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아파도 내가 돌볼 수 있어 다행이야
“꼬르르륵”
남편의 배가 울고 있다. 그는 요새 간헐적 단식을 시작해 저녁을 굶고 있다. 점심을 먹고 그 후 공복 상태를 16시간 유지해 그 시간 동안 체내에 지방을 쓰게 만드는 다이어트다. 남편의 누나가 이 방식으로 살을 쏙 빼기도 했거니와 가뜩이나 매일 야근하는 마누라 때문에 혼자 차려먹는 저녁이 귀찮기도 했던 그는 과감하게 저녁 굶기에 돌입, 이제 3주 차다. 마흔 넘어 인생 최초 굶기 다이어트를 경험한 그의 빈 위장은 음식물을 채워달라며 계속 울고 있다.
이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유는 바로 뱃살. 그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몸매를 가졌다. 가느다란 팔다리에 볼록한 배. 그 배를 두드리며 그럭저럭 살고 있었는데 작년에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뱃살이 디스크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최근에는 더 이상 예전 사이즈의 옷으로는 배를 가릴 수 없어 상의를 한 치수 늘려서 싹 다시 샀다. 그러더니 “나도 더 이상 내 배가 감당이 안 돼.”라고 말하면서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나는 남편이 다이어트에 성공할 거 같다. 왜냐면 내 남편은 담배도 끊은 "독한 놈"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골초였지만 결혼하고 1년 남짓 지나 담배를 뚝 끊어버렸는데 금연 치료제 도움이 컸다. 보건소나 병원에서 중증 니코틴 중독자에게 처방하는 약인 챔픽스는 몸속 니코틴 수용체의 수를 줄여 니코틴 중독을 치료하는 약이다.(이 약은 각종 부작용이 있으니 꼭 의사의 상담을 받고 처방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약을 먹는다고 모두 금연에 성공하는 게 아니다. 벌써 내 주변엔 이 약을 먹고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꽤 있으니까. 그래서 남편에게 어떻게 당신은 성공했냐고 물어보니 남편 曰 “담배를 피고는 싶지만 안 피어도 그냥 참을 만하니까 계속 참는 거지.”란다. 그는 이렇게 벌써 2년을 보냈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 것 같다.
그 좋아하던 담배를 끊은 이유도 다이어트 이유랑 비슷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아무런 감각도 만족도 못 느끼면서 전자담배를 습관적으로 피우고 있는 게 싫어서.”라고. 누가 잔소리 해대서 끊은 것도 아니고 정말 자기가 결심해서 끊은 거니 내가 “독한 놈”이라고 하는 거다. 그러니 이번 다이어트도 독하게 성공할 것 같다. 남편 다이어트에 동요돼 괜히 따라 했다가 일주일 만에 각종 회식을 핑계 삼아 또 야금야금(?) 저녁을 먹기 시작한 나랑은 차원이 다르신 분이라는 거다. 하지만 이렇게 "독한 놈"주문을 걸면서 그의 다이어트 성공을 기대하는 건 사실 그만큼 그가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남편의 뱃살을 걱정하는 것처럼 남편은 나의 두통을 걱정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편두통을 달고 살았다. 어렸을 때는 뭔지도 모르고 약국에서 게보린, 타이레놀 등 일반 두통약은 두루 섭렵했지만 낫지 않았다. 그러다 엄마가 내과에서 두통약이라고 받아온 약을 먹어봤는데, 먹자마자 마법처럼 통증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머리가 아플 때마다 엄마 약을 조금씩 몰래 빼먹다가 결국 약봉지를 들고 내과에 가서 이대로 처방해줄 수 없냐고 물어봤다.
의사는 내 증상을 이리저리 물어봤다. 한쪽이 콕콕 찔리듯 아프면서 머리 전체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 소화 불량과 뻐근해지는 뒷목. 내 편두통의 원인은 너무 다양해 특정할 수 없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근육 긴장으로 올라올 때고 있고 소화불량으로 올 때도 있고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올 때도 있다. 그렇게 무사히(?) 편두통 판정을 받고 전문 치료제를 처방받고 삶의 질이 한결 나아졌다. 머리 뒤가 뜨거워지는 듯한 전조 증상이 생기면 얼른 약을 먹어 더 심하게 아플 것을 대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통이 심하게 올 때는 약을 먹어도 금방 낫지 않는다. 앓는 시간이 필요하다. 밥도 못 먹고 끙끙 앓으면서 누워 있는 나를 보면 츤데레 남편은 “이거 원 마누라가 이렇게 부실해서야... A/S도 안 되고 반품도 못하고 말이야...”말하면서도 내 두통을 세상 제일 걱정한다. 두통약 개수를 점검해보고 약이 떨어져간다 싶으면 무신경한 아내에게 얼른 가서 약 타오라 잔소리하는 것도 그의 몫이고, 아픈 머리를 쥐어 잡고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내가 이렇게 부실하니 분명 당신보다 먼저 죽을 거야~”라는 신세 한탄을 들어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리고 “원래 잔병치레가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자주 다녀서 더 오래 사는 법”이라며 아픈 아내를 위로해야 하는 것 역시 그의 몫이다.
두통을 앓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치매다. 외할머니가 치매를 오래 앓았는데 내 생김새나 체질을 보면 딱 외가 쪽 유전이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자주 앓는 편두통도 어쩌면 나중에 치매라는 시한폭탄의 서막극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까먹고 덤벙거린다.
“여보, 나 치매 예방약 같은 거 미리 먹을까?”
“왜?”
“(유전적 요인 등 위 근거들을 들고 나서)기억을 잃는다는 건 나를 잃는 거랑 같잖아. 그게 너무 두려워.”
“그렇게 걱정되면 예방약을 알아보자.”
“나 아프면 당신이 보살펴 줄 거야?”
“당연하지, 내가 당신을 보살필 거니까 걱정 마.”
그러더니 어느 날 남편이 마트에 가서 땅콩, 아몬드 등 다양한 견과류를 사 왔다. 그것도 엄청 큰 통으로 말이다.
“어머, 여보~웬일로 견과류를 사 왔어? 당신은 먹지도 않잖아.”
“...견과류가 치매에 좋대서.”
석가모니도 예수도 니체도 그랬다. 인간 삶에서 고통을 피할 수 없다고. 특히 육신의 고통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오래된 연장을 갈고 다듬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내 몸을 더 잘 이해하고 미리 대비하면서 내 몸을 최대한 오래 사용하는 수밖에. 그리하여 이 고해의 바다를 함께 건너기로 약속한 부부에게 사랑이란 사랑하기 때문에 아픈 이를 돌봐주는 게 아니라 그이가 아프니까 더 사랑하겠다는 결심인 것이다. 아픈 당신을 내가 돌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우리는 계속 어딘가 아프고 아플 거지만 펄펄 열이 나는 이마에 손 얹어 줄 당신이 있으니...일단 지금은 괜찮다.
“이것 봐, 배가 좀 말랑말랑해진 거 같아!”
그래, 독한 남편아! 이번 기회에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고질병인 디스크와 고지혈증 등등을 싹 다 날려 버리자! 당신 건강이 내 건강이고 내 건강이 당신의 건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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