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와 버저비터

말랑한 순간은 마지막에

by Peach못한

냉동실에 꽁꽁 얼려 었던

버터를 꺼냈다.


아주 단단하고 냉정

맞으면 꽤나 묵직하게 아플 것 같다.


뜨거운 프라이팬에 가열할까

전자레인지에 녹인 후 파르륵 끓고 사방에 튀게 할까


생각을 하다 보니

괜히 머리가 아파져서

단단한 버터를 그대로 놓아둔 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적당히 시원한 25도의 공간.


버터에 송글 땀이 맺힌다.


아마 버터에게는 인고의 시간이겠지.

내가 괜한 짓을 하는 걸까 죄책감이 들었다.


'사과해야 해.'

버터에게 다가갔다.


"저기, 괜찮니?"

버터의 볼을 톡 건드리는 순간

그의 마음이 부드럽게 사악 퍼진다.

고소한 향이 손 끝에 흠뻑 묻어난다.


분명 아주 힘들어 보였는데

내가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는데

오랫동안 물끄러미 바라본 그는

전혀 달라진 게 없어 보였는데.


아.

시간이 해결해 준 걸까.

그가 나에게 마음을 연 걸까.

경기 끝나기 몇 초 전의 버저비터처럼

버터는 쓰디쓴(bitter) 시간을 이겨 내고

부드러움을 내게 락했다.


마치 이 순간이 기적 같다.


네가 이렇게 부드러웠구나.

몰랐을 것이다, 전자레인지에 넣었다면.


나의 버터가

인고의 시간을 견뎌 주어 참 감사했다.

앞으로 우리의 시간이 조금 더 부드럽고 고소하길 조용히 욕심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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