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인치 TV가 대체 뭐길래

대형 TV를 쟁취한 남편을 통해서 본 협상의 기술

by 김나현

영화가 끝났다. 엔딩 크레디트를 보며 영화의 감동을 음미하고 있을 때쯤. 남편의 한마디가 훅, 치고 들어온다.

“어때? 육십이 사기 정말 잘했지?”


우리 집 육십이. 바로 60인치 TV다. 작은 거실에서 위풍당당 그 위용을 자랑하며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물건. 이 아이를 들이기 위한 남편은 노력은 정말 눈물겨웠다. 내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 야생 잡풀을 베며 산길을 만드는 외로운 탐험가처럼 그는 아내의 질긴 반대를 잘라내며 육십이에게 닿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시작해야 했다.


skill 1 # 이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설득

처음에는 꽤나 과학적인 이유를 들이댔다. 공대 출신다운 접근이었다. 평소 컴퓨터용으로 27인치 모니터를 사용하고 있던 남편은 자신의 시야각에 딱 만족하고 있었는데 우리 집 거실에서 텔레비전으로 그 정도 만족감을 얻으려면 60인치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실 폭은 230센티. 나는 유난히 거실이 작게 빠진 오래된 아파트 구조에 그렇게 큰 TV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맞섰다. 그러자 어디서 찾았는지 시야각에 대한 학술자료 같은 것을 들이댔다. 도식과 숫자들이 넘실거려 어질어질했던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자료. 그런 걸 찾아내서 나를 설득하려는 남편을 보고 '역시 그답다'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TV라는 사물을 전혀 다르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란 여자에게 그것은 집의 전체 분위기와 어울려야 하는 인테리어 요소 중 하나였고 남편에게는 자고로 텔레비전이라 함은 선명한 화질과 적절한 시야각으로 몰입의 즐거움을 주는 엔터테인먼트 장비였던 것이다.


skill 2 # 실제적 경험을 통한 설득

나는 투덜거렸다. 너무 큰 TV는 눈이 아플 거라고. 그러자 남편은 마트 가전코너로 나를 데리고 가 슬며시 60인치를 선보였다. 그리고는 그 앞에서 신중히 거리를 계산해 위치를 잡더니 나보고 딱 이 지점에서 화면을 봐보라고 했다. 그 위치는 (예상했다시피) 딱 우리 집 거실 거리였다. “어때? 눈 별로 안 아프지? 눈에 딱 들어오지 않아?” 남편은 의기양양했다. 시야각에 대한 이론적 접근이 통하지 않는 아내에게 그것을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려는 그 기념비적 순간은 잠시 후 눈을 비비적거리며 내뱉는 아내의 말에 흑역사로 돌변했다. “눈 아픈데?!!!” “엥? 그럴 리가”. 남편은 처음이라 어색해서 그런 거라면서 계속 보다 보면 익숙해진다고 성급하게 진화에 나섰다. “그래? 근데 아무리 봐도 너무 큰 거 같아. 저기 40인치는 어때?”


skill 3 # 여론을 이용한 설득

개안에 실패한 나는 새로운 반대 근거를 들었다.

“오빠, 우리 아빠 말이야. 정말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달고 사시거든. 근데도 40인치에 만족하셨어. 아빠네 집이 우리 집보다 훨씬 큰 건 알고 있지? 그리고 나도 계속 그 TV 보고 살았잖아. 그래서 그 정도의 시야각이 나한테 딱 맞는 거 같아. 지금 이 텔레비전 앞에 서보니까 예상대로 눈도 아프고 어질어질한 데다 우리 아빠보다 더 크고 좋은 티브이를 갖는다는 게 어쩐지 자식 된 도리로 좀 미안하기까지 하네. 이건 아닌 거 같아.”


하지만 남편은 새로운 신혼집에 크고 좋은 TV를 놓으면 아버지도 더 좋아하실 거라고 응수했다. 원래 티브이는 크면 클수록 좋은 거야. 좋은 가전을 들여놓은 딸의 집을 보면 더 흐뭇해하시지 않을까. 그는 나만큼 확고했다. 팽팽한 줄다리기로 더 이상 승부가 나지 않아 결국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나는 결혼 준비와 셀프인테리어로 유명한 모 인터넷 카페에 남편과의 TV전쟁 이야기를 올렸다. 결과는 (나에게만)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별거 아닌 이야기에 의외로 댓글이 많이 달렸는데 여론이 반반으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집 크기에 비해 TV가 부담스러울 거 같다는 내 지지자들도 있었지만 TV만큼은 남편 뜻에 따라줘라, TV랑 냉장고는 원래 크면 클수록 좋은 거다, 자기도 우리 집만큼 작은 집에 사는데 60인치 TV를 들여놓았고 지금 생각엔 더 큰 거 사고 싶다는 등등 남편의 추종자들도 절반 가까이 됐다. 카페 회원이 대부분 여자인 이 공간에서만큼은 모두 내 편일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배신자들이 속출할 줄이야. 마치 남편이 댓글 조작이라도 한 듯 괜히 화가 났다. 하지만 그는 여론에 힘입어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야 말았다.


skill 4 # 감정에 호소한 설득

"내가 이 집에서 원하는 게 그 60인치 TV 딱 그거 하나야."

그랬다. 나는 이 집의 폭군이었다. 내가 집에다 뭔가를 하고 싶어 하면 남편은 묵묵히 페인트 칠을 하고 조명을 갈고 가구를 조립했다. 그런 남편이 이 집에서 딱 하나 원하는 게 그 텔레비전뿐이라는데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혔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그의 노가다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영하의 날씨에 아직 난방도 안 들어오는 서늘한 집에서 구멍 난 벽을 퍼티로 메꾸면서 그의 입에서 나오던 입김이, 페인트칠하기 전 낡은 문을 사포질 하느라 머리와 안경에 수북이 쌓였던 먼지가, 조명 단다고 해머드릴로 시멘트 천정을 뚫느라 이마에 송송 맺혔던 땀방울이.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내 남편인데 이 집에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 딱 하나만 달라는데 그것마저 빼앗아버리면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매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남편은 60인치를 쟁취할 수 있었다.


우리 집 육십이


대체 남편에게 TV는 무엇이었길래 이렇게 고집을 부렸던 것일까.

건축학자 유현준 교수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텔레비전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마당을 잃은 현대의 아파트는 단조로운 풍경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그 단조로움을 채우는 것이 TV의 역할이라고. 마당을 통해서 경험했던 변화와 이벤트를 TV를 통해서 경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 더 큰 텔레비전을 찾는다. 더 큰 화면으로 변화와 재미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똑같지 않지만 재미라는 측면에선 남편에게 이 분석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에게 육십이는 게임도 할 수 있고 영상도 즐길 수 있는 커다란 모니터이자 장난감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에 무슨 어플을 활용해 컴퓨터 폴더에 있는 영상을 바로 육십이를 통해 볼 수 있게 되었다면서 룰루랄라하는 걸 보면 대형 티브이는 어른의 장난감이 맞는 것 같다.


여기에 유 교수는 TV를 보는 행위에 인문학적 비유도 곁들었다. 그것은 마치 구석기시대 원시인들이 그 옛날 동굴 모닥불 앞에 앉아 넘실거리는 불길을 보며 긴장을 풀고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것과 비슷한 행위라고. 현대인은 TV를 보면서 구석기인이 느꼈던 비슷한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60인치 앞에서 자신이 그간 차곡차곡 모아놓은 영상을 의기양양 재생하는 남편을 보고 있노라면 먹잇감을 사냥하고 동굴로 돌아와 불을 쬐며 사냥 이야기를 나누었을 구석기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른 건 몰라도 육십이가 있는 집은 그에게 있어 마치 동굴처럼 가장 편한 장소가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극장이 있다면서 좋아했던 일은 이제 옛말. 데이트도 할 겸 영화관에 같이 갈까 했더니 우리 육십이가 있는데 어딜 나가냐면서 혼났다(?!). 그리곤 자신은 앞으론 영화관을 가지 않을 거라고 선언했다. 그럼 최신 영화를 보고 싶을 때는 어쩌냐고 반문했더니 IPTV 유료결제를 하면 된다면서 우리 육십이를 두고 영화관 갈 일은 두 번 다시는 없을 거라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더랬다. (물론 더 큰 티브이가 생기면 변할 사랑이건만)그런데 남편이 자꾸 육십이에 대한 자긍심을 드러낼 때마다 묘한 반발심이 드는 건 왜일까.


그래서 판도라의 상자를 닫고 다시 폭정이 시작됐다. 백화점에 놀러 갔다가 8만 원짜리 쓰레기통을 사 갖고 들어온 것이다. 물론 휴지통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예쁜 휴지통이 필요했다. 이 휴지통은 아름다웠다. 반달 모양의 독특한 디자인에 고급스럽게 반짝이는 스테인레스 스틸 재질. 이 세상에 쓰레기통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됐지만 미학적 관점에선 분명 예술품이었다. 예술의 절정은 그 부드러운 움직임에 있었다. 올라갔던 뚜껑이 소리도 없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혀 끝에서 천천히 녹는 아이스크림처럼, 그 찰나의 순간 정적을 끌어안고, 너무나 스무스하게 내려왔다. 그 움직임은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다시 남편의 질문으로 돌아와 보자. 60인치 TV 사기 정말 잘하기 않았냐는 그 질문에 이제 흔쾌히 맞불을 놓아놓을 수 있을 거 같다.

“근데 말이야, 내 8만 원짜리 쓰레기통 너무 예쁜 거 같지 않아? 정말 잘 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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