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딩크라서

by 김나현


이 곳에 글을 쓰기 전부터 오랫동안 고민했다. 왜 우리 부부는 아이 없이 살기로 했을까. 남편과도 자주 이야기를 나눠봤지만 속이 후련한 답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한 사람의 인생관 혹은 가치관의 결정적인 이유를 찾는다는 것은 때론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은 마치 퍼즐 같다. 조각들이 만나 하나의 그림을 완성했는데 이 그림에서 결정적인 조각이 뭐냐고 묻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이 '나'라는 작품을 만들었다.(아니 계속 만드는 중이다.) 그러니 "왜 그렇게 사니?"라고 물으면 딱 맞는 정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어쩌다 보니 저는 이런 사람이 되었네요"라고 옹색한 대답만 나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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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딩크족이 되었는가'는 내 삶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질문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 질문은 나를 딩크족으로 범주화해버리는 것 같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질문을 바꿨다. '지금 나는 행복한가.' 이 질문이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위해 저마다 삶을 꾸려가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그 방식은 존중받아 마땅한 거 아니겠는가.


하지만 얼마 전 남편은 아이 없이 산다는 게 국가적 관점에서 생각하면 조금은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딩크의 삶을 개인의 관점에서만 생각한 터라 이 말에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아봤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 앞에 나는종종 어쩔 수 없이 죄인이 돼버리고 만다. 직장에서도 이미 자주 듣는 말이다. "나라도 어렵다는데 하나 낳자." 애초에 그런 말에 별로 스트레스 안 받고 넘길 수 있는 성격이라 그저 허허 웃어넘기고 있다만 항상 이 문제 앞에서 괜스레 옹색해지는 건 남편이 말한 미안함과 유사한 감정인 건가.


어쩌면 이 미안한 감정은 주변 사람을 의식해서 생겨난 것이리라. 지금까지 최대한 이 문제를 음지에 숨겨 놓고 노출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살아왔다. 행여 누군가 물어보면 최대한 내 정보를 숨기면서 방어했다. 나는 이미 내 삶의 방식이 타인에게 굉장히 불편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할 수 있는 한 감추려 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드러내야 할 때 타인의 쏟아지는 궁금증과 불편함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넌 나와 다르네'라고 선을 그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딩크라고 해서 이상하고 괴짜 같은 사람들 아니랍니다, 사실은 집에서 뒹글뒹글하는게 제일 행복한 평범한 사람들입니다"라고 말이다. 서점에 에세이집이 넘쳐나지만 딩크를 주제로 다룬 책이 없다는 것도 한몫했다. 딩크는 그만큼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껄끄러운 주제인 것이다. 남편은 조금스러웠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에서 비주류적 삶의 방식이 자칫 다른 사람 눈엔 껄끄럽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결혼 전에 아이 없이 살기로 합의했고 시댁과 친정에서도 모두 이 사실을 인정받고 받아들이고 있다. 오히려 친정보다 시댁에서 더 쿨하게 받아들인 느낌이다. 남편이 대체 어떻게 시부모님께 말씀드렸는지 궁금해 물어봤지만 특별하게 투쟁을 한 것도 아니었다. "오빠, 대체 뭐라고 말했길래 두 분은 나한테 이 문제에 대해 조금도 잔소리를 안 하시는 거야?" "몰라, 그냥 그런갑다 하시던데." 오히려 시어머니보다 우리 엄마가 조금 마음 아파했다. 나뿐만 아니라 내 동생도 아이를 안 낳겠다고 하니 행여 자신이 아이들을 잘못 키운 건 아닌가 싶어 미안해 하셨다. 나는 엄마 손을 꼭 잡고 그건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낙천적인 성격인 엄마는 결국 "그래 너나 나나 재밌게 살면 그만이다" 이런 마인드라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만약 딩크로 살기로 했다면 부부간 합의뿐만 아니라 양가의 이해는 필수다. 결혼은 둘이 하는 것 아니라 엄연히 양쪽 집안의 만남이니까.


부모님들이 우리를 이해한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이해를 바라는 건 아니다. 이 글을 한 줄 요약하면 "저는 제 방식대로 나름 행복합니다" 정도다. 여기에 조금 보태자면 모든 에세이가 그렇듯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과 소통하며 다양한 삶에 공감하며 웃을 수 있길 바랄 뿐. 그렇게 모두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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