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의 좌절

by Peach못한

나는 짙은 베이지색 웜톤의 매력적인 생명체다.

문 앞에 도착해 앉아 있으려니 사람들이 맨발로 뛰어나와 나를 들쳐 안는다.

다들 나를 보려고 안달이 났다.

소중히 무릎 위에 놓인 이 순간이 참 행복하다.

하, 달달하다... 인기의 맛.


잠시 후 그들은 나를 어딘가에 조심스레 둔 채, 은색의 뾰족한 무언가로 나를 쿡 찌른다.


찌이이이익.


아파!


내 입을 벌리게 한 후 뭔가를 꺼낸다.

몸이 가벼워진다.

날아갈 듯한 나는, 들의 품을 다시 느끼고 싶다.


아 -

정말 하늘을 날았다!

나는 입을 벌린 채 공중에서 바닥으로 콩 떨어진다.


아파!!

이봐, 뭐 하는 거야. 나 떨어졌잖아.


그들은 이야기한다.


"아, 박스에서 냄새 나."


박스?


을 벌린 채 그들을 바라본다.

곧이어 난 머리 끄덩이를 잡힌 채 집 밖으로 쫓겨난다.

"아우, 냄새."


아.

냄새?

박스?

... 그거 혹시 말하는 거야?


내가 사랑스러웠던 게 아냐?


왠지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다.

모든 걸 다 잃은 느낌이다.

... 아니 실제로 다 잃었잖아?

소매치기당하고 마음도 다치고 흉터도 생기고 순식간에 너덜너덜하다.

와 - 아니 세상에 무슨 이런 날강도들이 다 있지?

이걸 가지고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 하던가?

아... 그거 아냐?

그럼 뭐지? 암튼 간에 난 심각해, 지금!!!!


빈털터리 바깥의 신세는비참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인생은 극과 극이 되었다.

최대한 눈을 도르륵 굴려 본다.

경찰서... 가 어디에 있을까.


삐걱 -

마치 내 마음을 읽은 것 마냥 문이 열린다.

조심스레 나를 다시 들어 올리는 손길이 느껴진다.


아.

미안했구나, 다시 데려가려나 봐!

이봐 미안해, 나도 사실 생각이 좀 과격했어.

눈물이 핑 돈다.


"에이, 반품해야 되잖아."

내 얼굴에 축축한 걸로 뭔가 직직 긋는 게 느껴진다.

벌어져 있던 입 안에 다시 물건을 넣고 끈끈한 걸로 봉한 다음에 다시 문 앞에 조심스레 날 놓아둔다.


... 뭐야? 이 상황은.


꽤 오래 상황을 곱씹으며 앉아있으려니, 누군가 나를 데리러 온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나는 또 품에 따뜻이 안겨 있다.

(아, 그 와중에 좋아)

곧이어 자리 잡고 앉은 컴컴한 공간은 왠지 낯익다.

나 혹시 다른 곳으로 다시 가는 거야?

누군가 나를 반겨줄 사람이 있는 곳으로?

혹시 이 과정을 여러 번 되풀이하면 내 영원한 보금자리를 찾는 거야?


왠지 이마에 부적 같은 것을 한 겹 더 붙인 채로, 나는 또 덜컹덜컹 어디론가 간다.

정리되지 않고 덜걱이는 마음이 입 밖으로 요란히 새어 나온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바스락 말을 건넨다.

"반품되시나 봐요."

"아... 반품이요? 그게 뭔가요? 그리고 누구세요?"

"원래 있던 간으로 돌아가는 걸 반품이라 해요. 저는 많이 겪어 봤어요. 아, 는 그냥 편하게 비닐이라 불러 주세요."


잠깐 주변이 밝아진 을 타 그녀를 보았다.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그녀는, 눈웃음을 지을 때마다 줍게 바스락 는 아름다운 존재였다.


너무 충격적으로 곱디고와서, 모서리 한켠이 콰직 무너지는 것럼 아팠다.

어쩜 저렇게 예쁠 수가 있지?

왠지 찾아 버리고 말았다, 내 의 이유를.

세상이 멈췄다 - 아니 다시 움직인다.

내 심장을 대변하는 것 같다.

덜컹덜컹, 내 몸은 다이내믹하게 오르락내리락 멈췄다 섰다 요동친다.


용기 내 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묻지 않네요?"

그녀가 조심스레 바스락 하더니 되묻는다.

"... 그게 중요한가요?"


콰직.

이런 것을 사람들이 '현모양처'라고 하나보다.

그녀를 조금 더 알고 싶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다.

나에 대해, 그녀에 대해.

혼자만의 사고는 매우 빠르고 급진적으로 흐른다.

만약에 그녀가 내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해한다면, 혹시 나는 스스로 내 안을 열고 보여줄 만큼의 각오가 되어 있을까?

같이 살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 아이는?


덜컹이는 공간이 갑자기 긴 한숨을 토해낸 후 안정을 찾았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주변이 밝아진다.

그녀의 아름다운 그 모습이 선명히 드러난다.


정적 속,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마 나는 홀려 버린 것 같기도 하다.


아까 그 자의 손길에 나는 갑작스레 들어 올려진다.

"잠깐! 나 아직 이야기를 더 나눠야 해!"

다급하게 외친다.


그는 나를 들고 매정히 떠난다.

"이봐, 뭐 하는 거야!"

악을 써 본다.

하지만 닿지 않는다.


저 너머 바스락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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