼 '증거'로서 효력을 바라며 쓰는 것은 아니다.
사실 마음을 좀 유하게 먹는다면, 기록 몇 년 치가 좀 날아간들 뭐 어떠랴.
하지만 그렇게는 도저히 못 하겠다.
내가 스스로 기억하지 않으면, 내가 오늘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알려줄 이가 전혀 없다.
내가 아침에 우유를 마셨는지 떡볶이를 먹었는지, 종로를 걸었던 게 일주일 전인지 어제인지.
스스로 하루를 새겨 두어야, 내가 오늘을 의미 있게 살았다는 것을 셀프 인정받을 수 있고,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인연을 우수수 끊었던 특정 시점 이후로, 내 머릿속 저장 공간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사실 이래야 맞는 거였다.
머릿속 저장 공간에는 아직도 못 지운 타인들의 데이터가 많이 있다.
생각의 정리를 거듭하며 분석된 데이터를 따로 옮겨 적은 후 나머지는 폐기할 생각을 하고 있다.
손절한 이들의 모든 데이터를 삭제할 수는 없다, 나의 존재까지 모두 날아갈 것 같기에.
연을 무 자르듯 모조리 끊어낸 1인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검증해야 한다 -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는가, 이것은 미래의 내가 다시 봐도 부끄럽지 않을 결정이었는가.
기쁨과 행복의 감정은 아직 나에게 사치이다.
그래서 일기들은 담백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라데이션처럼 행복이 묻어나는 일상의 기록들이 점차 생겨 나겠지.
그 과정을 미래의 내가 보는 것도 하나의 선물처럼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기록하고 싶다.
증거가 아닌, 추억으로.
오늘도 살짝 딥한 내용만 곱씹는 날이었지만, 미래의 내가 본다면 '그랬구나'하며 짠하게 한 번 미소짓고 넘어갈 수 있게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