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쟁이 남편이 아내와 멍멍이를 사랑하는 법
"길조심 차조심 사람조심 모든 걸 조심해야 해!"
매일 아침마다 듣는 이 말은 어린아이를 등교시키는 엄마의 대사가 아니라... 남편이 나에게 하는 아침 배웅 인사다.
나보다 출근이 늦은 남편은 항상 먼저 나가는 나를 배웅해준다. 지각할까 봐 허둥지둥 나가는 나를 붙들고 그는 신신당부한다. "차조심해야 해!!" 매일 지치지도 않고 차조심을 강조하길래 어느 날 내가 반문했다.
"오빠, 나 출근하는 길에 차 없어. 도보로만 걷고 지하철 타잖아."
"그래? 그래도 차 조심해야 해야 해. 걸을 때도 조심하고."
"흠... 차라리 그렇게 조심해야 할 거라면 지하철에 사람들을 가장 조심해야 할 거 같은데."
"그래? 그럼 사람조심도 추가."
남편 말에 토를 단 내가 잘못이다.
남편의 안전 민감증 또는 안전제일주의 고집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원체 허술한 마누라가 밖에 나가서 사고를 치고 들어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혼자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하고 들어오질 않나, 회식 중에 식당 화장실에서 넘어져서 이마에 혹을 달고 들어 오질 않나, 에스컬레이터에서 가방이 뒤집어져 떨어진 물건을 줍다가 넘어지질 않나,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진 날은 '그래도 오늘은 많이 다치지 않았다'며 해맑게 웃는 마누라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무거웠을 테지.
여기에 멍멍이 라니도 그의 불안한 마음에 부채질을 한다. 라니는 간혹 소파 끝이나 침대 끝에 떨어질 듯 불안하게 앉아있는데 문제는 라니가 아주 작은 멍멍이라 떨어지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테이블 위에 음식이라도 올라오면 흥분하면서 소파 끝으로 더 바짝 다가가는데 그럴 때마다 앞다리는 왜 그렇게 미끄러지는지. 그럴 때마다 불안한 마음이 폭발한 남편은 라니에게 소리친다.
"조심해, 뚝 떨어져!!"
이 잔소리는 올 하반기 우리 집 최고의 유행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실 시댁 식구들의 공이 크다. 때는 시아버지 칠순 생신 기념으로 모두 모인 자리였다. 음식이 나오자 소파 끝으로 바짝 다가가서 킁킁대고 있는 라니를 향해 남편은 항상 하던 대로 '조심해 뚝 떨어져'를 외쳤다. 근데 한 두 번만 잔소리하면 될 것을, 기분 좋게 술 한 잔 걸친 남편은 그 자리에서 라니를 볼 때마다 '조심해 라니, 뚝 떨어져'를 반복했고 이런 모습을 보고 식구들이 놀려대기 시작한 것. "걔가 바보도 아니고 지 알아서 안 떨어지게 잘한 텐데 별 걱정을 다 한다"는 게 요지였다. 억울한 남편은 전에 라니가 침대에서 한 번 뚝 떨어졌다며 항변해봤지만 놀림거리를 찾은 사냥꾼들에겐 소용없었다. 결국 그날 '조심해 뚝 떨어져'는 남편의 '사서 하는 걱정'을 상징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물론 나도 남편의 잔소리를 놀림거리로 삼은 1인이지만 '조심해 뚝 떨어져'에는 이 위험천만한 세상에서 아내와 강아지를 지켜야 하는 책임감이 담겨 있다는 것을. 집안의 지붕이 되어 온갖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는 실제적으로 우리 집 방비를 책임지고 있다. 집 인테리어를 총괄한다면서 이 건물에 소화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아내를 대신해 소화기를 사다 놓아야 했고 외출하기 전이나 잠자기 전에 문단속, 창문 단속, 가스 밸브 점검을 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게다가 오래된 아파트 1층에 살면서 집안을 노리는 온갖 벌레들로부터 가족을 지켜야 하는 막중한 책임까지 떠안아야 했다.
이 집에 신혼살림을 차리면서 기어 다니는 온갖 벌레는 다 본 거 같다. 다리가 기다란 머리카락 같은 거미(집유령거미라고 한다), 작고 단단한 거미(집가게거미라고 부른다), 그리마(다리가 많아 혐오스럽지만 알고 보면 온갖 해충과 바퀴벌레 알까지 먹는 익충이라고 합니다), 쥐며느리, 좀벌레, 줄줄이 나오는 개미 등. 많은 벌레가 이 집에서 죽어 나갔다. 그중 제일 무서웠던 건 압도적인 크기의 꼽등이. 어떻게 그렇게 커다란 생명체가 꽁꽁 닫아놓은 집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실물 꼽등이를 영접하고 한동안 나는 벌레가 웅크리고 있던 그 자리에서 벌레의 환영을 본 듯한 착각에 빠져 몇 번이고 그 자리를 다시 확인해야 했다. 남편은 그래도 "바퀴벌레랑 지네가 안 나온다는 게 어디냐"며 애써 나를 위로했지만 그 위로는 실상 자신에게 하는 말 아니었을까 싶다.
남편이라고 해서 어찌 처음부터 벌레를 잘 잡았겠는가.
그 역시 어린아이였을 때 벌레를 무서워했고 특히 아무리 때려도 죽지 않는 지네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하지만 벌레의 침투로부터 집안을 지키기 위해 남편은 전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선 기어 다니는 벌레가 내부로 들어오지 않기 위해 베란다 입구와 현관 앞에 판데스라는 가루약을 뿌려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 가루를 밟으면 벌레가 죽는다는 건데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수많은 벌레들이 베란다를 넘지 못하고 가루 위에서 쓰러져갔다. 효과는 뛰어났지만 단점이라면 베란다를 전투를 위한 장소로 버려둘 수밖에 없다는 것. 판데스 방어선을 뚫고 들어온 독한 녀석들과는 각개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었는데 주요 무기는 뿌리는 약과 파리채였다. 남편 덕에 에프킬라가 두 종류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날아다니는 벌레용(파란 병)과 기어 다니는 벌레용(빨간 병)이 있었고 그는 손에 닿는 거리에 에프킬라를 놓고 지상전과 공중전을 치렀다. 나중에는 모기랑 날파리에는 전기로 지지는 전기 모기채가 동원됐는데 이 신박한 물건은 특히 산책하는 라니 앞에서 얼쩡거리는 모기를 처치하는 데 탁월했다. 우리집 강아지 산책 키트로 전기 모기채가 필수 용품으로 등극하면서 모기에게 선빵을 날릴 수 있었다. 라니 앞에서 모기채를 휘휘 휘두르며 산책을 진두지휘하는 남편의 모습은 흡사 비장한 호위무사를 보는 듯했다. 모기채에서 파박! 파박! 소리가 낼 때마다 그의 표정에는 한껏 살생의 쾌감이 어렸다.
지상 세계의 벌레 문제는 천장의 위협에 비하면 세발의 피였다. 천장 문제는 스케일이 남달랐다. 어느 날 화장실 천장 쪽에서 퉁퉁퉁 소리가 났는데 알고 보니 그 정체는 오. 마이. 갓. 쥐였다. 쥐라니. 내 인생에 쥐라니. 나는 살다 살다 별 일을 다 겪는다며 내가 하층민으로 전락한 것 같은 패배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남편은 이렇게 철없는 아내의 정신줄을 부여잡고 상황을 헤쳐 나갔다. 관리사무소 아저씨들에게 의뢰해 천장 안에 끈끈이를 설치했지만 쥐가 어떻게 알고 함정을 피해 다니는 바람에 연달아 실패했다. 지지부진하던 쥐잡이는 결국 통로를 찾아 막으면서 끝났다. 우리집 화장실 인테리어 공사를 했던 업체가 벽에 구멍을 냈는데 그 구멍을 제대로 막지 않아버리는 바람에 이 사태가 발생한 거였다. 어쨋든 입구를 막아 성공적으로 해결했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산 넘어 산이라고 윗집 배관이 터지면서 주방 천장으로 물이 샜다. 예쁘게 꾸며놓은 집이 이렇게 망가졌다면서 다시 한번 신세 한탄을 하는 나를 다독이며 그는 꽤나 의연하게 대처했다. 윗집은 결국 배관공사를 하고 우리 집은 벽지를 다시 해야 했는데 도배를 하기 전 물이 가득 차서 터질 것 같은 천장 벽지를 살살 찢어서 쏟아지는 물을 세숫대야로 받아낸 것도 남편의 몫이었다.
"조심해! 뚝 떨어져!"
추락할 거 같을 때 누군가 이렇게 외치면서 손 내밀어 주는 건 감동적인 일이다. 그 손은 친구일 수 있고 가족일 수 있다. 나에게 그 손은 남편이다. 쓰다 보니 어쩐지 내가 뛰어 봤자 부처님 손, 아니 남편 손 안이라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뭐 그럼 또 어떤가. 가장 힘든 순간, 가장 외로운 순간, 잔소리를 해대면서 서로의 뒤를 꼭 잡아준다면 이 험한 세상에서 잠깐만이나마 안전할 수 있으니 그거면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차조심을 외치는 남편의 잔소리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그가 입에 달고 사는 이 잔소리는 어떤 말보다 끈끈한 그의 사랑고백인 것이다. 그 따뜻한 걱정 덕에 어쩌면 나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비상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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