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디까지 솔직할 수 있을까

'톡 까놓고 말해서'

by Peach못한

친하니까.

좋아하니까.

나 때문에 마음 아픈 걸 원치 않으니까.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으니까.


그래서 거짓을 말고, 축소하고, 감정을 숨긴다.


반면 -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온라인에서는 솔직하기 쉽다.

그게 내가 20년 넘게 '표출하는 수단'인 블로그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블로그는 이번이 세 번째인데, 처음은 해킹을 당해서 폐쇄했고 두 번째는 닫아 두었으며, 세 번째 역시 닫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뻘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는 브런치가 있으니까 -라는 회피성 이유를 탑재한 채 나는 네 번째 블로그를 꿈꾼다.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온라인에서는 쉬운데, 오프라인에서는 얼마만큼 솔직할 수 있을까?


친해서, 좋아해서, 마음 아플 걸 원치 않아서.

그러면 초면에는 털어놓기 괜찮을까?

그건 또 너무 사람을 감정쓰레기통 삼는 것 같지 않는가 - 하는 마음속 규범에 따라 망설여지게 된다.


요즘의 나는 '심리상담실'이라는 이름의 리커버리 서비스 센터에 꾸준히 다니면서 솔직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까지 무자비하게 솔직해도 되는가 걱정이 앞설 정도로 말이다.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괴로운 기억들, 그로 인한 상대에 대한 혐오, 수치심, 현타 등.

내 안에 이렇게 겹겹이 레이어드 된 감정이 있었는가 싶을 만큼 - 인간의 감정이란 정말 양파보다 더 맵고 아리고 지치게 한다.

이러다가는 씨앗만 남게 생겼.

아니, 내 성격상 씨앗도 반을 갈라 해부하고 현미경에 넣어볼 것이 분명한 만큼 - 정말 상담실에서는 날것의 나를 고스란히 내비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솔직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본 결과는 이렇다 : 어쩌면 그곳에 있는 두 사람은 앞으로 친해질 일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리고 둘 다 (왠지) 분석을 주된 일과로 삼아서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상담실 안에서 부지런히 돌아가는 두 개의 CPU, 네 개의 눈은 실시간으로 출력되는 결괏값을 분석해 내고 서로에게 공개하지 않을 각자의 리포트를 작성한다.


그러니까 이 과정은, '나'라는 자료를 놓고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어 데이터를 뽑는 과정이다.

난 이 분에게 좋은 사례 남고 싶다.

그래서 솔직할 수 있 것이, 앞으로 더더욱 무자비하게 그러할 예정이다.


만약 친구 앞에서였다면 이런 경험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고맙다.

그 공간에는 두 사람이 서로 상처를 받지 않을 사이라는 것을 증명할 동의서가 존재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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