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나봉이, 순돌아빠 그리고 라니찌
별명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별로 좋지 않았다. 어렸을 때 내 별명은 주로 "털"과 관련됐다. 여자아이가 팔다리에 털이 많으니 얘들 놀리는 게 최대 관심사인 개구쟁이들 사이에서는 꽤 쏠쏠한 소재였을 것이다. 그 녀석들은 무미건조하게도 나를 ‘털’이라 불렀고, 조금 별명답게는 ‘털보, 털녀’라고도 했다. 좀 더 상상력을 보태 ‘짐승’, 영어 좀 배운 녀석들은 ‘비스트’라고 불렀다.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털부자 별명들은 여중, 여고로 진학하면서 자취를 감췄다. 그 후로 특별한 별명 없이 지내다가 지금의 남편이 나에게 ‘나봉’이라는 별명을 하사했다. 연애하면서 그가 좋아하는 프랜차이즈 돈가스 집을 자주 갔는데, 이곳은 식전에 깨를 담은 그릇을 손님에게 준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손님이 직접 깨를 갈게끔 한 건데 깨를 다 갈고나니 나중에 점원이 "깨봉 치워드릴게요"라는 말을 했다. 나는 단순히 깨봉이란 단어가 참 귀엽다고 생각해 깔깔거렸다. 그런데 남편은 그 단어 하나에 영감을 얻어 나를 '나봉'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내 이름 나현에 봉을 붙인거다) 그것은 봉인 풀린 손오공마냥 돌을 깨고나와 자유를 되찾은 나봉이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그 별명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털'보다는 나았지만 ‘봉’이라는 소리가 어쩐지 촌스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나봉이가 참 찰진 별명이라면서 그때부터 이 세상 유일무이한 수집가, 일명 ‘봉 콜랙터’가 되어 버렸다. 온갖 봉들이 탄생했다. 키가 작은 나봉이를 놀릴 때는 ‘쪼꼬봉’, ‘짤봉’, 불쌍한 나봉이는 ‘불봉이’, 가끔 예쁜 짓 하면 ‘예봉이’, 데이트하는 날 내복을 입고 와서 어쩐지 부끄러운 나봉이는 ‘내봉이’, 과민성대장증후군이 터져서 다급한 화장실 에피소드가 나올 때는 ‘설봉이’, 결혼했더니 ‘여봉이’, 결혼했더니 밖에 안 나가도 되는 주말이 오면 하루 종일 안 씻는 나봉이를 보고 공포와 충격 속에서 지은 ‘더봉이’, 그래서 온갖 핀잔을 듣고 마지못해 씻고 나오는 나봉이는 ‘깨봉이’.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별명부자가 되어 버렸다.
이 지경이 되자 이제 나도 스스로를 나봉이라 부르고 있다. 더 나아가 개인기로 발전시켰는데, 피카츄의 "피카. 피카. 피카츄!"를 응용해 나는 "꼬봉. 꼬봉. 꼬꼬봉."을 외치며 꼬봉이로 변신한다. 애니메이션 특유의 과장된 성우 목소리로 "꼬꼬봉"을 외치면 남편이 진심으로 재밌어했다. 하지면 애교 넘치는 나봉이는 화가 나거나 우울해지면 나현이로 돌변한다. 남편 시점에서 나봉이와 나현이는 전혀 다른 자아인 거 같다고. 심지어 목소리까지 달라진다나. 나봉이가 한껏 고조된 즐거운 목소리라면 나현이는 이 세상 모든 귀찮음과 짜증을 담아낸 목소리라고. 자르면 둘이 되는 플라나리아 마냥 나는 나봉이를 통해 나현이도 알게 됐다.(쓰다보니 나현이에게도 뭔가 음울한 별명을 하나 붙여줘야 할 거 같다)
무한대에 가까운 나봉이에 비해 남편은 무미건조하게 오빠라 불렸다. 사실 내가 부르는 애칭이 있긴 하다. 바로 순돌아빠. 직접 부르지는 않지만 내 핸드폰에 남편은 '순돌아빠'로 저장되어 있다. 손재주가 좋아 뭐든 잘 고치기에 붙여준 별명이다. (맥가이버도 별명 후보였는데 그는 자신은 그렇게 전문적이진 않다며 극구 사양했다) 나와 같은 연배라면 80년대 추억의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을 알 것이다. 배우 임현식 씨가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항상 뭔가를 고치고 있는 철물점 아저씨 순돌아빠 역을 맡았고 어쩐지 그 이미지가 남편과 어울려 그대로 쓰게 됐다.
순돌아빠는 주로 내 노트북 윈도우를 밀었다가 다시 까는 전문적인 노가다를 수행했다. 그러다가 학창 시절 조직에 소속되어 일하지 않을 거라며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며 살다가 결국 공무원이 돼 그럭저럭 조직생활을 잘하고 있는 엑셀 바보인 내 과업에 은총 어린 해결책을 제시해주곤 했다. 알고 보니 우리 남편은 엄청난 엑셀 전문가였던 것이다. 사무실에서 엑셀 작업을 하다 보면 '이거 뭔가 더 편한 방법이 있을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면 남편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면 바로 해결책이 줄줄 나왔다.(본인 말로는 최대한 일을 효율적으로 하려다 보니 나온 꼼수들이라고) 가장 최근의 그의 활약상은 내 컴퓨터 화면의 상하가 갑자기 바뀐 일을 해결한 일이다. 뭘 잘못 눌렀는지 모르겠지만 화면이 바뀌니까 마우스도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반대로 갔고 결곡 순돌아빠한테 sos를 치니 바로 해결됐다. 처음에는 철물점 아저씨 마냥 순박한 느낌의 순돌아빠가 이제 슈퍼맨 같은 위기탈줄 넘버원이 됐다. 근데 사실 남편은 자신의 이런 역할을 조금은 즐기는 것도 같다. "에휴, 나봉이 하는 게 다 그렇지, 뭐"이렇게 잔소리를 하면서 입가에 약간 미소를 띄고 있는데 게 희열을 느끼고 있는 게 틀림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 집 마지막 멤버, 라니. 라니는 너무 귀엽기 때문에 그날그날 느낌 가는 대로, 자유 연상식으로 막 갖다 붙이고 있다. 매일 보지만 볼 때마다 귀엽다. 그렇기 때문에 눈만 마주치면 "아니, 세상에 어쩜 이렇게 귀여운 멍멍이가 있나?!"로 포문을 열고 "라니요(요들레요 같은 느낌이다, 부르기가 좋다), 라니씨, 라니찌(우리집 제일 연장자이기 때문에 존중의 의미를 담아 '씨'를 붙여봤다), 라니르(아르르르르를 연상하는 르를 붙인다), 우리 예쁜이, 쪼꼬라니...."라고 부르고 있다.
어떻게 불러도 지 부르는지 알고 땡글땡글한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갸웃갸웃한다. 이렇게 귀여운 강아지를 앞에 놓고 어찌 라니송을 부르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라니송은 너무 귀여운 존재를 영접한 후 필 충만한 상태에서 아는 노래들을 마구잡이로 개사해서 부르는 노래인데, 문제는 그날 부르고 그날 까먹는다는데 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잠깐 반겨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시크한 멍멍이에게 이리 와 보라고 애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것 같지만 워낙 휘발성이 강해서 어떻게 옮길 수가 없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런 식이다.
“(나비야) 라니야 라니야 이리 날아오너라, 노랑 라니 흰 라니~”
“(검은 별) 라니요(라니요)라니요(라니요), 나타났다 잡히고 잡혔다가 사라지네”
"(섬집 아기) 언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라니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꼬마자동차 붕붕) 붕붕붕, 아주 작은 라니씨, 꼬마 라니씨가 나간다~
가족이 되면서 별명은 더 풍성해졌다. 월요일마다 주말 내내 함께 있었던 마누라와 라니가 보고 싶은 남편은 '마누라니'를 외쳐댄다. 봉 콜랙터답게 봉 수집도 멈추지 않고 있는데 우리 집 차는 '차봉이', 노트북은 '컴봉이', 이런 식이다.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는 걸 보면 우리 부부는 참 말장난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 말장난이 공감대가 되면서 우리들의 이야기가 더 풍성해지는 기분이다.
굳이 김춘수 시인의 꽃을 예로 들지 않아도 하나의 존재가 다른 존재를 인식하고 불러줌으로써 상대방은 꽃처럼 환하게 피어난다. 시인은 이름을 부른다지만 우리들은 더 나아가 사랑하는 이의 별명을 불러보자. 별명 짓기는 언어유희의 기본 중의 기본. 삶을 해학적으로 해석하고 유머를 즐길 줄 안다는 뜻이다. 그리고 별명이 불러지는 순간, 나와 당신은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사이로 엮이게 된다. 이 세상에 나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뭐라고 부르고 있는가. 어쩌면 사랑하기 때문에 별명을 부르는 게 아니고 별명을 불러줬기 때문에 사랑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이런 게 사는 재미지 않나 싶다.
* 표지 사진 : 무한도전 <언니의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