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는 뚜벅뚜벅 - 이틀간의 궁중문화축전 스탬프투어

2일 6궁 투어

by Peach못한
종로 덕후의 주절거림


나는 종로 좋아한다.

예쁜 문구가 가득한 대형 책방도 있고, 적당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라 살아 있는 느낌도 들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궁궐도 있 때문이다.

과거에 청계천 없던 시절부터 - 즉 초등학생 시절부터 나는 종로를 준히 좋아 왔다.


혼자 살아갈 동네를 정할 때, 종로 또한 리스트에 있었다. 결국 지금의 나는 종로가 아닌 다른 곳을 선택했지만, 나에게 종로는 여전히 오래된 친구 같은 아련한 느낌이 든달까.



궁중문화축전


취미 정보 공유를 위해 들어가 있는 다이어리 오픈 채팅방에서, 국가 유산 방문자 여권을 소지한 자에게 궁중문화축전에서 궁 패스 노리개를 증정한다더라 - 라는 따끈한 정보를 접했었다. 패스 노리개란, 서울에 있는 궁궐을 프리패스 할 수 있는 노리개 모양의 굿즈이다. 매진된 뒤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국가 유산 방문자 여권을 가진 자는 받을 수 있다니!!!

어머 이런 건 가 줘야지.


모닝시청스테이숑
주말 아침 궁궐 오픈런 하는 자


주말 아침이었던 4월 26일, 일찌감치 지하철을 탔다.

생각보다 시간 여유가 있는 상태이기에 시청역에서 내려 자유를 만끽하며 걸어가야겠다 생각을 했다. 음악을 들으며 여유 있는 아침 산책, 참 좋지 아니한가.


...는 처참하게 깨짐.

잠깐 잊어버렸던 것이 있는데 시청, 광화문, 서울역은 여러 가지 집회의 성지이기도 하다는 것다. (종로에서 살기를 포기한 이유 중 하나가 여기서 나오는군)

음, 굿모닝이었다.



이제는 뵙지 않음 허전한 마음이 드는 세종대왕님.



주말에도 종종 광화문을 오곤 하는데, 왠지 이 날은 평소보다 방문객이 훨씬 많은 느낌이었다.


궁중문화축전

그 이유는 아마 이것 때문이리라 - 궁중문화축전.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등 서울 소재 5개의 궁궐과 종묘에서 매년 봄/가을 마다 열리는 문화유산 축제인 궁중문화축전은 이번이 11번째로 열리는 회차라고 한다.


나는 국가 유산 방문자 여권 인증 후 궁 패스 노리개를 받기 위해 갔지만, 이 궁중문화축전은 여러 테마로 다양한 체험 활동도 열리는 만큼 단순한 궁궐 구경에서 벗어나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잠시만 훑어 보았을 뿐이지만 그 안에는 궁중 무용 체험, 궁중 일상 재현, 플리마켓, 전통 한복을 입고 기념사진 찍기 등 한 번쯤 경험해 보고 싶은 체험들이 꽤나 있었다.

만약 내 사진을 찍어 줄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어쩌면 뭔가 하나쯤은 체험을 해 봤을 지도 모르겠다.


스탬프투어 덕후 여깄어요


궁중문화축전 부스 및 플리마켓을 휘휘 돌아보다가, 스탬프 투어 용지가 있길래 냉큼 집었다. 6개의 장소를 모두 방문해야만 10개의 스탬프를 모두 찍을 수가 있는데 스탬프 투어 완주 경품은 최종적으로 경복궁에 와서 받을 수가 있다고 한다.



경복궁 스탬프 투어 시작


이 날 나의 만성 불면증으로 인하여 3시간 남짓 잠을 자고 갔던 터라, 컨디션이 좋지가 않았다. 하지만 노리개를 이용한 궁 프리패스 테스트(?)를 해 보고 싶었던 터라 경복궁 한 바퀴를 둘러 보기로 했다.


나무와 건축물의 조합 덕에 궁궐을 좋아한다

근정전에 있다는 스탬프를 못 찾아 일단 포기하고 향원정에 먼저.

작년 10월, 경복궁 야간개장 때 핸드폰으로 야간 풍경을 사진에 담았었는데... 그 이후로 반 년만에 경복궁에 오는 듯 하다.



눈에 잘 띄는 듯, 아닌 듯한 스탬프존에서 향원정 인증 도장 하나 콩 찍으며 투어 시작.


행사 중인 분들은 아마 배우 분들이실 테니, 일반인 분들만 모자이크 처리 해 봅니다


궁중 의상을 직접 궁궐에서 보니, 잠깐이나마 옛날로 여행을 한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첫날이라 그런가 스탬프존이 깔끔한 편이다

근정전과 비현각 스탬프존 클리어.

이렇게 첫 날은 도장을 3개만 찍은 채 이른 귀가를 결정하였다.



4월 30일, 궁중문화축전 2차 투어



4월 30일.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고 쉬다가 점심 무렵에 궁중문화축전이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경희궁에서 시작


집에서 네이버 지도를 보며 스탬프 투어 코스를 궁리해 보니, 경희궁 - 덕수궁 - 종묘 - 창덕궁 - 창경궁 - 경복궁의 순서가 낫겠다 싶었다. 4월 26일에 사실 이 모든 코스를 돌고 싶었던 건데, 이 날은 최대한 컨디션을 조절해 가며 뚜벅이로 완주해 보자 싶었다.


각 장소에서 구경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시간은 3~4시간으로 넉넉히 잡는 것이 좋다


최근에서야 알게 된 네이버지도 경유 시스템. 앞으로의 뚜벅이 여행 계획 짜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여튼.



경희궁 숭정문의 스탬프는 빠르게 찾아냈다.

별궁이어서 규모가 좀 작아 그런가, 아니면 아침이라 그런가. 경희궁은 매우 한산했다. 스탬프 투어 종이를 들고 방문한 것이 왠지 좀 이질적으로 느껴졌달까.


덕수궁 장독대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보면 나오는 빨간 쪽문 - 그 앞에는 웬 희한한 조각 같은 것이 6개 서 있다.

이것은 이환권 조각가님의 작품 '장독대'인데 장독대가 가족처럼 느껴지는 마음에 이렇게 조형을 하셨었다고. 꽤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덕수궁 길을 걷다 보니 새삼 또 발견하게 되어 반가운 마음에 사진으로도 남겨 본다.


덕수궁 덕홍전 스탬프존


까만 가방에 궁 패스 노리개도 달고 나왔는데, 내가 방문한 4월 30일은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해당하는, '문화가 있는 날'로서 궁궐에 무료입장이 가능한 날이었다.

암행어사 모드로 놀아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궁궐 입장료가 부담 되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에 방문 해보세요. 무료 입장이 가능하답니다.

만약 다음 번에도 궁 패스 굿즈가 존재하게 된다면, 그 때는 그 디자인이 암행어사 마패여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켓 안에 마패를 품고 슬쩍 보여주면 꽤나 짜릿할 것 같은데 말이지.



덕수궁 덕홍전에 양탕국 라운지가 꾸며져 있길래 들어가 보았다. 고등학교 3학년 역사 시간에 들었던 일화가 생각이 났다. 고종이 아관파천 이후로 당구랑 커피에 푹 빠지게 되어서, 후에 당구대를 궁궐 안에 들여다 놓고 당구를 치며 커피를 마시는 혁신적인 일(?)을 벌였다고.

이미 20년도 더 전에 들은 역사 수업인 데다가 요즘 '정관헌은 고종의 카페가 아니었다' 라는 이야기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아니한가. 오히려 그 이전부터 궁궐에서 커피를 마시는 분들도 계셨다고. 하지만 커피를 보면 자연스레 고종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의 향수를 자극한 덕홍전의 양탕국 라운지를 짧게 구경만 하고 나왔지만, 학창 시절이 다시 오버랩 되며 새삼 풋풋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 나도 모르게.


종묘를 탐방하다가 낚여 버린 스크래치 체험 공간.

홀리듯 자연스레 들어가서 그림을 그리다가 정신을 퍼뜩 차리고 가방 안에 고이 넣은 채 다시 나왔다 - 갈 길이 멀기에.


종묘 정전


단체 외국인 관람객 분들 찍사를 해 드리고, 종묘 정전에서 스탬프를 찍었다.

이 날 돌이켜 보면 외국인 분들은 계속해서 나에게 한국말로 이야기 하고, 나는 영어로 답을 했던 다소 생소한 기억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처음에 한국말을 했더니 '어 예예...' 하며 당황하며 못 알아 들으시기에... 아무래도 네이티브 한국인으로서의 단어는 아이에게 말하듯 짧고 쉽게 설명해도 어려운 모양이었다. 미국에서 업무용 전문 영단어(?)에 곤혹스러웠던 나의 출장 기억이 떠올랐었다.

뭐, 여튼 영어로 대화를 이어 나가며 사진도 여러 장 찍어 드렸다. 역시 영어는 만국 공통어.


창덕궁 인정전


국가 유산 방문자 여권 스탬프를 찍으러 잠깐 들렀었던 창덕궁 인정전에도 다시 왔다. 시간을 보니 오후 2시 50분이었다. 경복궁에 5시까지는 가야 기념품을 받을텐데. 살짝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느긋하게 걸었다.


왠지 아련해지는 돌담길


창경궁으로 향하는 돌담길. 이 날 돌담길을 원없이 걸었다.


창경궁 영춘헌, 집복헌 스탬프존
달항아리가 인상적이었던 함인정


아기자기한 함인정에는 3D 프린터로 만들어진 듯한 다채로운 색상의 달항아리들이 설치미술로서 장치되어 있었다.


명정전을 끝으로 모든 스탬프를 다 찍었다


명정전까지 모두 10곳을 돌며 모든 지역의 스탬프를 다 찍었다.

이제는 경복궁까지 걸어갈 차례였고, 당연히 이 모든 길은 뚜벅이로 이루어졌다.



초반에 스탬프 투어를 완주했더라면 텀블러 같은 좀 더 실용성 있는 굿즈를 받았겠지만, 그래도 받은 게 어디인가. 게다가 저 스탬프 종이는 종이를 뚫은 후 기념으로 다시 받을 수 있어 더 좋았다.

힘들었던 만큼 성취감이 크게 다가왔고, 햇살도 따뜻해서 더더욱 마음이 가벼웠던 날로 기억한다.


가배 콜드브루

궁 패스 노리개 안에는 아메리카노 무료 1잔 이용권도 함께 들어 있었는데, 그것을 이용하여 아이스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궁궐에 앉아 앞에서 벌어지는 체험 상황극을 구경하며 커피를 마시는... 그래서 갑작스레 다시 고종이 떠오르고 학창시절이 생각이 나고, 기타등등 여러 생각의 잡동사니 안에서 칼로리를 소모하며 허우적거리다 온 - 가뿐하게 시작하여 묘하게 끝을 내고 왔던 궁중문화축전의 스탬프 투어였다.

이 날 걸은 걸음 수는 생각보다 다소 적은 25,000보 가량.




아무래도 여행 하면 '해외 여행'이 먼저 생각이 나는데, 국가 유산 방문자 여권을 이용하여 가보지 않은 곳을 다니고, 궁중문화축전도 하고, 네이버지도 상에 가고 싶은 당일치기 장소들을 저장하다 보니 우리 나라에도 갈 곳이 참 많다는 것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게다가 며칠 전에 한국 관광 100선 스탬프투어 여권도 한 권 얻게 되었다. 생각하지 않았던 여행 장소들이 많구나 싶어 마음이 풍성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전에는 종로만 참 많이도 다녔는데, 앞으로 나의 뚜벅이 여행이 좀 더 다채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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