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짜인 날의 독백

수건의 하소연

by Peach못한


악에 받친 습기를 듬뿍 머금었다.

나는 흑화 되고 있었다.

몸이 직하니 존재감이 느껴진다.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땀과 눈물이 후드득 떨어진다.


"왜 다들 나에게만 뭐라 그래?"

이것은 언제든 통하는 만능 흑화 주술이다.


참 야속하다.

내가 문제야?


손가락들은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싸우다가도

어느 순간 힘을 합쳐

나를 후드득 짜낸다.


마치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착취하듯.

늘 그래 왔다.

가끔은 손가락들끼리 싸우기도 한다.

자기들이 조금 더 하겠다고,

자기가 힘이 더 세다고.

흔하고 흔한 서열 간 다툼이다.

지겨워.


끝내 나는 탈탈 털린다.

그리고 힘이 쭉 빠진다.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ED%9D%B0%EC%83%89-%EB%82%98%EB%AC%B4-%EC%9A%B8%ED%83%80%


어딘가에 매여버린 채 하늘을 바라본다.

공허하다, 삶이.


이 와중에

하늘이 참 푸르고 예쁘다.

모든 것을 잃고 난 다음의 현타는 큰데.


나 자신을 다시 추스를 수 있을까?

삶이라는 건 참 야박다.

모두 빨아들인다 :

- 나의 희망, 자존감, 기타 모든 것을.


감정이 바삭바삭 말라 간다.

남들은 태양을 보면 힘이 난다는데

- 길가의 민들레가 그랬었다 -

나는 태양이 참 싫다.


보들보들 촉촉하게 애써 덮어 오던

사포처럼 까끌한 본심이 드러나 하니까.

나의 눅눅한 새벽 감성마저

뽀송이 다 마르게 하니까.

숨기고 싶은 나의 소중한,

오래된 곰팡이 핀 마음을 다 날려 버리니까.


태양은 넘사벽이다.

그리고 왠지 저 친구에게는 늘 지게 된다.


산들바람이 나를 불쌍히 여겨

이곳에서 벗어나게 도와준다면 참 좋겠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검게 흑화 된 수건이 되고 말겠어.

모두가 두 손 두 발 다 들 만큼 새카만.


Tima Miroshnichenko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8774416/


... 그리고 실패.

포기란 멋지지 않으니 난 다음을 기약한다.

되고 말겠다, 흑화된 수건.

(근데 흑화된 다음엔 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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