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밥을 정복했습니다, 다음 미션은?
"결혼하고 나면 살찐다."
나는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왜 살이 찐 핑계가 하필 결혼인가. 이제 제 짝을 만났으니 몸매 관리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변명은 더더욱 싫었다. 서로 애정을 갖고 몇십 년을 살려면 어느 정도 몸 관리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부부에게 진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나는 결혼 후 거의 8킬로 가까이 살이 쪄서 옷을 다시 사야 했다. 그래서 나름 이 문제의 원인을 분석해 봤는데 범인은 역시 남편인 거다!
남편은 우리 집 요리사다. 내가 어설프게 칼질하는 걸 보더니 위험해 보인다며 내 칼을 빼앗던 그때부터였을까? 아니면 더 거슬러 올라가 결혼 전 존득존득한 마카롱을 만들어 보겠다면서 매일매일 집에서 머랭을 치던 그때부터였을까? 그의 말에 따르면 그가 본격적으로 요리라는 걸 하게 된 것은 김풍 밥 때문이란다. 그 요리라면 나도 먹어봤다. 지난 여름휴가 때 남편이 해줬다. '냉장고를 부탁해'에 나왔던 김풍의 '섹시한 컵'이라는 요리인데, 스팸과 바질페스토가 합쳐진 이상한 조합인데 희한하게 맛있어서 계속 퍼먹었던 그 음식. 그는 김풍밥을 만들면서 이 음식이야말로 자신의 요리 정신에 부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요리 정신이라는 건 다름 아닌 "불량한 초딩맛"이다. 그러니 우리 부부가 살이 찔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나는 '냉장고를 부탁해'를 꽤 좋아했다. 요리 아마추어인 김풍이 성장해 가는 과정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초창기에 불량만쥬를 만든다며 반죽을 기름 속에 넣었는데 반죽이 이리저리 흩어지면서 다리가 여러 개 달린 문어 모양 괴식이 탄생했던 에피소드를 본 적 있는가. 그 문어빵 에피소드를 보면서 진짜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그렇게 어설펐던 사람이 경쟁자들의 요리 장점을 쏙쏙 흡수하며 빠르게 성장해 유명 셰프들 틈에서 살아남는다. 방송을 계속 본 시청자라면 역경을 이겨낸 김풍의 성장에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다. 내가 남편을 바라보는 시점은 김풍을 바라보는 그것과 비슷하다. 그만의 인간극장이 나에겐 감동적이다.
처음에 그가 나에게 줄기차게 해줬던 음식은 알리오올리오.
처음부터 잘하진 않았지만 한 요리만 미친 듯이 파면 결국 그 요리에 고수가 되는 법이다. 이젠 그의 알리오올리오는 (내 기준에서는) 식당에서 팔아도 손색없을 정도다. 비법을 물어보자 그의 대답.
"마늘을 볶을 때 올리브유를 듬뿍 넣어야 해. 면을 삶을 때 면수를 좀 덜어놓으면 좋아. 나중에 볶을 때 같이 부으면 간도 되고 촉촉해지거든. 그리고 볶을 때 바질과 로즈마리를 살짝 넣으면 향이 더 풍부해져. 그리고 정석은 아닌데......난 다 삶은 면을 찬물에 헹궈. 보통 이렇게 하지 말라고 하지만 이러면 면이 더 고들고들해지거든."
이렇게 술술 말하지만 남편이라고 해서 시행착오가 없었겠는가. 사실 파스타는 그가 처음 시도했지만, 처참한 실패로 끝난 첫 요리였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대학생 때쯤 밖에서 먹었던 크림 파스타가 맛있어서 집에서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당시만 해도 동네 마트에서 생크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동네 빵집에서 생크림을 구했는데 이미 거품이 다 올라온 상태라 이미 실패는 예정되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처음 삶은 파스타 면도 만만치 않았다. 면을 센 불에 올린 냄비 안에 넣으면 마치 소면 국수처럼 흐물흐물해지면서 물에 잠길 줄 알았는데 그 상태로 꼿꼿이 선 채 버티다 못해 심지어 면이 타면서 불마저 붙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참 요리하기 좋은 세상이다. 검색만 하면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손쉽게 찾을 수 있고(게다가 영상이다) 원하는 식재료를 가까운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시대이니 말이다.
파스타 성공 후 그는 냄비밥에 도전했다. 압력밥솥의 찰진 밥보다 고슬고슬한 밥이 훨씬 맛있다는 게 그의 취향이다. 어머니께 비법도 전수받았다. "살짝 탄 냄새가 나면 뜸 들이기를 멈춰야 한다." 하지만 남편에겐 어머님 레시피가 잘 맞지 않았다. 우리 집 냄비 문제인건지 이상하게 탄 냄새가 안 난다는 것이다. 계속 냄비 앞에서 킁킁 거리던 남편은 결국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냈다. 냄새가 아닌 정확한 시간으로 뜸 시간을 알아낸 것. 보글보글 끓던 밥이 거품이 빠지는 거 같은 소리를 내는 시점이 있다. 장작에서 불 꺼지는 거 같은 자글자글 쉬이익~(의성어의 한계입니다)하는 소리인데 그 시점에서 뜸 들이기를 시작, 딱 10분(아주 약한 불에 7분, 불 끄고 3분) 뜸을 들이면 윤기가 좔좔 흐르는 고슬고슬한 냄비밥에 성공할 수 있다.
사실 남편이 요리하는 데는 까다로운 입맛 덕에 못 먹는 식재료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새 이전에는 손도 안 댔던 재료에 과감히 도전하고 있다. 얼마 전 추석에 장모님이 고이 싸준 능이버섯과 가지를 어떻게 쓸까 고민 고민하더니 엄청나게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어 냈다. 특히 가지는 전에 손도 안 댔던 재료다.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던 식재료를 손질하는 것. 그것은 새로운 세상과 만나는 일이다. 그렇다. 이번 일이 아니었으면 가지에 그렇게 뾰족한 가시가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멋모르고 가지를 물에 벅벅 씻다가 가시에 찔려야만 가지 좀 만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집 요리 꿈나무는 지금도 옆에 앉아 턱을 괴고서는 유튜브로 중식 볶음밥 요리 영상을 보면서 하악거리고 있다. "웍은 언제나 옳아." 슬쩍 모니터를 엿보니 주방장의 현란한 손목 스냅에 용광로 같은 불길에 달궈진 웍 안의 식재료가 마치 불과 함께 춤을 추듯 볶아지고 있다. 지난번 내가 선물한 중식도를 받고 정말 좋아했는데 하얀 벽지를 발라 놓은 우리 집 주방에서는 저렇게 신나게 음식을 볶아볼 수 없으니 어쩐지 안쓰럽다.(사실 이건 기름 때문에 어떤 일반집 가정 주방에서도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만약 마당이 생긴다면 숯불에 마음껏 고기를 굽고 난 후 기름이 튀든 말든 신경 안 쓰고 마음껏 웍을 흔들며 볶음밥을 만들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남편의 살림 내공이 상당한 듯 느껴지는데 우리 모두 초보 살림러들이다. 물론 남편이 나보다 레벨이 더 높은 것 같지만 우리 둘다 냉장고에 잊힌 채 썩어버린 음식을 버리는 게 여전히 무섭다. 매주 금요일마다 주말에 뭐해 먹을지를 고민하며 밥을 뚝딱 차려주던 엄마를 그리워하며 먹고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먹고사니즘은 그런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