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용당한 그 삶은 내 것입니다

감정 대필 작가의 발언

by Peach못한
감정을 드러내는 건 정말 추한 짓이야


"그게 울 일이야?"


몇십 년 전의 어린 나는, 울면서 하는 감정 표현에 늘 제약을 받았다.

기뻐서 활짝 웃으면 '추하다'는 지적에 머쓱히 입을 다물었다.

속상함에 그렁이는 눈물은 얼른 옷소매로 닦아 내었다.


한글을 뗀 4살 때부터 '이제는 말귀를 알아듣는 나이니까' 조금 더 능숙한 지적을 받았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일기장은 불시 검문을 받았다.

아마도 나의 미래가 걱정되어서라기보다는, 그저 술안주로 삼을 잠깐의 요깃거리가 필요했던 것 같다.


"일기에 이런 내용도 좀 써 봐라."

- 그건 내 생각이랑 틀린데, 흐음 -


어린 마음에 나름 기특한 생각을 해 보았다.

'이렇게 쓰면 조금 더 칭찬을 받겠지?'

일기장 귀퉁이에 활짝 웃는 그들의 얼굴을 그렸다.

"너무 가식적이야. 얘는 도통 애 같지가 않아, 음흉하게."

예상했던 반응과는 달라 머쓱해진 나는, 표정을 지우려 검은 크레파스로 얼굴을 박박 문질러댔다.

그 와중에, 사람 얼굴은 검은색이 아니라며 또 혼이 났다.

"쟤는 정말이지 생각이 없다니까."

그들의 발언은 어린 초등학생의 마음을 후벼 팠다.


네가 원했잖아


작게는 옷차림부터, 크게는 내 삶 전반에 걸쳐 항상 그들의 지적을 받아 왔다.

나의 감정은 내 것이 아니므로, 선택이 불가하다.

생각?

'이렇게 하라'는 요구를 지켜내다 보면 멀거니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나는 태어났다.

하지만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것 - 무엇 하나 허락되지 않았다.

하긴, 애초에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의지가 개입된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내 삶을 ‘공동 소유물’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정작 나는 약간의 자문 역할을 겸비한, 계약서에 함께 이름만 올린 존재에 가까웠다.


문제는, 나도 나이를 먹어 머리가 커 버렸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한 나의 발악은 졸지에 나를 위험 등급으로 분류짓게 했다.

짐승 새끼는 붙잡으면 힘으로 억누를 수 있다.

하지만 다 큰 짐승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입에 재갈을 물리고, 난동을 피우지 못하게 밧줄로 묶지 아니하던가.

그들의 시선은 내게 재갈이고, 그들의 혀는 탄탄한 밧줄이다.

나는 그들에게 있어 '정성껏 길러 줬더니 은혜도 모르는 짐승 같은 놈'이 되어 버렸다.


더욱 처절한 통제 시스템이 돌아간다.

그들은 무단으로 나의 핸드폰을 열어 메시지를 읽으며, 감정의 흐름을 필사적으로 찾는다.

말투마다 비아냥의 꼬투리가 따라붙는다.

"네 삶이 다 네 것인 줄 알아? 쟤는 뭐 지가 엄청 대단한 줄 알아, 그렇지?"

(맞아 맞아, 그러게나 말이야)


내 감정의 주인은 바로 나


요즘의 나는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생각 정리, 글쓰기 등을 병행하며 보내고 있다.

말라붙어 굳어 있는 감정을 불러내는 일은 고되다.

상담을 받는 과정도 사실 고통의 연속이다.

행여나 '짐승만도 못한' 내가 날카로운 이빨로 상담사님을 공격하고 싶은 충동이 들까 조심스럽고, 지금 나이에 낯선 감정을 배워야 하는 것에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표현이 서툰 자가 인간다운 모습으로 거듭나기까지는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현재의 나는 99%의 사실이 있어도 애써 부정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게 내 감정이다. 이게 내 삶이다.'라는 컨펌 도장을 찍을 1%의 인주가 부족한 나는, 그 감정의 서류 파일을 마냥 보류 상태로 쌓아만 둔다.


고로 나의 삶은 아직도 초안 단계에 머물러 있다.

최대한 적합한 단어들로, 나의 삶을 아주 깔끔히 다시 해석하고 재배치하리라.

불행히도 이 정도의 속도라면, 내 감정은 죽는 순간까지도 미완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최대의 유작이기도 할 것이다.

남들 눈에 이 과정이 아무리 하찮아 보인다 해도.

그 누구도 다시는 내 감정에 수정펜을 들이댈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삶의 창작자는 나다.

내 감정의 저작권은 나에게 있다.

이제는 타인이 내 삶을 도용하는 일 없이, 내가 그들의 감정을 대필하는 것 없이.

오로지 직접 느끼고 기록하고 표현한 것으로만 남은 시간을 채우고 싶다.


내 삶은 내 고유의 창작물이며, 이것을 난 끝까지 지켜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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