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서 살겠다

물론 살아있고 말이다

by Peach못한
더위를 느끼다


5월.

집 안의 후끈한 공기는 기어코 나에게 인터넷으로 선풍기를 검색하게 만든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다. 방 안의 온도가 벌써 29도이다.


'와. 이러다가 8월에는 어떻게 버티지?'


집밥을 놓칠 수는 없다.

그리고 에어컨 바람은 왠지 나의 몸을 뾰족이 긁는 기분이다.

심사숙고 후에 아주 약한 바람까지도 지원하는 스탠드형 선풍기를 하나 샀다.


해가 떨어지는 저녁 시간.

선풍기의 고개를 힘껏 꺾어 위를 향하게 한 뒤 회전 모드를 작동시키고 창문을 연다.

선풍기의 노동 과정을 멍하니 바라본다.

실내 온도가 24.9도까지 떨어졌다.

한결 쾌적하다.


'아 살겠다.'


왠지 밤에는 뽀송하니 잠이 잘 올 것 같았다.

물론 그래봤자 불면증 겪는 이가 잠이 잘 오는 선은 정해져 있다.

늘 새벽 4시에는 눈을 뜨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살겠다'라는 내 안의 소리가, 더 이상 불쾌하지 않다.


pexels-d-ng-nhan-324384-4389917.jpg 출처 Dương Nhân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4389917/


과거와 현재


잠을 자기 전, 찬물로 샤워를 한다.

제법 참을만하고 심지어 시원하다.

민소매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침대에 걸터앉기 직전, 발가락으로 선풍기의 가장 약한 바람 버튼을 꼭 눌러본다.

왠지 선풍기는 발가락으로 버튼을 눌러야 제맛인 것 같지만 보통은 실패하고 몸을 숙여 다시 버튼을 누르게 된다.


침대에 걸터앉아 머릿속 라이브러리를 뒤져 본다.

작년에는 어땠더라.

그리고 재작년에는 어땠더라.


2023년 7월.


바람막이를 껴입고 덜덜 떨던 7월과 8월이 떠올랐다.

다른 이들은 나에게 더워 보인다고 했다.

눈치가 보여 바람막이를 벗고 긴팔을 입고 다녔다.

봄가을에나 입을 만한 맨투맨에 긴 바지.

밝은 색도 아니었다. 어두침침한 색상의 긴 옷을 고수했던 나.



2025년 6월.


흐르는 땀을 닦을 파우더 티슈라는 것을 샀다.

샤워 티슈, 혹은 데오드란트 티슈라고도 하더라.

내가 이런 것에 돈을 쓸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길을 가면서 팔뚝에 코를 박고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다른 이에게 불쾌한 냄새로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좀 더 쾌적한 뚜벅이를 위하여 메쉬 소재의 저렴한 반팔 티셔츠를 두 벌 샀다.

세탁을 해도 바로 건조되어서 참 좋다.

나는 작년과 다른 7월과 8월을 준비하는 중이다.


살아있다


살아있다.

O₂를 들이마시고 CO₂를 내쉬는,

C₆H₁₂O₆를 연소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눈을 오래 뜨면 감고 싶고, 오래 감고 있으면 근질거리며 몸이 뒤틀리는 청개구리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전날 2만 보 이상을 걸으면 이제는 쉬고 싶음을 느낀다.

내 몸은 각성에서 슬쩍 한 발을 뺀 채 스스로를 지키려 하고 있다.

그리고 힘든 일이 떠올라도 잠을 자고 나면 살짝 회복이 되는 새로운 내가 있다.


좀 더 살아보길 잘한 것 같다.

더위를 느껴볼 날이 앞으로 많이 생겼다.

몸이 돌아가고 있는 이 기분이 참 소중하다.

그래서 감사하다.

돌아가는 선풍기에게도 감사하고, 이 전기를 제공해 주는 한전한테도 감사하고, 태양한테도 감사하고.

이 집을 소개해 준 중개업소에게도 감사하고.

그냥 새삼 모든 게 다 감사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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