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의 크리스마스에는, 밤까지 종로를 돌아다녔었다.
혼밥 가능한 가성비 파스타집을 찾아 라구 파스타를 사 먹고, 명동 성당을 가고 광화문 마켓까지 돌아다녔던 2년 전.
작년의 크리스마스에는, 집에서 조개관자 버터 구이를 해 먹었고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 먹었다.
하루 종일 캐롤을 틀어 놓고 집에서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올해는 2025년.
크리스마스.
- 그전에 이브.
떨이 시간에 맞추어 시장에서 사왔던 딸기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인터넷으로 미리 사둔 케이크 시트랑 생크림도 꺼냈다.
올해는 '갓난 아이가 봐도 제대로 딸기 생크림케이크'인 것을 먹고 싶었다.
그리고, 매장에서 파는 케이크의 몸값은 너무 비쌌다.
어차피 큰 사이즈 사서 다 먹는 것도 고역이므로, 그럼 만들어 먹어 보자 싶었다.
12월 24일.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한 후, 미리 끓여서 식혀둔 시럽을 준비하고 딸기를 슬라이스 하기 시작했다.
시트에 시럽 바른 빵을 깔고, 크림 바르고, 딸기를 켜켜이 얹고 - 를 3층까지 반복한 후 4층 옥상에다가는 따로 빼놓은 예쁜 생김새의 딸기 9마리를 세워 주었다.
띠지가 없어서 딸기들이 탈출하고 난리인, 정말 치명적으로 못생긴 딸기 생크림 케이크가 완성되었다.
어글리케이크라 하면 되지 뭐
-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넷 찾아보니 진짜로 어글리케이크라는 것이 있더라.
그렇다면 나름 힙한 걸로 치자.
케이크를 받치고 있는 접시는, 파주에 놀러갔을 때 콜라박물관에서 사 온 것이다.
비록 미니 사이즈이지만, 딸기 한팩을 모두 썰어 넣었고, 생크림도 한팩이 들어갔고.
만들어 식혀 둔 시럽에는 바닐라를 넣었더니 조금 더 달달 향긋했던 나의 생크림 딸기 케이크.
비록 칼질 한 번에 와그르르 무너져 내렸고, 그로 인해 케이크는 딸기를 토해내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왠지 그 덕에 좀 더 편히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케이크는 정말이지 너무 맛있었다.
나중에 한번 더 해 먹고 싶을 만큼.
그리고 크리스마스.
치즈에 와인!
이겠지만, 나는 술을 안 마신다.
하지만 분위기는 내 보고 싶었기에 인터넷을 찾아 보았다.
특정 음료가 화이트와인 맛과 살짝 비슷하다 해서 편의점에 가서 사 오기.
이브에는 월남쌈을 만들어 먹었는데 왠지 그마저도 귀찮아서 그냥 쌈 싸 먹기.
저녁에는 된장 칼국수... 였던가.
까망베르치즈와 브리치즈는 음료와 함께 먹기.
그 외의 시간은 다이어리 정리도 하고, 생각 정리도 하고, 넷플릭스도 좀 보고.
어쩌다 보니 캐롤은 1db도 울리지 않았던, 너무 평범한 날이었지만 그냥 이 순간이 참 좋았더랬다.
물론 과거의 나에게도 '무슨 날'이라는 걸 챙겨야만 했던 시기가 있었다.
근데 지나고 나니 별 의미가 없더라.
앞으로는, 별 거 없는 소소한 하루들을 살고 싶다.
그 몽글한 낱개의 작은 날들이 포도알갱이처럼 동글동글 모여 삶을 이루고, 한 알 한 알 떼어 곱씹었을 때 숙성된 단맛을 줄 수 있는.
'그땐 그랬지만 지금 생각하니 괜찮네' 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이거슨 포도 한 알갱이도 안 먹어 놓은 사람이 기승전포도로 마무리 짓는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