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결혼식 축가를 부른 직접 부른 신부였다. 사실 이것 때문에 꽤 유명세를 치렀다. 결혼 후 새색시가 되어 하객으로 왔던 친척들을 만날 때면 ‘축가 부른 신부’ 이름표 때문에 잔칫상 앞에서 꼭 노래 한 곡을 불러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나도 이 상황을 즐기기로 해서 다음 모임 때 부를 노래를 미리 선곡 해놓는다. 남편은 이 모든 게 내가 자초한 일이라며 핀잔을 준다. 맞다. 자승자박이다. 하지만 나는 내 결혼식 축가를 내가 꼭 부르고 싶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짝짝이 다리를 갖고 태어났다. 나는 150의 단신으로 발도 보통 사람들보다 작은 편인데 오른쪽 발 크기는 225이고 왼쪽 발은 210이다. 왼쪽 발은 거의 성장을 못했다고 봐야한다. 길이도 3센티 정도 차이가 나서 눈썰미 좋은 사람이라면 내 오른쪽 다리가 더 굵은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다행히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니어서 다리를 절지는 않고 신발 고르는 게 좀 불편한 정도다. 다만 골반이 틀어져서 다리 길이 차이가 난 만큼 자세가 더 틀어지지 않게 운동을 꾸준히 해주어야 한다.
어렸을 때는 이놈의 짝짝이 다리가 싫었다. 늘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어야 했기 때문이다. 오른쪽 발에 기준을 맞춰 신발을 사고 왼쪽 신발에 깔창을 여러 장 덧댔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서 항상 왼쪽 발에 신발이 벗겨지면서 넘어졌다. 그게 싫어서 또 작은 발에 맞추면 큰 발을 작은 신발에 욱여넣고 다니느라 좁은 신발 안에서 발이 터질 것 같이 아팠다. 지금이야 인터넷에 맞춤신발가게가 널렸지만 당시 우리 집 형편은 한창 자라는 어린 아이에게 맞춤 신발을 해줄 여력이 안됐다. 그렇게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다니면서 나는 잘 넘어지기 일쑤였고 어느새 걷는 걸 싫어하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나가서 뛰어놀기보다 집에서 비디오를 보거나 책을 읽는 게 편하고 좋았다. 당시 인어공주를 읽으면서 나는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더 깊이 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인어공주가 왕자를 만나기 위해 악마에게 목소리를 팔고 다리를 얻었지만 걸을 때마다 발바닥에 심한 고통을 느끼는 장면을 읽으면서 내 처지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자 어린 나는 당시로서 꽤나 심각하게 비관주의에 빠졌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살아야 하는 내 인생길이 순탄치만은 않으리라는 예감이었다. 매년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다리 길이를 측정했다. 의사는 성장이 끝나면 다리 수술을 할 것을 권유했다. 작은 쪽 다리의 뼈를 잘라서 뼈를 늘리는 엄청난 수술이었다. 수술을 하면 뼈가 자랄 때까지는 꼼작도 못하고 누워있어야 했다. 부작용도 많고 성공확률도 낮아 잘못되면 아예 못 걸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돌았다.
비관주의에 빠졌던 그 꼬마는 운명처럼 새로운 인어공주를 만났다. 월트디즈니사에서 나온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였다. 책으로만 읽던 이야기가 화려한 영상과 노래로 편집되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이야기 결말도 달랐다.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지 않고 결국 사랑을 쟁취하였다. 이야기의 새로운 재해석이 처음에는 충격적이었지만 다시 보고 또 볼 때마다 점점 그 재해석된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들었다.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걷기 힘들다면, 그렇다면 신발을 벗고 걸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훨씬 편하고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을 조금 바꾸었을 뿐인데 나는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다. 남들이 내 다리를 보고 뭐라 수군거리든지 말든 나는 내 갈 길을 걸으면 되는 것이었다. 인생에는 한 가지 결말의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야기 결말은 내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더 사랑할 수 있었다.
19살이 되었을 때 부모님은 대학을 휴학하고 다리 수술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안 하겠다고 대답했다. 수술 부작용이 두려워서 그런거냐고 되물었다.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그대로의 내 모습이 좋았다. 부모님은 틀어진 골반 때문에 내 키가 많이 자라지 않았다고 속상해했지만 나는 단신이 오히려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귀여운 외모가 호감을 주었고 외유내강의 반전매력을 뽐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인어공주 이야기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은 인어공주가 인간세상의 물건들을 모아놓은 자기만의 비밀 동굴에서 독백하듯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제목은 ‘A part of your world’이다. 지상의 왕자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만날 수 없다는 슬픔에 사로잡히며 그대 세상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절절한 마음을 담은 노래이다. 어린 나는 영화를 돌려보고 또 돌려보면서 노래를 외웠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되면 이 노래를 불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룬 것이다. 살짝 개사도 했다. ‘All of your
world’로.
인어공주 포스터
신혼집은 아파트 1층이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 근처에 거의 오니 남편이 함께 사는 강아지 라니를 안고서 베란다에 나와서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겨주었다. 그 순간 벅찬 감동이 몰려왔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나를 기다리며 반겨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하던지. 그 순간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평소 눈여겨보지도 않았던 베란다 앞 풀잎 하나하나마저도 그림처럼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것만 같았다.
사실 나는 남편과 오래 연애를 했다. 하지만 결혼을 망설였다. 그는 자신의 학자금 대출을 다 갚고 또 집안의 빚을 갚느라 모아둔 돈이 없었다. 더구나 자기 사업을 하겠다며 대기업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는 불안한 미래를 가진 사람이었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부적절한 신랑감이었다. 하지만세상이 부여한 기준의 남편감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조건들을 제거하고 순수한 하나의 인간으로 보았을 때 그는 정말 매력이 많은 사람이었다. 반짝이는 눈에는 총기가 가득했고, 모든 일에 호기심도 많았다. 사실 많은 어른들이 그 나이 때쯤 되면 궁금한 게 사라진다. 나태에 젖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건 왜 이럴까, 왜 저 사람은 저런 생각을 했던 걸까 하고 항상 궁금해 하고 세상과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했다. 나는 그런 그가 좋았다. 내 이야기를 다정하게 들어주었고 내 인어공주 이야기를 이해해주었다. 그와 대화를 할수록 빠져들었고 그 자유롭고 따뜻한 영혼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우리 집에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남편을 반대했다. 나는 부모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나 역시도 사랑하는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오다가도 경제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까마득했다. 결혼은 둘이 좋다고 해결되는 게 아닌, 돈이 연결된 처절한 현실이었다. 만났다 헤어지고 또 만나는 일이 반복됐다. 하지만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람만큼 나를 충만하게 이해해줄 사람이 없다는 확신이 섰을 때 나는 그와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이번에는 정신적인 가시밭길을 걸어야했다. 부모님을 설득해야 했고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대책이 필요했다. 문득 내가 선택한 길이 옳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내 선택으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깨끗이 인정해야지만 온전히 사랑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나는 학원 강사로 일했는데 일이 적성에 많고 재미있었지만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전한 프리랜서였다. 더구나 남편마저도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는 상황에서 한 사람이도 경제적으로 안정적 뒷받침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늦은 나이에 공무원 시험을 봤다. 시험 준비 기간이 짧았지만 그에게 내 결심을 말하고 잠시 헤어짐의 시간을 가지면서까지 이를 악 물고 공부를 했다. 운 좋게 합격을 했다.
나는 내가 처한 현실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장래희망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서 주체적으로 선택한 일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직업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다.
다시금 인어공주 이야기를 떠올려보니 그것은 단순한 동화가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기를 긍정하면서 결국 사랑하는 왕자님을 만난 나만의 동화를 써내려갔다. 그러면서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됐다. 바다의 인어공주와 지상의 왕자가 만난 것처럼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던 사람이 만나 자신의 세계를 버려야 할 정도의 희생을 감내할 수 있을 때 타인의 닫힌 마음을 진심으로 열 수 있었다. 나는 그 진심을 닫아 축가를 열창했다.
한발…한발…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다. 발에 꼭 맞는 웨딩슈즈를 신고 있다. 꽃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가는 길을 축복해주고 있다. 다시 한발…나는 위대한 성과를 이룬 위인은 아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하는 저명한 정치인이 된 것도 아니고, 유명한 영화배우가 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 길 역시 위대했다. 다시 한발…아주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내 한계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로 했다는 것만으로 내 인생의 길을 스스로 꽃길로 만들었다. 또 한발… 저 앞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당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한발 한발 힘차게 내딛는다. 이제 당신 앞이다. 당신은 1층 베란다에서 환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손 흔들고 있다. 나는 다시 씩씩하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는다. 환하게 웃으며. 한발…한발…
+ 이 글은2017 공무원 문예대전 수상 글입니다. 처음으로 제 이야기를 한 편에 에세이로 완성해 세상에 드러낸 소중한 글이기에 이곳에 올려봅니다.