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먹고사니즘
"오늘 뭐 먹지"를 제대로 고민하는 일
이곳에 처음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 먹는 이야기가 참 끈질기게도 많이 나온다. 같이 밥을 나눠먹는 식구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거두어 먹이는 라니와 구피들까지. 남편과 라니의 에피소드도 먹고사니즘으로 풀었다. 실제로 나와 남편의 하루 중 가장 진지하면서도 난해한 대화 주제는 예상대로 "오늘 뭐 먹지"다. 그래서 오늘은 나의 먹고사니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입술 아래 '점'은 먹을 복이 많은 '복점'이라고. 그렇게 들었다. 나는 그 복점을 타고났다. 그래서 결혼 전에 신부 관리라는 특권으로 점이란 점은 레이저로 다 지져 없앴지만 그 복점은 놔뒀다. 명목상 남편이 내 콧등에 있는 점과 그 입술점을 편애해서 살아남았지만 사실 나도 그 점을 빼고 싶진 않았다. 비록 속설이지만 이 점이 내 삶에서 먹고 사는 데 수호신 역할을 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딜가도 먹을 복이 있었다. 외국 유학시절 주변 친구들을 보면 음식이 입에 안 맞는데다 홈스테이 식사가 부실하다고 투덜거린데 비해 나는 음식을 사랑하는 호스트를 만나 이색적인 만찬을 즐겼다. 홈스테이를 나와서는 요리는 잘 하는 친구를 만나 매번 잘 얻어먹었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장소를 갈 때마다 먹고사니즘 수호신이 지켜주는 기분이 들 정도라면 복점의 효과를 믿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내 인생에도 기억하지 못하는 굶주림의 아기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땐 어쩌면 복점이 형성되지 않던 시기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기였을 때 모유도 우유도 아닌 "미음"을 먹고 컸다. 한 살도 채 넘기기 전에 우유를 먹고 체했는데 그때부터 우유만 들이대면 먹기 싫다고 자지러지게 울었다고 한다. 모유 수유를 할 수 없었던 엄마는 노심초사 병원에 데려갔더니 의사가 굶기면 먹는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단다. 쫄쫄 굶던 아이는 결국 다시 우유를 먹긴 먹었는데....다시 체했다. 그 뒤론 굶겨도 우유를 안 먹었단다. 할 수 없이 엄마는 쌀을 갈아서 미음을 끓여 아이 입에 흘려 넣었다. 엄마는 내가 키가 안 큰게 그때 영양가 없는 미음만 먹고 커서 그런거라며 항상 안타까워 하셨다.
나중에 프로이트를 접하고 나서 어쩌면 나의 왕성한 식욕은 (먹을 복점의 영험함 때문이 아니라) 어린시절 구강기 욕구가 결핍되면서 나타난 고착 증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 시절 못 먹은 한을 지금 풀면서 나는 먹는 일의 위대함에 대해 깨닫고 있다. 잘 먹는 다는 건 그만큼 잘 살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대학교 앞 식당 이모가 남학생들에게만 곱빼기로 줄 때마다 나는 외쳤다. 이모, 저도 곱빼기요!! (이 외침은 내 존엄한 실존이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생의 발악이었던 것이다.)
먹는 일은 생존을 넘어 몸과 마음의 기억으로 남는다. 내 성격을 만들고 인격을 형성한다. 그리고 관계를 만든다.
20대 후반 다이어트 한다고 닭가슴살만 먹고 운동을 했더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PT선생님에게 말하니 포도쥬스를 꺼내 주더니 먹어보라길래 딱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세상에, 두통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 두통은 탄수화물 부족으로 뇌가 보내는 고통의 신호였다. 꿀피부를 만들고 싶다면? 비싼 마사지를 능가하는 비법이 있다. 한달 간 고기와 기름을 끊고 채식 위주 식사를 하면서 매일 3리터의 물을 마시면 된다. 피부트러블이 너무 심했을 때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서 해본 고육지책인데 효과 만점이었다.
어디 몸만 바꾸는가. 음식은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다. 오죽하면 소울푸드라는 말이 있겠는가. 소울푸드는 특별하게 멋을 낸 음식이 아니라 투박하지만 영혼 깊숙이 파고들어 심장에 각인된 음식이다. 내 소울푸드는 엄마의 미역국이다.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히 불행으로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방에 틀어박혀 있던 나를 살린 건 엄마가 만들어 준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이었다. 그렇게 미역국에 밥 한 술 뚝딱 말아 먹고나니 도저히 삐뚤게 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온 식구가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다가 손님이 오면 아빠는 항상 "식사는 하셨냐"고, "밥 좀 드시고 가라"고 했다. 주로 야쿠르트 아줌마나 2층 주인집 아줌마 같이 안면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생판 모르는 외판원들도 있었다. 항상 아무도 밥을 먹고 가지 않는데, 심지어 상이 작아서 더 끼어들 공간도 없는데, 자꾸만 밥 먹고 가라는 말을 하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아버지의 그 딸이라고, 나는 오늘 점심 시간 다 되서 우리 사무실로 출장을 나온 직원한테 계속 밥 먹고 가라는 오지랖을 부리고 말았다.
남편과 연애할 때, 안 하던 야근을 한다던 당시 남친이 저녁도 안 먹고 일하고 있다는 말에 어떻게 그 회사는 밥도 안 먹이고 일을 시킬 수 있냐며 버럭 화를 냈었다. 그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는지 옆에 있던 사장님이 좀 민망해 했더라는 건 일종의 후일담이 되었다. 내 끼니만큼 다른 사람의 끼니를 걱정하는 마음. 이게 나의 작고 위대한 먹고사니즘의 최종 종착지일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식구가 되었다. 먼 훗날 지금의 신혼 생활은 "오늘 뭐 먹지"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때도 우리는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하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오늘의 메뉴와 디저트의 조화를 골몰하는 이 작디 작은 고민이야말로 진짜 잘 사는 것이라 믿는다.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 먹는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삶에 무슨 사단이 났다는 것이니까. 잘 먹는 일은 아주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삶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계속 "오늘 뭐 먹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