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는 뚜벅뚜벅 - 당일치기 수원 화성 나들이 (상)

대중교통으로 여행하는 서울 토박이의 뚜벅이 여행

by Peach못한
2층 버스를 타다

지하철을 타고 사당역에서 내렸다.

오늘의 목적지는 '수원 화성' 이었다.

작년에 국가 유산 방문자 여권을 인천공항에서 수령했었는데, 여권의 모든 장소를 방문한 다음 스탬프를 찍어 완주패를 받는 것이 나의 목표 중 하나이다.

수원 화성을 가려면 사당역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 나오기에, 평소 가장 기피하던 역인 사당역으로 향한 것이다.


7770번 버스에 몸을 싣는데, 2층 버스였다.

어머 한국에서 처음 타 봐, 2층 버스.

2층 버스는 아마도 10년 전 쯤, 뉴욕 가는 메가버스 탄 게 마지막인 것 같은데?

1층은 노약자석으로 분류되어 있기에 2층으로 올라갔는데 맨 앞 뻥 뚫린 자리가 남아 있었다.


나는 뚜벅이 여행자이며 웬만하면 걷는 것이 가장 좋다.

나에게 가장 적당한 속도의, 적당한 높이에서 몸이 움직이는 것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그 덕에 지나치게 빨리 달리는 자동차의 앞자리는 앉을 수 없고, 나보다 빠르게 이동하며 덜컹이는 자전거 역시 탈 수가 없다.

자이로드롭이나 T익스프레스 같은 것은 다음 생에도 가능할 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나라도 대중교통은 타야 하는데, 그럴 때는 보통 뒷자리를 선호한다.

사람 머리가 앞에 있어야 안정감이 든다.


그런데 그런 내가 앞자리에 앉았다. 왠지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막 나가고 싶은 날.

이 날은 그런 날이었다.

물론 앉자마자 격하게 후회를 했고 출발과 동시에 이마에 땀이 송글 맺혔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고, 나는 용기 고갈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안전벨트를 채운 후 부여잡는 일 뿐.

고행의 30분이었다.



장한 일을 해낸 나는 장안문으로 향한다

버스에서 내리면 보이는 수원 화성 장안문, 그리고 성곽길을 걷다 발견한 포

수원 화성은 국가 유산 방문자 여권 코스 중 여섯 번째로 향한 곳이다.

그간의 짬바(?)로 보자면 대부분 스탬프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입구 바로 뒷편에 위치하거나, 방문자 센터에 위치해 있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당당하게 장안문 안으로 들어갔는데.


... 어라?

왜 차가 다녀?????


오늘의 나는 용감하다.

2층 버스 앞자리도 탔지 않은가.

I 성향이지만 능숙하게 안내소를 찾아가 여쭤 보았다.

"혹시 국가 유산 방문자 여권 스탬프는 어디서 찍...나요...?"

직원 분께서 상냥하게 웃으시며 "수원 화성 박물관에 가시면 있어요." 라고 답변해 주셨다.

그리고는 이 곳에 처음 왔는지, 어느 코스가 좋은지, 버스로는 몇 정거장이 걸리는 지를 10여분에 걸쳐 설명을 해 주셨다.


여기가 아니었군.


날이 아주 좋았기에, 성곽길을 따라 반쯤 걷다가 행궁 맞은 편에 있다는 수원 화성 박물관 쪽으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계단은 꽤나 가파른 편이었고, 고소 공포증과 함께 계단 공포증 마저 있는 나는 거의 기다시피 하여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몇 십 미터만 저 앞으로 가면 낮은 계단이 있었네?

다음부터는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좀 더 훑어 보고 정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신발을 벗고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보통 문화재는 '들어가지 마시오' 팻말이 더 익숙한 법인데, 이 곳은 신발을 벗고 올라가세요 라고 되어 있다.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맞은 편에서 어린 남자아이를 데리고 가족이 지나가고 있었다.

"엄마, 나 저기 올라갈래."

"안 돼, 저기 글자 있잖아. '들어가지 마세요' 라고 되어 있어."

옆에 계시던 어르신도 거드신다.

"그래, 저기 '들어가면 안 돼요.' 라고 적혀 있어, 들어가면 관리하시는 분께 혼나."

어린 아이는 칭얼거리며 엄마의 손을 잡고 다시 갈 길을 갔다.


나도 조금 더 걷다가, 박물관이 있는 쪽으로 루트를 변경하였다.



수원 어르신과 함께 박물관으로 향하다


행리단길 안내 지도를 보고 있는데 어르신께서 말을 걸어 오셨다.

"학생이여? 어딜 가려고 그래?"

박물관에 가려 한다고 하자, 15분 정도만 걸으면 된다며 함께 가자며 따라오라 하신다.


앗, 아아.

내가 보고 있던 행리단길 지도와, 친절하셨던 어르신과 함께 걷던 길에 슬쩍 찍은 사진

마을에서 오랫 동안 사셨다고 소개를 하신 어르신께서는 수원 화성의 역사와 행궁의 뜻을 설명해 주시며 기뻐 하셨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곳에 오질 않고 관심도 없는데, 박물관에 간다니 역사학을 공부하냐면서 기특하다고 하셨다.

사실 국가 유산 방문자 여권 스탬프를 찍을 목적으로 가는 것이었기에 마음 한 구석이 콕콕 쑤셨다.

박물관을 가면 꼭 관람도 하리라 조용히 다짐하였다.


날이 따뜻하고 길은 한적했다.

수원천 물줄기를 보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청계천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

근처까지 함께 동행하셨던 어르신께서 '여행 잘 하라'고 다독여 주셨고, 감사 인사를 드린 뒤 박물관으로 향했다.


국가 유산 방문자 여권 스탬프 콩
나의 여섯 번째 코스, 수원 화성

수원 화성 박물관 매표소 옆에 있던 빨간색 스탬프를 찾아 수원 화성 페이지에 도장을 콩 찍어 준다.

스탬프 모양은 장소마다 다른 디자인이어서,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르신과 길을 걸으며 찔렸던 양심에 밴드라도 하나 붙이기 위하여, 2천원을 내고 박물관 입장권을 받았다.

박물관의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였기 때문에 사진을 남기지는 못하였으나,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박물관을 구경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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