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째_늘 밝으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

어쩌다 보니 이틀치 일기

by Peach못한

왠지 살짝 버거웠던 주말이었다.


잦은 두통, 스트레스로 인한 과식.

그로 인하여 찾아온 듯한 위경련이 번거로웠다.

힘들었던 건 아니다.

그저 귀찮을 뿐.


저녁 7시쯤 갑작스레 찾아온 잠은, 저녁 10시에 온전히 소멸되었다.

덕분에 늘 밤은 굉장히 길고 길 것만 같다.

부디 오늘 밤의 취미는 '잠'이었으면 좋겠다, 다시 자고싶게.


암튼, 짧게 써 보는 어제의 일기.


가끔 옆에 두고 괜히 한 번쯤 켜 보게 되는 조명.

침대에 붙어 있는 조명이 있기에 굳이 침대 옆에서 켤 필요는 없지만, 왠지 분위기 상 가끔.


조명이 나름 밝긴 한데, 이걸 켜놓고 무언가를 하기에는 다소 어다.

역시나 일기를 쓸 때 켜두는 용도로는 부적절하다.


밝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두운 것도 아니야 - 왠지 친숙한 표현이다.


학창 시절이 생각났다.

친구들은 내게 '심 없음' 딱지를 붙여 놓곤 했다.

알 수 없고, 굳이 알고 싶은 것도 아닌.

늘 혼자 있고 말주변도 없고, 심지어 음침한 듯한.

그냥 모호한 느낌의 '지인 12' 정도?


'오늘 과제는 무엇인가'의 대화에서 나는 늘 0순위였다.

하지만 '나는 과연 어떤 동물을 닮았을까' 라든가, '너와 나는 혈액형이 잘 맞는가' 등의 대화에서 내가 호출되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말할 필요가 있는, 하지만 그 외 굳이 말을 걸고 싶지는 않은.

나도 내 주제를 잘 알아서, 그냥 얌전히 지냈다.

직장 생활 중에는 상사들에게 '너는 네 이야기를 진짜 안 하는구나', '제발 속 마음을 말 좀 해라'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도 있다.


시리얼을 먹다가 호기심에 리를 넣어 보았다.

우유를 만나 신 맛이 줄어든 젤리는 의외로 차갑고 쫀득하여 먹기 좋았다.

우유의 유한 분위기 때문일까.


그리고 지인이 준 배달 상품권 2만 원을 어디에 쓸까 고민하다가 시켜본 물회와 초밥 세트.

감사의 의미로 사진을 보내 드린 후, 맛있게 먹었다.

이곳에도 젤리를 넣어 보았다.

차가움이 정도가 지나쳤는지 딱딱했고, 강렬한 신 맛에 젤리는 어깨를 펴지 못하는 듯했다.

사실 물회를 먹는 동안 젤리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그냥 입 안에 독자적으로 들어왔을 때는, 분명 그 자체로도 신 맛에 몸서리치게 하던 존재였는데.

낯설었다.

젤리는 누구와 함께였을 때가 가장 행복했을까?


인터넷에서 저렴한 맛에 샀던 팔찌는 처참히 해부되어 무언가 다른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오늘의 일기.


누워서 뜨거운 팩으로 명치 부근을 찜질하였다.

왠지 위경련이 살짝 가라앉은 것 같아, 출을 했다.

주말은 사람이 많아 잘 나가지 않는 편이긴 한데, 왠지 오늘은 조금 걸어야 할 것 같았다.

생각 정리가 필요할 때는 나가서 걷는다.


날이 뜨거워서 괜히 나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오늘은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찾아간 곳은 연남동과 연희동 사이.

한 연필 가게에서, 연필 두 자루를 산했다.

사실 여기는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왔 곳이다.

그때 기감에 반해 버렸던 연필이 있었다.

연필 한 자루에 5천 원 돈.

비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지 못할 금액은 아니었.


마음에 들면 오늘은 꼭 데려오리라 - 역시나 우수한 필기감의 이 녀석들은, 첫 만남 후 8개월 만에 내게로 오게 되었다.

길쭉하고 예쁜 바디를 지닌 연필은 나무의 향과 함께 풍기는 은은한 흑연 냄새가 력적이다.

손 끝에 뭉개지듯 번져 버리는 기억이라 해도, 쓰는 순간은 세상 그 무엇보다 사각사각하니까.

그래서 나는 연필이 좋다.


잠에 빠지기 직전 찍어 보았던 조명.

낮에는 또 다른 느낌다.

미안하지만, 조명이 켜졌을 때보다 꺼진 게 훨씬 예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던 지난 날들.

그리고 그런 게 아무 의미 없고 느끼는 요즘.

아무렴 뭐 어때

- 이런 마인드로 살고 있는 요즘이, 사랑받고 싶었던 예전보다 더 나다운 듯하다.


억지로 사람들 앞에서 밝게 보이려 노력할 필요가 없어, 에너지 낭비 하지 말아.


왠지 그렇게 말해 주는 것만 같은 명을 보며, 순간 살짝 마음을 놓았던 것도 같다.


그리고 잠에 빠진 나는 럭키밀 픽업도 놓쳐 버린 채 허탈한 마음을 가지고 깨어나 버렸고(?), 생각해 보니 이틀째 일기 연재글을 안 올릴 뻔했다는 현실에 좌절감으로 발등을 찍을 뻔하였다.


사실 강박적으로 성실할 필요도 없기는 하지.

일단 '나다움'이 무엇일지, 조금 더 알아가야 하겠다.


일단 오늘의 일기는 여기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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