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얼마 버는지 모릅니다

한 지붕 두 지갑의 자유로움

by 김나현

얼마 전 송년 모임에서 동기 녀석에게 청첩장을 받았다. 청첩장을 손에 쥔 사람들은 그의 결혼 이야기를 안주 삼아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러다 그 녀석이 이런 말을 꺼냈다.

“월급은 아내한테 다 갖다 주고 용돈 받아 쓸 거야!”

이런 착해 빠진 녀석! 요즘 얘들 같지 않다, 벌써부터 마누라한테 꽉 잡혀 산다, 그래도 남자는 비상금은 필요하다 등등 다양한 말이 오갔다. 새신랑의 벅찬 포부에 끼어든 갖은 참견과 오지랖은 결국 하나의 전제를 깔고 있었다.

“경제권은 자유다”


맞다. 같은 동네에 살아서 가끔 나에게 카풀 서비스를 베풀어주시는 회사 선배님이 있다. 그분 역시 월급을 고스란히 아내에게 주고 자신은 용돈을 받아쓰며 자식 셋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그러기를 10년째, 어느 순간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고 항거해 월급 통장과 수당 통장을 분리하는 자유를 쟁취했다. 수당 통장이 온전히 자신만의 통장이 되던 순간, 그는 이렇게 말했단다.

“이제 정말 숨통이 트인다!!”


우리 부부는 그런 면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각자 벌어 각자 쓰기 때문이다. 내 월급이야 공무원 월급이라 완전 유리지갑이지만 프리랜서로 일하는 남편의 수입은 들쑥날쑥하니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 안 돼서 업종 전환을 위해 준비 중이라 하니 전보다 버는 게 부실할 것이라 추측될 뿐. 어쨌든 서로의 지갑에 터치하지 않고 한 지붕 두 지갑 살림살이를 하고 있다.


과거 우리 부모님 세대는 남편이 돈 벌어오면 일단 아내에게 다 갖다 주고 알뜰살뜰 살림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요즘 같은 맞벌이 시대엔 많은 재테크 책에서 결혼의 완성은 부부의 통장을 합칠 때라고 입 모아 말한다. 그래야 합리적인 지출 관리가 가능하고 이게 재테크의 시작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둘 다 월급쟁이가 아닌 이상 수입이 들쑥날쑥한 집은 계획적인 수입과 지출 관리가 어렵기 마련. 그래서 각자 벌어들이는 돈에서 일정 부분을 떼어내 적금을 들고 시드머니를 마련한 다음 투자를 하겠다는 계획 아래 자연스럽게 따로 지갑 관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계획도 없이 각자 벌어 펑펑 쓰면서 막 사는 건 아니라는 거다.(그렇게 펑펑 쓸 돈도 없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일정 부분 통제는 있으나 나머지 부분은 자유롭게 쓰자는 거다. 하지만 그 자유로운 영역에서도 큰 지출이다 싶으면 예의상(?) 서로에게 알려준다. 나 같은 경우는 한국 근현대사 20권짜리 전집을 중고로 사기 전에 남편에게 미리 알려줬다. (게다가 공간을 많이 차지하니 양해를 구해야 했다) 그 심리적 마지노선은 대략 20만 원 이상일 때지만 옷이나 화장품을 살 때는 굳이 알리지 않는다. 그런 걸 한 번에 20만 원 이 사 본적도 없거니와 이 옷과 저 옷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남편에게 굳이 설명하는 게 더 구차하다.


그런데 우리 같이 한 지붕 두 지갑인 집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 전에 일하던 팀에서 신혼부부가 나 포함 셋이었는데 하나같이 각자 돈 관리를 했다. 내 옆자리 직원은 주말 부부였는데 남편이 생활비에 쓰라고 일정 부분 돈을 떼어 주는 모양이다. 하지만 자기 월급으로 살림살이가 가능해서 남편이 주는 돈은 고스란히 저금하고 있다고.내 앞자리 남자 직원은 사내 커플인데 결혼 3년 차로 아직도 통장을 합치지 않고 각자 관리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팀 내에서도 씀씀이가 커 인기가 많았다. 우리 팀장님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요즘 얘들이란, 이러면서 혀를 끌끌 찼지만 서울대에 들어간 똑소리 나는 대학생 아들이 벌써부터 무조건 맞벌이하는 여자를 만날 거라면서, 내가 벌어오는 돈을 아내가 다 쓰는 건 억울한 일이라고 말했다면서 요새 것들은 다 이러냐고 반문해왔다.


이러니 난 그다지 트렌디한 사람이 아닌데, 이 분야에서는 가장 트렌디한 사람이 되어 버린 셈이다. 하지만 이런 지갑 관리가 불안하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 불안하다. 이렇게 해서 과연 집이나 한 채 제대로 살 수 있을까 불안하다. 매달 받는 대출금리 안내 문자에 소수점 아래 숫자가 바뀌어 있으면 불안하다. 하지만 우리 둘 모두 계속 일을 할 테니 지속적인 수입은 있을 것이고 불필요한 과소비나 겉치레에 관심이 없고 가성비를 사랑하니 어쨌든 둘이 사는데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라고 애써 위로해 볼 뿐. 혹시나 모를 큰일을 대비해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보험과 적금을 들고, 돈 굴리기를 반복하면 언젠가 대출도 갚을 수 있지 않을까. 때로는 내가 너무 가난한 거 같아 비참하다가도 때로는 핑크빛 미래를 꿈꾸는,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고 있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앞서 소개했던 수당 통장을 쟁취했던 선배님이 어느 날 차 안에서 슬며시 속내를 털어놨다. “남자란 결국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매여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지." 그는 정년퇴직하고 퇴직금을 받아 자신의 로망인 할리 데이비슨을...... 사고 싶지만 그때 되면 너무 나이가 들어 그건 위험할 거 같으니 캠핑카를 사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게 꿈이라고 한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 퇴직금을 (아내에게 뺏기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을까. 그리고 내 남편은 남자의 인생을 무엇이라고 말할까.


남편의 대답도 같았다. "남자의 인생이란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게 맞지." 하긴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건 원시시대부터 수렵을 도맡았던 남자의 유전자에 뿌리 깊게 각인된 숙명일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내 남편이 이 “먹여살림의 숙명”으로 인해 숨통이 조일만큼 구속되어 있다는 느낌이 안 들었으면 좋겠다. 아니, 어쩌면 내가 “내 돈은 내 돈, 남편 돈도 내 돈”을 주장하지 않고 통장을 합치지 않는 건 사실은 내가 자유롭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남편을 구속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나 역시 그에게서 자유롭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자유로운 영혼”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장 큰 목표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자유로운 만큼 내가 사랑하는 남자의 영혼 역시 자유롭지 않을까.


아무튼 지금 디딤돌 대출이 가능한 만큼 부부 합산 소득이 적은 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만큼 지금의 우리의 살림살이는 쌓았다가 무너지는 모래성만큼 불안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한 직장에 매여 있는 나보다 언제든지 반전의 기회가 있는 남편이 우리 집을 일으켜 세울 거라 믿으며 버텨 보련다. 요새 힘들다면서 그래도 내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겨준 남편. 내가 요새 그림을 배우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드로잉 태블릿을 챙겨준 게 고마울 따름이다. 이렇게 서로의 발전을 응원해준다면 함께 쌓아 올린 모래성은 오래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무너지면 또 어떠랴. 원래 인생이란 그렇게 들고 나고 하는 것을. 그때 또다시 함께 쌓아 올리면 되겠지.


* 사진 @Freepi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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