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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Mar 22. 2023

<스즈메의 문단속>

예쁜 색도 전부 섞으면 탁한 검은색이 되듯이

    지난 8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이 국내에 개봉했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에 이은 ‘재난 3부작’의 마지막 영화인 <스즈메의 문단속>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배경으로 하여, 일본인들 마음에 앉아 있는 아픔을 위로하고자 했다. 아마 한국에서도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위로가 전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상실에 대한 아픔은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영화 자체만 두고 보았을 때, 잘 만든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다.


1. 동기 없는 모험

    스즈메가 ‘문단속’을 하는 이유는 소타를 향한 사랑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스즈메가 사랑에 빠지는 데에 정당성이 없으니, 스즈메가 목숨까지 버려가며 세계를 구하는 것 자체가 납득이 안 된다. ‘아름답다’는 이유가 고작이라니, 얼빠에 금사빠에, 스즈메라는 캐릭터가 한없이 가볍게 느껴진다. 자신이 대신 요석이 되어 영원히 잠들더라도 소타를 구원하고자 하는 동기가 그저 그의 얼굴이라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원래부터 이야기의 개연성보다는 주인공의 감정 자체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이번 작품은 조금 많이 작위적이다. 예를 들어, 스즈메가 작품 초반 소타에게 기시감을 느끼는 것을 후반 저세상에서 과거와 현재의 스즈메가 만나는 장면에서 설명하는데, 애초에 쌓아 놓은 감정이 전무하다 보니 깊이가 얕다. 결국 가장 감동적이도록 설계된 부분이 허탈할 뿐이다.


2. 지루한 반복

    위에서 언급했듯이, 사실 감독의 다른 작품도 크게 개연성이 좋거나 했던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볼거리와 오락 요소로 관객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로드 무비’ 형식의 <스즈메의 문단속>은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임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이것이 세 번이나 반복된다. 똑같은 주문과 똑같은 연출을 세 번씩이나! 영화는 2시간 내내 쪼개진 에피소드를 늘어놓는 데 그쳐 마치 4시간은 앉아 있었던 기분이 들었다. 한 번에 끝을 봐야 하는 영화라는 매체를 사용한 이유를 모르겠다. 차라리 넷플릭스 8부작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더라면 어땠을까? 매 화마다 한 개 지역의 ‘문단속’을 짧은 호흡으로 그렸더라면 더 흥미진진했을 것이다. 그리고 몇 개의 회차는 인물의 감정을 자세히 그리는 데 할애해, 이야기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겠다.


3. 작품 속에 녹아든 공리주의

    이 작품은 일본의 재난 트라우마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미미즈’가 사라질 때 무지갯빛 물방울로 변하는 모습이나, ‘다이진’을 향해 “신의 본질은 변덕”이라고 하는 등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감독은 이러한 아픔을 위로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또한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공리주의적 관점이 전제로 깔려있다. 소타의 할아버지가 스즈메에게 “소타 한 사람의 희생으로 수백만 인을 살렸음을 영광으로 알라”라고 한 대사가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배경이며, 이것이 집단적 트라우마를 위로하는 일본인 감독의 방법이기도 하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자가 복제식 재난 애니메이션이 과하게 느껴지는 시점이다.


4. 결론

    결론적으로,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오로지 작화와 음악뿐이다. 사실 배경 음악도 가끔 생뚱맞다 싶은 것들이 있었고, 도쿄 상공 미미즈 등장 때의 스코어와 RADWIMPS의 엔딩곡만이 기억에 남는다. 감독이 전작에서 가져온 장점 중 하나는 RADWIMPS와 계속 함께했다는 것이다. <너의 이름은.>에서도 느꼈지만, RADWIMPS의 음악 스타일이 감독 특유의 반짝거리는 작화와 퍽 어울린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하늘은 항상 황홀할 만큼이나 아름답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는 더 이상 없다. 누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제2의 미야자키 하야오라고 평했는가? 호소다 마모루도, 신카이 마코토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될 수는 없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작화나 배경 소리 등에 굉장히 집착하고, 또 완성도 있게 잘 만들어 내는 건 흠 잡을 데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가 빛을 사용하는 방법은 가끔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 하지만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와 개연성에 관해서는 재고해 볼 필요가 있겠다. <언어의 정원> 당시의 그저 소소하던 감성을 다시 볼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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