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보라색입니다만, 당신의 색은 무엇인가요?

서로의 색이 모이면 세상은 빨주노초파남보

by 김나현

아내의 우산을 사기 위해 진열대를 쑥 훑어보는 남편.

그는 ‘우산 따위 비만 잘 막으면 됐지!’라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분명 ‘예쁜’ 우산을 원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꽤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고민은 잠깐. 그는 보라색 우산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집어 든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아내는 남편이 골라온 우산을 보고는 참 잘 골라 왔다며 남편을 한껏 치켜세운다. 남편은 속으로 생각한다.
‘역시, 보라색이면 게임 끝이지!’


나는 보라색을 사랑한다. 그 덕에 남편이 꽤 편할 것 같다. 내 선물을 보라색으로 고르면 거의 성.공.적.이기 때문이다. 왜 하필 많은 색 중에 보라색이냐고 묻는다면 특별히 좋아하게 된 계기는 역시 없다. 그냥 그 색이 끌렸을 뿐이다. 부케도 보라색으로 했다. 스타치스라고 종이지 같은 느낌의 꽃이 있는데 연보라, 짙은 보라, 자주색 등 다양한 보랏빛을 가진 훌륭한 꽃이다. 결혼반지도 자수정을 썼다. 내 탄생석인 데다 보라색이니 결혼반지로 이보다 훌륭한 보석은 없었다.

스타치스로 만든 부케


작년 여름휴가도 내 사랑 보랏빛에 홀려 떠났다.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가 홋카이도의 라벤더 밭을 보고 ‘바로 여기다!’라고 외쳤다. 남편을 꼬시는 건 의외로 간단했다. 그곳에 닛카 위스키 제조장이 있다고 해서 바로 의기투합. 알고 보니 휴가철의 홋카이도는 서늘한 날씨와 맛 좋은 삿포로 맥주 덕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여름 관광지였고 폭염을 피해 여유롭게 돌아다니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 유명한 삿포로 맥주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요이치에 있는 양조장으로 갔다는 건 안 비밀) 라벤더만 믿고 간 것 치고는 꽤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면 보라돌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전국 보랏빛협회 같은 게 있어 가입 자격을 따진다면 나 정도 되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다 왜 좋아하는지라고 물으면 그냥요, 라는 대답은 너무 시원찮다. 마치 취업 면접에서 ‘왜 이 회사에 들어오고 싶나’에 대한 대답이 궁색한 거랑 비슷하달까.


우리나라에서 보라색은 소설 ‘소나기’의 병약한 소녀 덕분에 죽음의 이미지가 강하다. 보라색이 소설 속 복선이라 배우고 시험 보고 정답처리를 하고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정작 저자인 황순원 선생은 어느 인터뷰에서 그냥 그 색을 좋아서 작품 속에 넣었다고 말했다며 주입식 공부의 페혜를 상징하는 색이 됐다. (하지만 정작 황순원 선생은 생전에 고집스러울 정도로 인터뷰를 피했기 때문에 인터뷰 자체가 낭설일 확률이 높다.)


보통 보라색은 다른 색보다 정신적인 부분과 관계가 깊은데 보라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신비와 마법, 정신, 종교, 철학 등에 관심이 많고 상상력과 창의력이 풍부하다고 한다. 심리학적으로 파랑의 차분함과 빨강의 격렬한 에너지를 모두 담고 있기 때문에 양면적인 성향이 있다고 한다. 일반론적인 심리 테스트처럼 내 성향도 얼추 여기에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내 성격이랑 코드가 맞아서 보라색에 끌린 걸까.


책을 더 찾아보니 보라색은 역사적으로는 굉장히 구하기 어려운 색이었다. 화학 염료가 없던 시대에 보라색을 만드는 주재료는 바다달팽이라 불리는 뿔고둥이었는데 보라색 1g을 생산하기 위해서 뿔고둥1만 2천 마리가 필요했다. 달팽이 수요는 양식으로 해결했지만 만드는 과정 자체가 너무 손이 많이 가서 엄청나게 비쌌고 그래서 19세기 합성염료로 대량 생산되기 이전까지 귀족들의 색이었다. 이 시기와 맞물려 활동한 인상파 화가들은 보라색의 화가들이었다. 인상파의 대가 마네는 그의 친구에게 공기의 진짜 색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정답은? 두둥. 뻔하지만 보라색이다. 그는 “공기는 바이올렛이야. 3년 뒤에도 세계는 여전히 바이올렛이겠지.”라며 보라색에 무한애정을 보냈다.

Lilacs in a glass.1882.Edouard Manet

공기가 보라색이라고? 전적으로 마네에게 동감하는 바다. 내가 보라색에 끌리는 이유는 마네와 비슷하다. 한 가지 색을 사랑한다는 건, 자신만의 색을 발산하며 산다는 것은, 세상을 좀 더 다채롭게 채울 수 있다는 의미다. 색의 편견에서 벗어나면 세상을 나만의 색으로 물들일 수 있다. 혹시 파란색 불을 본 적이 있는가? 사실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가스레인지에 가서 불을 켜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병아리는 노란색만 있는 게 아니다. 노란 병아리는 황색닭 품종에서 나타날 세상에는 검은색, 흰색 병아리도 많다.(이 색들이 다 섞여 있다) 그러니 공기가 보라색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보라색에 푹 빠져 있어도 옷을 전부 보라색으로 깔맞춤 하진 않는다. 집 전체를 보라색 페인트로 발라놓지도 않았다. 사실 내가 보라색을 사랑하는 방식은 그 색이 다른 색과 은은하게 잘 어울릴 때다. 우리 집 침실 벽은 짙은 회색 페인트를 칠하고 흑백사진을 걸어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여기에 화룡정점을 찍는 건 톤다운된 보라색 조화다. 이 보라색 조화는 그레이 속에 섞여 눈의 띄지 않으면서도 희미하게 제 빛을 내고 있는데 이 은은한 보랏빛을 감상하는 게 (남편은 모르지만) 나만 아는 소확행이다.


벚꽃 피는 거 보니 푸른 솔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

-김지하 <새봄>


어쩌면 이 짧은 시가 내가 보라색을 사랑하는 마음과 비슷하다. 금세 지는 벚꽃이 싫어 변치 않는 소나무를 좋아하기로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소나무의 영속성은 벚꽃이 있기에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삶은 이렇게 양과 음, 순간과 영원, 빛과 그늘,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 보라색을 좋아하다 보니 색과 어울리는 다른 색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삶에 다양한 색감을 발견한다는 건 비단 인테리어, 패션, 화장, 액세서리에서 색을 쓴다는 의미가 아니다. 특색을 발견하는 재미는 스토리로 뻗어간다. 다양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듣고 읽고 보고 싶고 여기에 더해 기꺼이 내 이야기를 말하고자 하는 욕망.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 내 색을 칠하는 방식이다.


다시 한번 상상해보자. 당신의 공기는 무슨 빛깔인가? 여전히 무색무취인가. 아니면 글을 읽다가 문득 특별한 색을 발견했는가. 문득 떠오른 그 색이 어쩌면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당신만의 색일 것이다. 그렇게 당신과 나의 색이 만나 세상은 빨주노초파남보로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