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멍이의 먹고사니즘

앞발 하나로 인간을 길들인 너란 멍멍이

by 김나현

남편의 먹고사니즘이 취향의 문제라면 멍멍이의 먹고사니즘은 처절한 생존 문제에 가깝다. 한 마리 개를 평생 길러 거둔 우리 시아버지는 항상 먹을 것을 녀석과 나눴다. 그러면 안 된다고 가족들이 타박하면 볼멘소리로 이렇게 말씀했더란다. "얘가 돈이 있어서 슈퍼마켓 가서 지 먹고 싶은 거 사 먹을 수도 없잖냐?"


우리가 딩크라서 아이가 없는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개를 키우는 건 결코 아니다. 아빠 멍멍이인 라니가 지금 나랑 사는 걸 운명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어쩌면 전생에 카르마로 인해 이렇게 함께 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요는 라니는 라니일 뿐. 그 무엇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동 지방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개의 화석을 보면 1만 4000년 전부터 늑대와는 분명하게 다른, 개의 조상이 인간과 어울려 살았다. 왜 함께 살았는가에 대해 학자들은 개가 집을 지키거나 사냥을 돕는데 유용하다는 주장부터 시작해서 그냥 귀여워서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 (어쩐지 후자가 더 설득력 있다) 이런 다양한 주장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 사고를 깔고 있다. 인간이 어떤 유용성 때문에 개를 길들였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개와 살아보니 어쩌면 개가 인간을 길들였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에 더 끌린다. 라니가 나를 길들인 것처럼.


스티븐 브디안스키의 저서 '개에 대하여'를 보면 2000년 전에 살았던 로마인들은 모자이크 무늬 바닥에 "Cave canaem"써놨다고 한다. 이 말을 번역하면 "개조심"이다. 저자는 '개조심'에 대한 기발한 해석을 내놓았다. 흔히 "개에게 물리지 않게 조심하라"는 뜻이 아니라 "문간에 누워 있는 개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더욱 깊은 뜻일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저자는 아침저녁으로 30킬로가 넘는 콜리 개를 안고 2층 침대방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고 하고 있는 분이기에 "개조심"에 대해 그렇게 해석할 자격이 충분하다. 어쩌면 그의 해석이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다.

개들은 인간과 어울리며 먹고살기 위해 여러 필살기를 연마하며 진화했다. 둥그런 이마와 눈망울. 복슬복슬한 털과 맨들맨들한 배. 인간은 이런 동글동글하고 부들부들한 것에 치명적으로 약한 본성이 있다. 그리고 애교와 복종. “기다려, 엎드려, 손, 빵야” 등 다양한 명령를 배우고 주인이 오면 자신도 주체할 수 없다는 듯 마치 모터가 고장 난 것처럼 꼬리를 마구 흔든다. 뽀뽀세례를 퍼붓고 주인이 울면 눈물을 핥아주는 녀석도 있다는데... 우리 라니는.


... 이 녀석은 복종과 애교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하지만 첫 만남에서 라니는 엄청난 끼를 부려 자신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2012년. 은퇴 후 딸에게 집중된 아빠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보려는 다소 불순한(!) 의도로 개를 들이기로 했다. 지금의 시어머니의 지인께서 지방에서 강아지 분양을 한다길래 먼 곳까지 차를 끌고 갔다. 아주머니는 새끼 몰티즈를 보여주셨다. 작고 귀여웠다. 하지만 무언가가 내 마음을 턱 가로막았다. 이렇게 어미젖도 안 뗀 거 같은 작은 애를 데려가 과연 잘 키울 수 있을까, 갑자기 오만가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너무 어리고 작은데..."라고 망설이니까 아주머니가 아까보다 조금 큰, 그렇지만 여전히 뽀시래기같은 크림 포메라니안을 데리고 오셨다. 종견으로 쓰기 위해 분양하지 않고 남겨놓은 아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마치 자기를 선택하라는 것처럼 내 앞에서 빙그르르 돌기 시작했다. 흡사 김연아 뺨치는 공중 회전 실력으로 사람을 현혹하더니만 내 손을 할짝할짝 핥고 어느새 품에 안겨 뽀뽀를 퍼붓는 것 아닌가. "얘네 얘!! 애교가 아주 넘치는 게 딱이야." 뭐에 홀린 것처럼 그 애를 차에 안고 탔다. 그렇지만 애교는 그날로 끝. 집에 와서부터 복종하지 않는 새침한 매력을 지닌 멍멍이로 돌변해 나와 가족들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라니는 본래 온순한 성격으로지도 않았고 분리불안도 없었다. 처음에 배변 실수는 조금 있었지만 영리해서 금세 배변 에티켓을 배웠다. 하지만 소소한 문제로 까탈을 부렸다. 까까를 맛보더니 사료를 안 먹겠단다. 목줄도 하네스도 다 하기 싫단다. 옷도 안 입겠단다. 뽀뽀도 절대 안 하겠단다. 이리와도 안 하겠단다. 배 뒤집는 것도 싫단다. 그나마 살살 꼬시니 딱 반 정도만 뒤집어서 배를 보여줬다. 유일한 개인기는 손인데, 이것도 아빠가 몇달을 가르쳤다. 앞발을 다 내밀지도 않고 내밀듯 안 내밀듯 조금 올리는 게 포인트다. 진짜 똥고집쟁이가 따로 없다.

발라당 하지 않겠도다. 배는 이렇게 반만 보여준다

밥을 며칠씩 굶겼지만 공복토를 하면서도 사료는 절대 안 먹겠다고 하니 내가 생각을 바꿨다. 하긴 공장에서 만들어진 사료에 뭘 넣었을지 알 수 없는데 이렇게까지 싫다고 하면 뭔가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단식투쟁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밥과 간식을 직접 만들어주고 있다. 하네스만 채우면 몸이 얼음처럼 굳어버리니 별 수 없이 줄 없이 인적 없는 곳을 골라 잠깐씩 산책했다. 라니가 줄만 해준다면 다양한 곳을 마음껏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그건 네 마음이지 내 마음은 아니"라는 듯 라니는 얌전하게 제한된 구역에서만 냄새맡고 쉬하고 뒷발차기를 하고 돌아가는 산책에 꽤 만족스러워했다. (지금은 나이가 들었는지 하네스를 하고 걷는다. 나이가 들면 세상사에 좀 유연 해지는 건 사람이나 개나 마찬가지인 건가 싶다. 자세를 잘 잡아주면 이제 배도 발라당 뒤집는 거 보면 말이다) 애초에 예쁜 옷 입히는 것도 포기했다. 요즘 같이 강아지 옷이 넘치는 시대에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벌도 못 건졌지만 라니는 그닥 섭섭해 하지 않았으니까 괜찮다. 예쁘게 치장 안 해도 워낙 미모가 출중하니 자연미를 추구하며 만족하기로 했다. 뽀뽀는 안 하지만 그래도 슬쩍 와서 엉덩이를 붙이는 '엉(덩이)접애교'를 선사하니 이것만으로도 벅찬 감동이었다.

이런 얘가 우리 집에 와서 겸상하는 멍멍이가 되면서 더 당당해졌다.


신혼집이 좁아 주방에 따로 식탁을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소파 앞에 큰 테이블을 놓고 식탁처럼 쓰고 있다. 소파에 앉아 밥을 먹으니 라니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한자리 차지하고는 자기 맘마도 내놓으란다. "라니는 아까 먹었잖아."이러면 한 발을 ‘턱’ 내 허벅지에 올려놓고 "무슨 소리인가, 자네!!!" 이런 눈빛으로 쳐다본다. "안 돼, 아까 먹었잖아." 다시 모른 척하고 있으면 앞발로 허벅지를 벅벅 긁는다.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내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밥이 넘어가냐”는 그 성급한 발짓을 보면 도저히 안 줄 수가 없다. 여기에 남편은 한술 더떠 개들은 원래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이기에 밥을 나눠 먹으면서 결속력과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는 꽤 그럴싸한 논리적 근거까지 만들어 줬다. 결국 나는 전에 아버님이 하셨다는 그 레퍼토리를 내뱉을 수밖에. "네가 뭐 먹고 싶다고 지갑을 들고 슈퍼마켓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치?"


꼭 저렇게 가운데 앉아 발로 허벅지를 꾸욱 누룬다

하지만 2년 전 자궁에 이상이 발견돼 중성화 수술을 한 라니는 부작용으로 갑작스레 살이 쪘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비만은 포메의 고질병이라 불리는 슬개골에도, 고관절에도 치명적이다. 기관지 협착증 문제도 심화시킨다. 먹는 양이 많지도았는데 원체 활동량이 적은 아이라 살 빼기가 쉽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벼운 피부 질환 때문에 동네 병원을 방문했는데 의사선생님 왈

"근데 얘가 통통하네요. 2.9kg예요"

"네, 중성화하고 나서 계속 살이 찌는데..."

"다이어트해야겠는데요."

"하고 있어요. 전보다 산책도 많이 시키고. 그런데 활동량이 적어서 그런지 잘 안 빠져요. "

"강아지 다이어트는 사람처럼 운동하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다른 길이 없어요. 무조건 먹는 양을 확 줄여야 해요."

"네"

"그리고 피부 질환도 비만하고 관련이 있을 수도 있어요."


슬개골 탈구, 고관절 탈구, 기관지 협착까지는 그럴 수 있겠다 싶었지만 이제 피부질환까지 비만 탓이라니. 견주로서 죄책감도 들었지만 이 세상 의사 선생님들이 라니의 모든 병을 다 비만 탓이라고 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약간 오기가 생겼다. 정기검진 다니던 병원은 다이어트 문제를 꽤나 젠틀하게 얘기했기 때문에 내가 경각심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이 직설직인 발언에 완전 자극을 받아 그때부터 먹는 양을 무조건 반으로 줄였다. 고로 라니의 먹고사니즘의 대위기가 찾아 온 것이다. 그래도 겸상하는 멍멍이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삶은 양배추와 오이 등 야채를 준비해 “우리도 이거 먹는 거야. 그니까 너도는 거야”라고 사기를 치면 라니는 귀를 쫑긋거리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어쨌든 받아 먹었다. 어쨋든 식탁에서 나온 음식인 데다 다이어트로 허기졌으니 라니 입장에서는 속더라도 먹어야지 별 도리가 없었지 싶다. 시나브로 체중이 빠지더니 지금은 2.5kg이 됐다. 라니도 다이어트하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온 가족이 다이어트를 하자며 나와 남편도 목표 체중을 칠판에 적어놓고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라니만이 유일하게 성공했다. (역시 다이어트는 누가 가둬놓고 양배추만 먹여야 성공하는 건가 봅니다.)


그래도 무작정 안 먹은 건 아니다. 올여름엔 복숭아를 마음껏 나눠 먹었다. 우리 가족 모두 복숭아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과일을 안 먹는 남편은 과즙이 주르륵 새어나오는 천중도 복숭아만큼은 특별히 아끼며 매년 여름마다 꼭 사다 먹었다. 복숭아 박스가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복숭아가 익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내가 퇴근하고 돌아와 복숭아를 깎으면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복숭아를 나눠 먹었다. ‘도원결의’ 빰치는 일명 '복숭아 멤버'의 의리는 돈독했다. 절대 라니를 두고 우리끼리 복숭아를 먹지 않았으니까. 우리 둘 사이에 껴서 라니는 당당하게 복숭아 권리를 행사했다.


가끔 '라니는 우리와 사는 게 행복할까'라는 의문을 던져본다. 멍멍이는 말을 할 수 없으니 답을 들을 수 없지만 막연히 느낄 수는 있다. 지난 토요일 저녁 평일에 열심히 다이어트했으니 오늘은 라니도 배부르게 먹어보자며 함께 샤부샤부를 나눠 먹었다.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오래 앉아 있어서 다리가 저렸는지 라니는 다 먹고 의자에서 내려와 잠시 휘청거렸다. 그 와중에 남편은 소스 그릇을 치우다가 휘청거리면서 소스를 거실 바닥에 진창 쏟았다. 토요일, 라니와 함께하는 이 배터지는 타락적 만찬은 그렇게 휘청휘청한 소란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날숨을 몰아쉬며 볼록한 배를 드러내놓고 자고 있는 라니를 보면... 오늘도 강아지의 먹고사니즘은 꽤 만족스러운 거겠지,라고 짐작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