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을 딛고 살기

마음속 뚜벅이 여행

by Peach못한

를 파악하는 것은 힘들었다.


처음의 나는 멋도 모르는

얄팍한 해수면 바닷가였던 것 같다.

마음을 분석한답시고 호기롭게 한발 한발 내딛으며 찰싹찰싹 물장구를 쳐 댔다.

'딱 한 발만 더 가면 될 것 같은데.'

그 한 발이 문제였다.

감히 위기를 감지할 새도 없이 갑자기 발이 쑥 빠져 형을 잃었다.


해구.


빠져나오기 위해

물을 잔뜩 삼키고 토하며 발버둥을 치며 눈물 콧물을 쏟아냈다.

나의 발버둥은 비효과처럼,

쓰나미로 변질되어 무기력한 나를 쉴 새 없이 후려쳤다.


공포, 그리고 그 와중에 살고 싶은 욕구.

울룩불룩 두서없이 솟아오르는 것들은 성난 화산 같았다.

한두 개도 아니고, 마치 오름 같았다.


오름.

제주도.

현무암.


쓰나미 폭풍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는,

여러 기억이 뒤엉켜 굳어진 현무암 같은 땅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검댕이 잔뜩 묻은 손바닥과 발바닥이 불타는 듯 뜨겁게 달아 올라, 통을 스스로 끊어 내고 싶었다.

현무암의 구멍은 감정의 필터 같았다.

환공포증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나를 직면하는 게 힘들어서일까, 구멍을 메우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속이 어떻게 되건 말건 일단 겉면만 매끈하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러면 나의 감정이 다시 곪아 버리지 않을까.


발바닥의 열기가 가실 때 즈음.

내 마음속의 가장 높은 곳을 찾아, 정상까지 올라가 보았다.

바닥에 있을 때보다 내 상태가 한눈에 보여 좋았다.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새로운 궁리를 시작했다.

'마음의 지도를 만들어 볼까?'


요즘의 나는 매일 높은 곳에 올라,

감정의 오름들을 관측하고 있다.

안전한 지역은 녹색.

그나마 안전한 지역은 노란색.

안 되겠다 싶은 지역은 빨간색.

억지로 화산을 들쑤셔 폭발을 이끌어낼 생각은 없다, 다만 관찰할 뿐.

하지만 꾸준히 살피다 보니,

빨간색 오름들 중 내림으로 갈 기미가 보이는 것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아주 긴 시간이 지나면, 이곳은 더 이상 위험한 지역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


다소 느리더라도 나를 믿기로 했다.

언젠가는 이 알록달록한 곳이, 안전한 초록빛으로 물들 거라 믿는다.

시간은 많다.

하루하루 찬찬히 나아가기로 다짐했다.

자동차로 급히 한 바퀴 돌 필요도 없다.

어차피 나는 뚜벅이니까, 나의 속도에 맞출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친애하는 오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