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방문객들 사이에서 생존
1호선 타고 병점역으로
5월의 아침.
네이버 지도에 저장해 둔 당일치기 갈 만한 곳을 검색하다가 화성 융건릉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화성 융건릉은 국가유산청에서 만든, 국가 유산 방문자 여권 스탬프 투어 리스트 '왕가의 길'에 속해 있는 곳이다. 지난 번 수원 화성 나들이를 갔을 적에 원래는 화성 융건릉도 들러볼까 했는데, 예상치 못한(?) 행궁 나들이로 인해 포기했던 곳이기도 하다.
병점역에서 화성 융건릉까지는 도보로 1시간 20분 가량 걸리는데, 아무래도 초행길이다 보니 안전하게 버스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버스로는 20분 걸리는 길이다.
역사의 모습은 가지각색이라 생각보다 재미있다. 이것이 내가 역사를 찍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
병점역 후문으로 나가서 융건릉까지 가는 버스를 찾아본다. 35-2, 50-1, 220 등 다양한 노선의 버스들이 있는데 생각보다 배차 간격이 길었다.
배차 30분 + 타고 가는 시간 20분이면 50분인데, 걸어가면 1시간 20분.
정류장에 앉아 잠시 고민을 하다가 역시 처음에 마음 먹은 대로 버스를 타고 가기로 마음을 굳힌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웬 절이 하나 눈에 띄는데, 방문객이 정말 많아 보였다. 같은 버스를 타고 있던 초면인 아주머니께 슬쩍 여쭈어 보았더니 용주사 라고, 굉장히 유명한 절이란다.
아, 여기도 가 봐야겠다. 용주사도 머릿속 공간에 살짝 포개어 두고 일단은 융건릉으로 고고.
목적지인 융건릉 사거리 정류장에서 내렸다.
이 곳으로부터 5분만 걸어가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성 융릉과 건릉이 나온다.
국가 유산 방문자 여권 투어, 화성 융릉과 건릉
입간판(이라고 해야 하나) 덕에 찾기가 쉬웠다. 다만 이 곳은 차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 길을 건널 때 아주 조심해야 할 것 같다. 특히 아이들이 목적지를 발견하고 뛰게 하다가는 정말 위험할 것 같은 곳이었다.
무인 발권기가 있어서 성인 1명 입장권을 구매하였다. 화성 거주하시는 분들은 50% 할인된 가격에 들어갈 수 있으니 평소 나들이 코스로도 좋을 듯 하다.
국가 유산 방문자 여권 스탬프는 입장하고 들어가면 바로 보인다. 화성 융릉과 건릉 페이지에 도장을 찍는 것으로 일단 이 날의 목적은 달성하였다. 이제는 마음 편히 구경만 하면 된다.
방문 당시에는 5월 초였기 때문에 일부 코스는 산불 조심 기간으로 인해 폐쇄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아마 전 코스 산책이 가능할 것이다. 국가 유산 방문자 여권 방문 코스 중 하나였던 김포 장릉을 올해 2월 중순에 다녀왔었는데, 화성 융건릉은 김포장릉보다 나무가 훨씬 많고 산책로도 더 우거진 느낌이었다. 어쩌면 2월과 5월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융릉과 건릉
조선 21대 왕 영조와 사도세자, 혜경궁 홍씨가 묻혀 있는 융릉은 오른편, 조선 22대 왕 정조와 효의왕후가 묻힌 건릉은 왼편에 있다.
융릉을 먼저 본 다음 다시 처음 지점으로 돌아와 건릉을 보고, 그 다음에 나가면 되겠다 머릿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마친 뒤 융릉으로 향한다. 장유유서, 장유유서.
군데 군데 벤치가 있어서 잠시 앉아 쉬기에도 좋아 보인다.
뭐랄까. 잘 닦인 산책로 보다는 수목원의 느낌이 조금 더 강해 보인다. 그 정도로 푸르르고 울창했다.
녹색의 향을 느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저 멀리 융릉이 보인다.
김포 장릉과 마찬가지로, 홍살문이 놓여져 있고 그 뒤로는 축문을 들고 가는 향로, 왕이 걷는 길인 어로가 펼쳐져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이 놓여져 있고, 그 뒤로 봉긋한 봉분이 보인다.
정자각의 모습을 담아 보고, 융릉의 모습도 한 컷.
그 틈새에 자라고 있는 작은 새싹도 하나 찍어 보았다.
개인적으로 고목에 피는 새싹이나, 다 죽은 줄 알았던 화분에 작게 맺혀 있는 꽃봉오리 등을 좋아한다. 이미 다 끝났을 줄 알고 체념하며 지내는 얼룩진 일상에 새로운 '삶의 의지'가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큰 희망인지.
가끔 이렇게 너무 이입을 해서 좀 피곤하지만, 그래도 뭐 가끔 삶이라는 건 꽤 아름답지 않은가 생각한다. 햇살만 따뜻해도, 하늘만 푸르러도. 적어도 그 햇살 아래 걷는 시간은 따사롭고 행복하지 않은가.
암튼.
또 다시 산책로를 걷고 걸어서 건릉으로 향했다.
홍살문도 처음 본 것인 마냥 다시 구경하고, 정자각과 건릉도 찬찬히 살피고. 나가는 길에는 역사문화관에 들러 내부를 가볍게 훑어 보고 난 뒤, 다음 목적지인 용주사로 향했다.
걸어서 용주사까지
융건릉에서 용주사까지 큰 길 기준으로 32분 소요되는데, 그 길목에 있는 정조효공원에 잠시 들르느라 실제로는 40분 좀 넘게 걸었던 것 같다.
용주사는 본래 갈양사 라는 이름의 절로서 신라 문성왕 16년에 염거화상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잦은 병난의 과정에서 소실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선 제 22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고 이 곳에 다시 절을 세웠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이름을 용주사로 짓고 불심과 효심을 함께 하는 수행처로 삼았으며, 이 용주사는 조선 후기 불교계를 대표하는 중심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은 방문 당시에는 모르고 있었지만, 푸릇한 나무들 사이에 자리잡은 용주사는 묘하게 두근두근 하는 느낌을 선사했다. 궁궐이나 절 등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원래부터 좋아하는 편이라, 그냥 보기만 해도 좋더라.
용주사에 들어갔을 때 한 켠에 유독 방문객이 많아 보여서 신기한 마음에 가까이 가 보았다.
알고 보니 일명 '절밥' 이라고 하는 공양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방문한 때는 오후 4시 가까이 된 시간이었기에 이미 공양 시간은 끝이 났고 남은 밥 등을 나누어 주는 분위기였다.
그러고보니 사찰을 방문하면서 공양을 체험해 볼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다음 번 사찰을 방문할 때는 공양 시간도 체크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알고보니 내가 용주사에 방문한 날은 부처님 오신날로서, 방문객이 유독 많았던 이유는 부처님 오신날 행사 때문인 것 같았다.
식사도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피로감이 몰려 왔다.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쉬어 볼까 하는 맘에 카페에 갔는데 자리가 만석인 데다가, 생각보다 비쌌던 아메리카노 가격에 커피는 포기하고 병점역으로 향했다.
방문객이 많아서 임시 정류장이 생겨 버린 용주사 앞. 이 곳에서 기다리다가 버스에 올라탔다.
병점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한 컷.
어린이날이었네
버스에서 내린 후 병점역으로 올라가 편의점에 들렀다. 끼니로 흰우유를 하나 사서 마실 예정이었다.
그런데 편의점에 갔는데 우유와 삼각김밥 코너가 완전히 매진이다.
난감해서 과자 코너를 뒤적이다가, 결국 유제품인 초코 드링크를 하나 집어 들고 계산을 하며 여쭤 보았더니 오늘이 어린이날이라 우유가 다 떨어져 재고가 없는 거라며 웃으셨다.
아마 목이 마르다고 보채는 아이들에게 마시게 할 것들 중 건강한 것을 고르느라 어머니들께서 다들 우유를 고르신 듯 했고, 부모님 마음은 다 똑같기에 결국 우유만 매진된 것 같았다.
아 어린이날이었구나.
건조하게 독백을 내뱉은 뒤 지하철을 탔다. 생각해 보니 이 날은 희한하게도 달력을 전혀 열어 보지 않았던 날이었다.
혼자 사는 나에게는 매일이 늘 똑같다. 그리고 오늘이 주말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에게는 늘 똑같았던 이 날, 나는 주말이 아니라는 것만 생각한 채 나들이를 했던 것이다. 어쩐지 그제서야 떠올려 보니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안에는 모든 기념일을 다 챙겨야 하고 모든 생일을 다 챙겨 줘야 하는 강박 성향을 지닌 내가 있었다. 사실 그게 타인에게 특출나게 고마움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나의 곁에는 '얼마나 기념일을 잘 챙기느냐'로 애정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하면 그걸 서운해 했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즐거워서 챙긴 것 같지도 않다. 왜냐면 지금은 내 생일조차도 그냥 넘겨 버리는, 아주 극과 극인 내가 내 안에 살아 있기에.
가족 방문객들 사이에서 생존
5월은 가족의 달.
5월 16일인 오늘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을 지나쳐 버린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나에게는 그냥 매일이 똑같은 날이다. 그리고 그게 나쁘지가 않다. 강박적으로 남을 챙기던 나도 나고, 지금처럼 무심한 나도 나다.
중요한 건 내가 이렇게 숨을 쉬고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해 보낸다는 것.
그것 외에 무엇이 중요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