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어머님이 좀 쿨하게 멋있어서요
“아이 안 낳는다고 하면 시댁에서 뭐라고 안 해?”
딩크 선언을 하면 제일 먼저 듣는 질문이다.
“네, 신랑이 다 얘기해놓고 장가 와서 괜찮아요.”
“그래도, 자기 시어머니 대단하시다. 어떻게 며느리한테 뭐라고 한 마디도 안 해.”
사실 우리 시어머니에게 비밀이 있다. 우리 시어머니는 '현자', 즉 깨달은 자다. 아들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셨다는 점에서 말이다. 40년 넘게 함께 살아온 아들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저놈 고집은 내가 못 꺾는다'는 것을 일찍이 깨닫고 집안의 평화를 이끈 성자라 할 만하다.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소시지 없다고 밥 안 먹겠다며 도망 다닌 고집 센 아들을 키우면서 내 자식새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인생의 진리를 일치감치 깨달으셨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아들한테도 안 통할 말을 며느리한테 얘기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쿨하게 놓아버리신 것 아닐까.
그러니 우리 집에는 고부 갈등이라는 게 존재할 수 없다. 내가 보고 들은 고부 갈등은 보통 이렇게 시작하는 거 같다.
(장면 1)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전화를 건다.
“아가야, 너네 집에 김치 필요하지 않니?”
“어머, 어머님. 저희 김치 많아요.”
질문. 여기서 이 며느리의 대답은 몇 점일까?
정답 : 빵점이다.
이 질문은 "내 아들에게 내가 담근 김치를 먹이고 싶으니 빨리 김치를 받겠다"라고 대답하라는 의미다.
(장면 2)
결국 시어머니가 아들집에 김치통을 들고 찾아온다. 며느리는 당황한다. 설상가상 시어머니가 냉장고 문을 연다. 시어머니가 직접 냉장고 문을 열었다는 건 전투의 서막인데...
여기서 질문. 궁예의 관심법으로 다음 말의 속뜻을 풀어보자.
“어미야, 내가 깍두기 좀 해왔다.” (정답 : 그러니 우리 아들 좀 먹이렴)
“야휴, 어머님, 뭘 이런 걸 다 해오셨어요.” (정답 : 어머님, 아비는 어머니가 담근 김치 짜다고 안 좋아하는데 이렇게 자꾸 갖고 오시면 곤란해요)
(장면 3)
이제 우리 시댁이다. 복날이라고 시어머니가 삼계탕을 끓였다. 마침 아들이 집에 들렸다.
어머님 : "아들, 너희 안사람은 삼계탕 먹니?"
아들 : "글쎄, 아마 안 먹을 걸. 전화해서 물어볼게."
따르르르릉~
남편 : "여보, 당신 삼계탕 먹어?"
나 : "응. 나 삼계탕 엄청 좋아해!"
남편 : "헐, 나랑 만나면서 삼계탕 먹은 걸 본 적이 없어서 당신이 못 먹는지 알았지!"
나 : "내가 못 먹는 게 어딨어! 당신이 안 먹으니까 못 먹은거지!"
남편 : "어무이~ 며느리가 삼계탕 먹을 줄 안다는데!"
어머님 : "그래, 그럼 이거 며느리 갖다줘라."
질문. 이 삼계탕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 정답은 아래에.
장면 3의 정답은 (설마 설마) 며느리다. 나는 시댁의 노터치 자유를 누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음식까지 받아먹는 (돌팔매질 당할) 염치 없는 며느리다. 해마다 복날이면 알차게 전복까지 넣은 온전한 내 몫의 삼계탕을 받아먹고 있다. 물에 빠진 닭을 대체 왜 먹는지 모르겠다며 콧방귀만 뀌고 입도 안 대는 아들 대신에 뭐든 잘 받아먹는 며느리에게 맛있는 거 해 먹이시는 어머님을 보면 입맛 까다로운 아들에게 받은 그간의 한을 푸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 마음에 보답하고자 국물 한 점 안 남기고 맛있게 먹고 있다.
더구나 시댁의 대소사는 남편과 시누이들이 서로 의논해서 해결하니 이 세상에 존재할 거 같지 않은 꿈같은 시댁을 갖고 있다. 이러니 내가 남편에게 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게 어머님의 빅 픽처?) 그래서 나는 감히 주장한다. 이런 시어머니는 한국사회에서 보기 드문 천연기념물급에 속하기 때문에 속히 국보로 지정하고 ‘며느리가 내 아들에게 잘하는 탑 시크릿’ 같은 교육을 시킨다면 명절 이혼율을 현격히 떨어뜨릴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이런 파라다이스에서 사실 조금은 불안했다. 어머니가 너무 터치를 안 하시니까 혹시 우리가 결혼할 때 아무런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못한 걸 못내 마음 쓰시고 저러시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남편의 상황을 알고 결혼했기 때문에 내 쪽에서도 특별히 기대하지 않았기에 애초부터 서운한 마음조차 없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아서 저러시나 싶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인 지원과는 별개로 어머니이기 때문에 아들에게 손주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실 법도 한데 전혀 드러내지 않는 게 나 역시 의아했다. 대체 남편에게 어떻게 말하고 왔냐고 해도 자기는 그냥 아이 안 낳겠다고 선언을 했을 뿐,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게 더 미스테리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어머님은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 같은 분이지만 알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게다가 자주 만나지도 않으니 조금 낯설었던 게 사실. 하지만 이런 내 감정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린 사건이 하나 있었다.
남편의 집안에는 거의 100세를 바라보시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 생신잔치 겸 해서 아버님을 비롯한 6형제의 가족과 자녀들이 펜션을 빌려 1박 2일 함께 노는 집안 행사가 있다. 다 모이면 30여 명가량 되는데 그 많은 식구들의 음식을 챙기는 대장군이 우리 어머님이었다는 것을 나는 모임 당일에 알았다. 즉, 어머니는 모임이 있기 며칠 전부터 30명이 먹을 1박 2일의 반찬과 국을 준비하셨다는 뜻이다.
물론 친척들이 분담해서 식재료를 준비해오고 함께 음식을 만들지만 거의 어머님이 조리해 온 음식을 데워 먹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머님 말씀으로는 본인이 예전에 식당을 했기 때문에 솥이나 들통같이 대량으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조리 도구가 집에 있기 때문에 자기 아니면 이렇게 해올 사람도 없다며 자처해서 이렇게 하신다고. 아이스박스에 착착 음식을 포장해온 걸 보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셨다.
그걸 알고 나는 너무 미안했다. 이제 엄연히 며느리도 보셨는데 이 많은 걸 혼자 준비하셨다니. 몰래 남편한테 한소리를 했다.
“나한테 귀띔이라도 해주면 내가 가서 좀 도와드렸을 거 아냐.”
“아냐, 내가 도와드렸어, 괜찮아.”
남편이 도와드렸다 하니 마음이 좀 놓이긴 했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어머님, 죄송해요, 제가 좀 도와드렸어야 했는데.”
“어머, 아니다. 나는 이렇게 하는 게 습관이 돼서 사부작사부작 준비하면 된다. 힘써야 하는 건 아들이 도와줘서 괜찮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픈 강아지를 돌보느라 여기 오기 전날 밤을 꼴딱 새웠다는 것. 그 상태에서 뱃속에 음식이 들어가니 잠이 쏟아졌다. 오후 5시쯤, 방에 들어가 잠깐 누워 있는다는 게 그대로 밤새 자버리고 말았다. 시집와서 시댁 식구들 다 모인 행사에 첫 참석이었는데 새색시가 방에 틀어박혀서 쿨쿨 자버리는 어이없는 대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 스스로도 너무 황당하기 짝이 없어 무슨 낯으로 친척들을 보나 싶었는데,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얼른 눈곱만 떼고 후다닥 나갔다.
“새애기, 잘 잤니?”
어머님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아침 준비는 벌써 거의 다 끝나 있었다. 물론 다른 친척분들이 식사 준비를 거들고 있다지만 어머님의 하나뿐인 며느리가 꼭두새벽부터 앞치마 두르고 나와 그릇이라도 닦지 못할 망정 잠만 퍼잤으니 우리 어머님은 다른 친척들 보기가 얼마나 창피할까 싶어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어머님, 정말 죄송해요. 진짜 제가 미쳤나 봐요. 정말 죄송해요.”
싱크대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향한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죄송하다니. 그런 말 말거라. 여기는 네가 일하러 온 곳이 아니야. 가족들이랑 마음 편히 쉬려고 온 곳이야. 그러니 편하게 잘 잤으면 그걸로 된 거다.”
나는 아직도 이 말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순간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왈칵 났다.
그러니까 그때 그 말은 고부 관계를 넘어 정말 인간적인 배려의 발언이었다.
어머님은 이렇게 나를 생각해 주셨는데 나 혼자 딴에 시어머니라고 불편해하며 쩔쩔매고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미스테리한 어머니의 비밀이 풀렸다. 어머님은 내 남편을 이렇게 키우셨구나. 자식에 대한 집착을 거둔 것이야 말로 자식을 올바르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키울 수 있었던 어머님의 가장 큰 지혜였다. 그리고 온전히 내 편이 되어 말해 주신 것처럼 말 없이 따뜻하게 아들을 지지해주신 것이다. 나는 어머님뿐만 아니라 이런 어머님 밑에서 자란 남편을 더 믿을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물론, 안다. 나의 경우는 무척 특이한 케이스라는 것을. 티브이에 나오는 것처럼 빡빡 소리 지르는 시어머니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저마다의 풀어야 할 숙제처럼 시월드가 있다는 것을. 시어머니 잔소리 한 번 안 들어본 적 없는 며느리는 없을 거라는 것을. 더구나 아들 내외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면 노발대발하실 부모님이 더 많다는 것을. 하지만 이 시월드 해결책은 결국 남편이 쥐고 있다.
어머님, 아버님도 우리에게 아무 말씀 안 하시는데 한 번은 큰어머님이 나에게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라고 물어보셨다.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에 조금 당황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거 같아서요."라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편이 "에잇,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아이예요!"라며 오히려 너스레를 떨고 나섰다. 큰어머님은 겸연쩍어 더 이상 묻지 않으셨다.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짊어진 십자가는 결국 남편이 함께 들어줘야 그나마 내팽겨치지 않고 들고 갈 수 있는 것이다.
내 생에 이런 판타스틱한 시댁을 내 복이라 여기고 시댁에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그건 바로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시댁에 가는 것이다. 거짓말 안 하고 나는 시댁에 가는 게 즐겁다. 어머님 음식도 정말 맛있고 아버님 농담도 정말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머님의 따뜻한 음식을 먹고 아버님의 농담에 배를 잡고 웃으며 그분들의 삶에 더 다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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